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호 울산과학대 화학공학과 교수
서정호 울산과학대 화학공학과 교수

 산업단지에서 사람이 죽거나 쓰러지는 사고가 다시 늘고 있다. 최근 남구 SK에너지 수소 제조 공정 폭발로 협력업체 노동자 2명이 숨지고 3명이 다쳤고, 울산화력발전소 보일러 타워 붕괴에서는 해체 작업을 하던 노동자 9명 중 여러 명이 끝내 주검으로 돌아왔다. 여기에 2025년 11월 포항제철소에서는 슬러지 청소 작업 중 유해가스가 누출돼 포스코와 협력업체 직원 6명이 쓰러졌고, 이 가운데 여러 명이 심정지와 의식불명 상태로 중태에 빠지는 가스 중독 사고가 발생했다.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대형 사업장만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 비슷한 사고가 전국 산업단지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다.

 숫자를 보면 더 선명하다. 고용노동부 재해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2022년 644명, 2023년 598명, 2024년 589명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산업안전보건법 강화에도 불구하고 연간 600명 안팎이 현장에서 목숨을 잃는 구조가 크게 변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2024년 1, 2분기만 놓고 보면 사고 사망자는 296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 289명보다 오히려 7명 늘었다.

 국제 비교를 해도 상황은 낙관적이지 않다. 국제노동기구와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치명적 산업재해 발생률은 근로자 10만명당 4명 안팎으로 유럽 주요국 평균의 두세 배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 10대 경제권을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 전체 산업재해 사고 사망률은 근로자 1만 명당 0.39명 수준으로 상위권을 차지하고, 건설업만 따로 보면 1만명당 1명대 중반으로 비교 대상 국가 중 가장 높은 축에 속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통령이 직접 산업재해 공화국이라는 표현까지 쓰며 강경 대책을 주문하지만, 최근 몇 년간 전체 산재 사망자 수는 좀처럼 뚜렷한 감소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사망 사고의 얼굴도 바뀌고 있다. 60세 이상 고령 노동자는 전체 재해자와 사망자의 절반 안팎을 차지하며, 특히 건설과 제조 업종에서 치명적인 사고가 집중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 비중도 빠르게 늘어 최근 집계에서는 산재 사고 사망자 중 외국인이 10% 안팎을 차지한다. 위험도가 높은 공정, 언어 장벽, 하청과 재하청 구조가 겹치면서 보이지 않는 희생이 쌓이는 형국이다.

 최근 일어난 SK, 울산화력발전소, 포스코의 중대 사고에는 공통점이 있다. 첫째, 대부분 고위험 에너지와 화학 공정, 또는 노후 설비의 해체와 청소 과정에서 발생했다. 수소 제조, 유류 탱크, 보일러 타워, 대형 배관과 배수로 주변 설비 등은 설계 단계부터 엄격한 공정 안전 관리가 필요한 대상이다. 둘째, 실제 작업은 협력업체와 재하청 노동자들이 맡고 있었다. SK에너지 폭발 사고 사망자 2명과 부상자 대부분이 하청 소속이었고, 포항제철소 가스 누출 사고에서도 배수로와 배관 주변을 청소하던 협력업체 인력과 포스코 직원이 유해가스를 들이마시고 잇따라 쓰러졌다. 셋째, 해체와 정비, 청소 공사는 이미 멈춘 설비라는 안도감 속에서 위험이 구조적으로 과소평가된다는 점이다. 울산화력발전소 붕괴 사고에서 보듯이, 발파 전 사전 취약화 작업이 설계와 다르게 진행되거나 구조 안전성 검토가 부족하면 재가동 중 사고 못지않게 참혹한 결과를 낳는다.

 그렇다면 이런 사망 사고와 중대 재해를 줄이기 위해 무엇을 바꿔야 할까. 첫 단계는 개인 부주의라는 낡은 설명을 버리는 일이다. 대부분의 중대 사고는 한 개인의 실수라기보다 위험 설계를 방치한 채 공정, 설비, 조직이 함께 만들어낸 결과다. 위험성이 높은 작업일수록 설계 단계의 안전 여유도, 공정 안전 관리, 위험성 평가(HAZOP, LOPA 등) 같은 시스템적 장치가 중심에 서야 한다. 사고 후 책임자 처벌만 강화하는 방식으로는 사망 곡선을 꺾기 어렵다.

 둘째, 위험의 외주화를 정면으로 다뤄야 한다. 현재 통계를 보면 하청 노동자 사망 비율은 전체의 절반에 육박하며, 건설업 사망자의 50% 이상이 하청 노동자라는 분석도 있다. 대기업이 설비 투자와 안전 인력에 쓸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공사와 정비를 외주에 떠넘기면 실제 현장에서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은 하청 노동자와 이주 노동자다. 원청이 법적 의무만 최소한으로 이행하는 수준으로는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 설비 설계, 운전, 정비 전체 생애주기에 걸쳐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고, 하청 노동자의 참여권과 거부권을 제도화하는 방향으로 법과 제도가 재설계돼야 한다.

 셋째, 노후 설비와 해체 공정에 대한 국가 차원의 특별 프레임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발전소, 제철소, 석유화학 플랜트 상당수는 1970·80년대에 지어져 설계 수명을 지나고 있다. 울산화력발전소처럼 수명을 다한 설비를 철거하는 과정에서 구조물이 갑자기 붕괴하는 사고는 앞으로도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설비 해체를 단순한 건설 공사로만 볼 것이 아니라, 별도의 대형 위험 시설 해체 기준과 인허가, 전문 인력 인증 제도를 두는 수준의 접근이 필요하다.

 이 지점에서 울산시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울산은 석유화학, 조선, 자동차, 발전, 비철 금속 산업이 좁은 공간에 밀집해 있는 전형적인 중대재해 고위험 도시다. 서울이나 수도권과 달리 단지 밖으로 조금만 나가도 주거지와 학교, 하천이 공단과 맞닿아 있다. 이런 도시에서 산업재해는 단순한 사업장 문제가 아니라 도시 안전과 지역 생태, 주민 건강을 위협하는 도시 리스크다. 그럼에도 현재 산업안전 행정은 대부분 중앙정부와 노동부 산하 기관에 집중돼 있고, 지자체 역할은 제한적이다.

 앞으로는 울산시가 환경, 안전, 재난을 한 축으로 묶은 전담 조직을 두고, 산업단지 사고 예방을 도시 정책의 핵심 의제로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화학사고, 화재, 폭발, 중대 산업재해 정보를 통합 관리하는 울산형 중대사고 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해 사업장 개별 사고가 아니라 산업단지 전체의 위험 패턴을 분석해야 한다. 동시에 중소 협력업체를 대상으로 공정 안전 관리 컨설팅, 위험성 평가, 안전 설비 개선을 지원하는 지역 안전 기금을 조성해 실질적인 재정 지원과 기술 지원을 병행할 수 있다.

 조직 개편도 고민해야 한다. 기후, 환경, 산업 진흥, 재난 안전 조직이 따로 움직이는 현재 구조로는 화학과 에너지 산업단지의 복합 리스크를 다루기 어렵다. 울산시청 안에 산업안전과 환경 재난을 함께 다루는 컨트롤타워를 두고, 노동부, 소방, 경찰, 환경부, 한국산업단지공단, 안전보건공단과 상시 협의체를 운영한다면, 산재 예방 정책과 환경, 기후 정책을 연계한 통합 전략을 세울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산업단지 사망 사고를 줄이는 일은 노동자만의 문제도 아니고 기업만의 과제도 아니다. 위험 공정을 안전하게 운영하는 기업의 책임, 충분한 인력과 예산을 확보하는 정부와 지자체의 역할, 값싼 비용과 빠른 공정만 요구하지 않는 발주자와 소비자의 선택이 함께 바뀌어야 한다. 수십 년간 한국 경제를 떠받쳐 온 울산과 같은 산업도시가 죽음의 공단 이미지를 벗고,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생산 도시로 전환하는 것이야말로 지역의 미래 경쟁력이다. 서정호 울산과학대 화학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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