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진 개운초 교사
김은진 개운초 교사

매년 학년말이 되면 교사들은 다음 해를 위한 학년 희망서를 앞에 두고 많은 고민에 빠진다. 지난 1년 동안 보고 들은 학생과 학부모의 성향, 동학년 구성, 업무난이도 등을 종합하여 내규에 따라 내년 학년 희망을 적어내지만 세상만사가 그러하듯 원하는 대로만 흘러가진 않는다. 이 과정에서 최후의 보루로 존재하는 학년이 있으니, 바로 초등학교 1학년 담임의 자리이다.

1학년 아이들은 그 자체로 모두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1학년 담임으로서 감수해야할 결정적인 변수가 하나 있으니 바로 학급 구성원에 대한 ‘데이터의 부재’이다. 다른 학년은 학생들의 성향, 교우관계, 학업 수준 등을 반영하여 반이 편성되었고 학급운영에 필요한 정보를 인계받을 수 있지만 1학년은 미지의 세계, ‘복불복’의 영역에 가깝다.

1학년 반편성은 2월 말의 새학기 준비 기간에 새로운 1학년 담임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1월 가입학날 제출받은 ‘신입생 가정환경조사서’에 담긴 정보가 반편성 작업의 근거자료가 된다. 성별, 쌍둥이 여부, 동명이인, 가정환경 등 객관적 요소를 먼저 균등분배한다. 여기서 경험 있는 교사들이 공유하는 팁이 하나 등장하는데, 바로 ‘거주지’의 분산이다. 같은 아파트 아이들이 한 반에 몰리면 학부모 커뮤니티가 지나치게 밀착되어 때로는 작은 문제도 크게 번지거나 교사의 학급 운영에 과도한 간섭이 생기기도 하기에 이를 방지하기 위한 나름의 방책이다.

가정환경조사서의 ‘우리 아이에 대해 해주실 말씀’ 칸은 학부모와 교사가 만나는 첫 번째 통로다. 정성스럽게 아이의 특성을 적어준 글귀에서 가정의 화목함을 읽어내기도 하고, 때로는 특정 문구에서 민원의 전조를 읽기도 한다. 교사들은 이 파편화된 정보들을 모아 최선의 균형을 맞추어 반별 명부를 작성하고 이를 봉투에 담아 블라인드 방식으로 무작위 추첨을 한다. 가장 긴장되는 이 순간을 거쳐서야 비로소 1학년 담임은 자신이 한 해 동안 책임지고 이끌어갈 아이들을 마주하게 된다.

최근 1학년 담임을 연달아 맡으며 1학년 반편성의 복불복을 극명하게 체험했다. 1학년 담임으로서 처음 맡았던 학급과 두 번째로 맡은 학급은 기본학습능력에서 많은 차이가 났다. 처음 맡았던 1학년 학급은 다른 반보다 학습분위기가 좋았고 한글 미해득이었던 한 아이도 개별지도를 통해 1년 동안 많은 성장을 이뤘다. 반면 다음 해 만난 1학년 학급은 다른 반보다 기본학습능력이 눈에 띄게 낮았다. 아이들은 여전히 귀여웠지만, 학생 간의 학습 이해도 차이가 너무 커서 다양한 수업 활동을 시도하는 데 한계가 있었고, 쉬는 시간까지 쪼개어 개별지도를 해도 대상 아이가 여럿이라 집중지도가 쉽지 않았다. 만약 1학년 반 편성에 학습역량을 반영할 수 있다면 학급 쏠림 현상을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었겠지만 아직 제대로 학교 공부를 해보지 않은 아이들이기에 현 시스템에서 이를 가늠하고 반영하는 것은 아직 요원하다.

1학년 반편성 미리 조정 부탁 가능할까?

예전에는 1학년 입학을 하면 당연히 학반은 배정되는 대로 받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학부모 커뮤니티의 발전 때문인지 반배정 전에 미리 학교에 개별적인 요청사항을 전하는 학부모님들도 생기는 추세다.

한 번은 반편성 결과를 학부모 전체 알림으로 발송한 후 뒤늦게 환경조사서 뒷면에 별첨해놓은 학부모 요구사항을 발견하게 되어 곤혹스러웠던 적이 있다. 유치원 시절 딸아이를 괴롭혔던 남학생과 같은 반이 되지 않도록 해달라는 내용이었는데 그 내용을 놓쳐 하필 두 아이가 같은 반에 배정되어 있었다. 이미 전체 안내문자가 나간 뒤였지만 그대로 두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가 더 클 것 같다는 판단으로 결국 다시 조정을 하기로 했다. 옆반이었던 그 여학생과 우리반으로 배정된 여학생 한 명을 서로 맞바꾸기로 하였는데 우리반의 누구를 보내야하나 참 고민이 되었다. 짖궂은 남학생을 이겨먹을 당찬 여학생을 보내는게 좋을 것 같았고, 신입생 환경조사서만 봐도 사랑받고 자라 야무질 것 같은 한 여학생이 눈에 들어왔다. 입학 후 만남이 기대되는 아이였는데, 그 아이를 보내기로 마음 먹고 명단을 조정하여 재안내를 했다. 우리반이 된 여학생은 어린이집보다 초등학교가 훨씬 좋다며 잘 적응해주었고 나의 믿음과 아쉬움을 모른 채 옆반으로 가게 된 여학생은 예상대로 당차고 야무진 아이였고 그 남학생과 상관없이 1년 내내 밝게 생활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1학년의 반편성은 담임에게도 신입생들에게도 복불복의 영역이 크지만, 그 떨림 뒤에 따라오는 인연과 아이들의 삶을 보듬는 것, 그것이 바로 1학년 담임의 진짜 역할일 것이다.

김은진 개운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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