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근  시인·문학평론
이병근  시인·문학평론

 새벽과 아침의 경계를 지우고 있는 여명은 거대한 우주의 찰나다. 성큼성큼 밝아 오는 동녘, 애초를 알리는 붉은 햇귀가 동쪽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강물은 밝은 은결로 출렁이다가 건들바람 따라 서쪽으로 거슬러 오른다. 그 은결 위로 얼비치는 아파트 숲은 아침의 무늬다. 일제히 일렁이는 솜털 억새, 쓰르라미 소리, 풀 섶 흙냄새가 모두 가을의 재료이다. 백리의 고단함을 자애하고 드디어 현동의 나라로 승천하는 황룡을 여기서 본다. 태화강은 황룡의 상징이다.

 태화강 끄트머리로 난 ‘아산로’를 따라 가면서 북구, 중구에 걸쳐 조성 돼 있는 억새군락지를 만난다. 가을이면 온통 갈대와 어울려 출렁이는 억새물결은 그야말로 광야다. 이런 풍광에 억새 군락지를 대하면 누구나 가을의 절정을 느끼게 되고 가을이 낭만계절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낭만은 인간의 내적 상태이며, 감정적이고 영적인 접근을 요구하는 삶의 본질에서 발생하는 에고이다. 그러므로 낭만은 인간의 영혼과 밀접해 ‘낭만의 짓’이 없으면 인간의 삶은 삭막하다. 

 고대 헤라클레이토스는 ‘영혼이 죽으면 물이 되고, 물이 죽으며 땅이 된다. 그러나 땅에서 물이 고이고 물에서 영혼이 나온다’ 고 했다. 태화강 하구 명촌의 억새 광야(廣野)는 물에서 비롯된다. 

 낭만(浪漫)의 한자는 물결 ‘랑(浪)’과 질펀하다 또는 넘쳐흐르다 를 나타내는 ‘만(漫)’이 결합해 만든 말로서 두 글자에 물수 변이 들어가 있는 것을 보면 헤라클레이토스의 변과 무관하지 않겠다. 낭만은 흐르는 물처럼 우리의 영혼을 촉촉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그런 영혼이 더 지혜롭고 인간적이지 않겠는가. 일상생활을 하는 데에는 생존경쟁을 위해 냉철한 이성적 활동으로 ‘정제’된 ‘영혼’이 필요하겠지만 때로는 ‘촉촉히 젖어있는 영혼’이 ‘정제’된 영혼’을 쉬어가게 해 일상으로부터 건전한 일탈을 제공하는 것도 또한 삶의 의미라고 하겠다. 

 ‘낭만을 위해’ 가을엔 누구나 시인이 되고 음악가가 되고 화가가 된다. 그래서 가을엔 잠시 쉬어가면서 그동안 먹고 살기에 각박했던 압박으로부터 벗어나 ‘나’만의 문화를 꽃 피워야 하겠다. 사람 냄새 나는  벗들과 바람 자는 골목 주막에 둘러앉아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좀 낡은 감성이면 어떤가, 좀 촌스러우면 어떤가, 비어가는 술병을 아쉬워하며 떼창을 한들 그게 그렇게 흉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부족하면 낙엽 흩어져 모이는 길목에 앉아 고전을 펼쳐 가을이 가지는 풍류와 낭만의 의미를 익혀 보자. 어쨌든 이번 가을에는 ‘나’의 영혼을 촉촉하게 만드는 낭만적인 작업을 해보자.

 옛 사람들은 봄을 ‘청춘(靑春)’이라 해서 청색을 선호했고 여름은 ‘주하(朱夏)’라 즉 붉은색이며, 가을을 ‘백추(白秋)’라 해서 흰색을, 겨울은 ‘현동(玄冬)’이라 해서 검은색으로 각기 계절을 색으로 정했다. 제정일치 고대 국가에선 모든 의식에서 이 계절색이 철저히 지켜졌다. ‘여씨춘추(呂氏春秋)’에 가을이 되면 천자는 음양오행설에서 풀어낸 가을방위인 서쪽(白虎)에 기거하면서 흰색으로 장식한 수레를 타고, 검은 갈기를 가진 흰말이 수레를 끌게 하고 흰색깃발을 수레에 꽂고 흰색패물을 두르는 등 철저히 계절 색에 순응 했다.

 이런 옛 사람들의 가을 색깔은 현재 우리에게 상징되는 결실의 황금색과 그 의미에서 큰 차이가 있다. 황금색이 가을을 상징하는 시각적으로 곡식과 모든 열매가 익어 결실을 맺는 풍요를 표현한 것이라면 백색은 생명의 본성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가을의 본질은 흰색으로서 밝고 깨끗하고 모든 사물을 투명하게 드러내 오히려 그 내면은 미래지향적 생명을 숨겨 놓고 있을 것이라 짐작 할수 있겠다. 고서에서 말하는 백추는 모든 생명은 ‘가을에서부터 시작’이라는 지극히 순수한 자연철학의 의미이며, 풍류와 낭만의 묵시이다. 

 울산 태화강 하구의 하늘은 넓고 높다. 태화강은 울산광역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강이다. 신라 선덕여왕 시절, 당나라에 유학하던 자장율사가 중국산동반도에 있는 태화지변을 지나갈 때 홀연히 한 신인이 "너희나라는 여자를 임금으로 삼아 덕은 있으되 위엄이 없는 고로 이웃나라가 침략을 도모하려고 하는 것이니 빨리 고국으로 돌아가서 구층탑을 이룩하면 이웃나라가 항복하고 구한이 와서 조공해 왕업이 길이 태평할 것이다"라고 해 율사는 돌아 올 때 바다로부터 사포(絲浦-지금의 태화강 지방으로 추정)에서 쉬면서 인연돼 신인이 바라던 절을 지어 그의 복을 빈 곳이 태화사이며 태화사 아래에 흐르는 강을 태화강이라 했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대화강(大華江)’이라 기록돼 있고, 『여지도서(輿地圖書)』에도 ‘태화강은 태화루(太和樓, 태화사의 누각)아래에 있다.’고 하는 등 각종 지리지와 지도에도 표기돼 예로부터 울산의 주요 하천이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의 명촌을 옛날에는 ‘평촌(平村), 신평(新坪)이라고도 했는데 이는 ‘넓은 들’마을 또는 ‘새로운 들마을’이라는 뜻이었다. 이병근  시인·문학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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