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철 울산대학교병원 암병원장(혈액종양내과 교수)
조재철 울산대학교병원 암병원장(혈액종양내과 교수)
최근 우리 곁을 지켜온 든든한 버팀목 ‘국민 배우’ 안성기 씨의 별세 소식은 대한민국 전체에 큰 슬픔을 안겼다. 반세기 넘게 스크린을 누비며 따뜻한 미소를 보여주었던 그였기에, 혈액암 투병 끝에 전해진 비보는 더욱 안타깝게 다가온다. 이번 소식은 대중에게 혈액암이라는 질환에 대한 경각심을 다시 한번 일깨우고 있다.

단순한 피로인 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우리 몸의 면역 체계를 무너뜨리고 있었던 침묵의 살인자 혈액암. 그중에서도 안성기 배우가 앓았던 림프종은 어떤 질환이며, 우리는 무엇을 주의해야 할지 조재철 울산대학교병원 암병원장(혈액종양내과 교수)과 살펴봤다.

# 감기인 줄 알았는데 암?림프종의 정체

혈액암은 백혈병, 악성 림프종, 다발골수종 등을 아우르는 질환이다. 그 중 림프종은 우리 몸의 면역을 담당하는 림프조직 세포가 악성으로 변해 무한 증식하는 종양이다. 림프관은 혈관처럼 온몸에 퍼져 있어 목, 겨드랑이, 사타구니, 뱃속 등 어디에서나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문제는 초기 증상이다. 혈액암은 일반적인 건강검진 항목만으로는 발견하기가 매우 어렵다. 초기에는 통증 없이 림프절이 붓는 정도로 시작하기 때문에, 많은 환자가 단순 감기몸살이나 피로 누적으로 오해해 치료 시기를 놓치곤 한다.

그래서 이런 증상이 있다면 의심해 봐야 한다.

△목, 겨드랑이, 사타구니에 딱딱한 멍울이 만져진다(통증이 없는 경우가 더 많음) △특별한 이유 없이 6개월 이내에 체중이 10% 이상 감소했다 △밤에 잠을 잘 때 옷이 흠뻑 젖을 정도로 식은땀이 난다 △38도 이상의 원인 불명 고열이 지속된다.

# 나이 들면 당연?잘못된 속설이 화 부른다

림프종은 크게 호지킨 림프종과 비호지킨 림프종으로 나뉘는데, 우리나라 환자의 90% 이상은 비호지킨 림프종이다. 특히 이 질환은 나이가 들수록 발생률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어 고령층의 주의가 필요하다.

인터넷상에는 ‘나이 들어 생긴 림프종은 진행이 느리니 치료 안 해도 된다’는 속설이 떠돈다. 하지만 이는 대단히 위험한 정보다. 일부 진행이 느린 림프종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림프종은 적절한 시기에 치료받지 않으면 생명을 위협한다. 자의적 판단이 아닌 전문의의 정확한 진단이 생사를 가르는 핵심이다.

# 표적치료·이중항체요법·CAR-T 세포치료…완치 향한 희망의 기술

다행히 의학의 발전은 혈액암을 불치병에서 완치가 가능한 병이 됐다. 과거에는 독성이 강한 항암제에 의존했다면, 최근에는 암세포만 골라 공격하는 표적치료제와 환자의 면역세포를 강화해 암을 물리치는 이중항체 및 CAR-T 세포치료제 등이 도입돼 생존율이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또한, 조혈모세포 이식은 골수 기능을 회복시켜 완치에 이르게 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치료 과정에서 면역력이 떨어져 생기는 감염증은 무서운 합병증이지만, 이 역시 예방적 항생제와 적극적인 약물 치료를 통해 충분히 극복해 나가고 있다.

# 건강식품 맹신 금물골든타임 사수하라

투병 중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검증되지 않은 민간요법이나 건강 보조식품이다. 암을 완화시킬 수 있다는 말에 혹해 섭취한 식품들이 오히려 항암제와 충돌해 간 수치를 높이거나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치료 중에는 반드시 모든 약물과 건강식품은 담당 의사와 상의해야 한다.

울산대병원 혈액내과 조재철 교수는 “혈액암은 아직 명확한 예방법이 없다. 결국 가장 좋은 방법은 내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설명되지 않는 발열, 식은땀, 체중 감소가 2~4주 이상 지속된다면 주저하지 말고 병원을 찾아 경부·흉부·복부 영역이 포함된 CT 검사 등을 받아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이어 “배우 안성기 씨는 투병 중에도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며 희망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가 남긴 영화들이 우리 가슴 속에 영원히 남듯, 그가 몸소 보여준 병마와의 싸움은 이제 남은 우리에게 ‘건강을 돌보라’는 소중한 메시지가 됐다. 지금 혹시 내 몸 어딘가에 만져지는 멍울이 있지는 않은지, 이유 없는 피로가 계속되지는 않는지 한 번 더 살펴보는 것이 고인을 추모하는 또 다른 방법이 아닐까 싶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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