진희영  산악인·기행작가
진희영  산악인·기행작가

 경주 남산의 주봉(主峰) 금오산 북쪽에 솟은 거대한 바위 봉우리를 흔히 냉골 암봉이라 부른다. 두 개의 봉우리로 이뤄져 있는데, 남쪽 봉우리의 뒷면은 상사암(想思巖)이고, 북쪽봉우리는 봉생암(鳳生岩)이다. 

 상사암은 높이가 13m, 길이가 25m쯤 되는 대형 바위로 아주 오랜 옛날부터 상사병에 걸린 사람들의 병을 낫게 하고, 아들 낳기를 바라는 부녀자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바위로 전해져 왔다. 바위 동쪽 면 중앙에는 가로 1.45m, 높이 0.56m, 깊이 0.30m쯤 되는 감실이 파여 있다.

 봉생암, 또는 봉생암터로 불리는 북쪽 봉우리는, 예로부터 신선들이 내려와 바둑을 뒀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다. 마당처럼 평평하고 넓은 바위 위에는 석탑 기단의 흔적과 허물어진 축대, 절터가 남아 있다. 또한 바둑바위 남쪽 옆에는 한때 금송정(禁松亭)이라 불리는 정자 터가 있었는데, 이곳은 신라의 악성(樂聖) 옥보고(玉寶高)가 거문고를 타며 풍류를 즐기던 장소로 전해진다. 

 금송정의 남서쪽 아래 암벽에는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이 자리하고 있으며, 이곳 삼릉계곡은 경주 남산 서쪽에서 가장 길고 깊은 골짜기로 꼽힌다.

 삼릉에서 시작되는 삼릉계곡에는 마애석가여래좌상, 선각여래좌상, 삼릉계곡 석조여래좌상, 삼릉계곡 선각육존불, 삼릉계곡 마애관음보살상 등 10곳 이상의 불교 유적과 삼릉(신라 아달라왕, 신덕왕, 경명왕)과 경애왕의 무덤도 이곳에 있다. 

 

#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三陵溪谷 磨崖石迦如來坐像)

 마애(磨崖)란 돌 있는 언덕을 깎는다는 말이다. 즉, 바위면이 돌출됐거나 노출된 자연 그대로의 암벽에 선(線)새김이나 면(面)새김 혹은 돋을(浮彫)새김 기법으로 불상이나 상징을 새기는 행위를 말한다. 마애불(磨崖佛)의 기원은 기원전 3세기경 인도의 아잔타 석굴 조각상에서 찾을 수 있다.

 경주 배동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은 높이 7m, 넓이 5m 쯤 되는 거대한 자연암벽에 6m 높이로 새겨진 것으로 경주남산의 좌불(座佛)중 가장 큰 것으로 통일신라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58호. 불상이 조각된 바위는 약간 뒤로 기울어져 있어, 불상 자체도 약간 뒤로 젖혀진 듯한 인상을 준다. 또한 넓이 4.2m에 달하는 연꽃 대좌 위에 결가부좌로 앉아 있으며, 반쯤 감은 눈은 속세의 중생을 굽이 살펴보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마치 먼 하늘에 시선을 두고 있는 것같이 보이는데, 대좌의 연꽃은 두 겹으로 꽃잎마다 보신화가 장식돼 있다. 불상전체를 보면 머리를 먼저 조각하고 몸은 선각(線刻)으로 금송정(禁松亭)이 있는 바위봉우리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예리하게 다듬어진 코는 굳세며 굵은 눈썹은 단정하게 초승달을 그리고 있다. 입술은 굳게 다물었고, 살찐 두빰과 입언저리에는 조용한 미소가 감추어져 있다. 삭발한 머리에 육계가 나지막하고 큰 귀는 어깨까지 닿아 있다. 이 불상의 가장 인상 깊은 점은 머리 부분만 인공적으로 다듬고, 나머지 몸체는 바위의 형상을 살려 자연과 인공을 절묘하게 융합시켰다는 데 있다. 즉, 절반은 자연 그대로, 절반은 신앙의 손길로 다듬어진 인공의 미로,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을 바위산 전체로 끌어들이기 위한 신비로운 연출이었다고 볼 수 있다.

 

# 삼릉계곡 선각여래좌상(三陵溪谷 線刻如來坐像)

경주 삼릉계곡 선각여래좌상. 필자 제공
경주 삼릉계곡 선각여래좌상. 필자 제공

 

 삼릉계곡 선각여래좌상은 경주 남산 삼릉계곡의 북쪽 능선에 있다. 높이 10m가량 되는 바위에 지표로부터 약 3m 높이에 서쪽을 향하고 있는 불상은 몸은 모두 선으로 그은 듯이 새겼고 얼굴만 도드라지게 표현한 독특한 조각수법으로 만들어 졌다. 바위 자체는 가로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갈라졌는데, 조각자는 이 균열을 그대로 살려 위쪽에는 불신과 광배를, 아래쪽에는 대좌를 각각 조화롭게 배치했다. 마치 자연이 만든 틈마저도 하나의 예술로 끌어안으려는 듯한 시도다.

 불상의 머리는 잔잔한 소발 형태이며, 그 위로는 높은 육계가 솟아 있다. 둥글고 넓은 얼굴에는 날카로운 눈매와 큼직한 코, 그리고 입체감 있는 입이 정성스럽게 새겨져 있어, 어딘가 토속적이고 순박한 인상을 풍긴다. 옷차림은 양 어깨를 덮는 대의를 걸친 후, 오른쪽 어깨 위에 부견의를 걸친 모습으로 표현돼 있다. 불상의 몸을 감싸는 광배는 둥근 두광과 신광이 겹쳐진 형태로, 화려한 장식이나 테두리 없이 선각으로 간결하게 그려져 있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는 바위의 자연 균열을 중심으로 상하로 크게 새겨졌으며, 넓게 퍼진 연꽃 잎 하나하나에는 장식 없이 소박하게 마감돼 있다.

 

# 삼릉계곡 마애관음보살상(三陵溪谷 磨崖觀音菩薩像)

경주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 필자 제공
경주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 필자 제공

 

 경주 남산의 삼릉계곡에 있는 이 불상은 돌기둥 같은 암벽에 바위의 윗부분을 쪼아내어 부조한 것으로 연꽃무늬 대좌(臺座)위에 서 있는 관음보살상이다. 머리에는 보관(寶冠)을 쓰고 있으며, 얼굴은 만면에 미소를 띤 부처님의 자비스러움이 잘 표현돼 있다. 손에는 정병(淨甁)을 들고 있는데 보관과 함께 이 불상이 현세에서 자비로써 중생을 구제한다는 관음보살임을 알 수 있다. 불상 뒷면에는 기둥 모양의 바위가 광배(光背) 역할을 하고 있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다.  

 이 관음보살상은 통일신라시대, 8~9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주목할 점은 입술이다. 마치 루주를 바른 듯 은은한 붉은 빛을 띠고 있는데, 이는 인공으로 채색한 것이 아니라 암석 자체의 붉은 기운을 섬세하게 조각에 활용한 결과이다. 불상의 높이는 1.54m, 어깨너비는 0.54m 정도이며, 약간 남쪽으로 치우친 서쪽 방향을 향해 서 있다. 저녁 무렵, 태양이 서쪽 하늘로 기울어질 때 관음보살의 모습이 냉골 계곡의 물 위에 어렴풋이 비치는 모습을 떠올려보면, 조각가가 이 장소를 택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석굴암의 아침 정경을 못 보면 평생 한이 된다는 말이 있듯, 저녁노을에 조명돼 더욱 빛나는 ‘미스 신라 마애관음보살상’은 남산을 찾은 이들이 놓쳐선 안 될 특별한 장면이다.

 누군가는 말했다. "신라인들은 바위에 불상을 새긴 것이 아니라, 정과 망치를 들고 바위 속에 숨어 있던 부처님을 찾아낸 것이다" 그래서일까. 당시 신라인들은 이미 경주 남산의 바위 속에 부처님의 원력(願力)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고, 그 존재를 발굴해낸다는 신앙심으로 돌을 대했을 것이다.

마치 돌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듯, 석수장은 조심스레 바위에 망치를 댔다. "석수장이여, 너는 어찌하여 돌을 쪼아 내 모습을 만들려 하느냐. 내 모습은 이미 그 속에 들어 있는 것을" 어쩌면 그들에겐 바위를 다듬는 일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던 신성을 깨우는 행위였는지도 모른다. 진희영  산악인·기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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