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 가게가 외국인으로 북적인다. 천정까지 쌓아놓은 제품을 만져보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는가하면, 침대 위에 펼쳐놓은 이불에 누워 데구르 굴러보는 사람도 있다. 그 옆에선 영상통화하며 품목을 설명 중이고 한쪽에선 흥정이 길어진다. 가게 앞에는 ‘중국어 가능’, ‘전 세계 택배 가능’ 등의 팻말을 걸고 관광객을 유혹한다.
1960년대부터 혼수 전문 상권으로 형성된 광장시장 이불 골목엔 하루에도 쉴 새 없이 관광차가 들어온다. 대부분 동남아시아 인이지만 특히 대만인이 많다. 대만과 싱가포르는 따뜻한 나라여서 이불공장 자체가 없는 데다, 이따금 매서운 한파가 몰아쳐 가성비 좋은 우리나라 제품이 인기가 좋다. 여름엔 인견이, 겨울엔 극세사가 잘 팔린다. 일본 관광객들은 ‘이부루’라 부르며 고유명사처럼 사용한다.
이불에 대한 몇 가지 기억이 있다. 겨울밤, 아랫목에 펼쳐놓은 이불 밑으로 온 식구가 발을 들이밀고 둘러앉았다. 고구마를 깎아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방구들이 식지 않도록 깔아놓은 홑이불로 미끄럼도 탔다. 이불 위에 동생을 태우고 빙빙 돌리다가 떨어지지 않으려 꽉 잡은 동생의 어깨가 탈골된 적도 있었다. 놀란 아버지가 들쳐 업고 뼈를 잘 만진다는 이웃 동네 어르신에게 달려갔다.
숨바꼭질을 즐겨하던 그때 자주 숨었던 곳은 이불장 안이거나 마당에 널린 이불 속이었다. 잡히지 않으려 도망가다가 바지랑대를 건드려 줄이라도 터지면 땅에 떨어진 이불은 흙 범벅이 되었다. 엄마에게 혼날까 무서워 깜깜한 밤까지 집에 들어올 수 없었다. 중학교 다닐 때 그림그리기 미술 숙제는 공작이 그려진 이불 홑청을 보고 그대로 따라 그렸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제법 괜찮아 보여 은근히 칭찬을 기대했지만, 선생님은 누가 그려줬냐고 물어보아 많이 섭섭했다.
지금이야 세탁소나 빨래방에서 기계세탁이 가능해졌지만 예전에는 일일이 손빨래를 했다. 집집마다 커다란 고무대야에 하이타이 가루를 풀고 발로 밟았다. 그럴 때면 엄마들의 한숨이나 눈물도 녹아 나왔고 꿉꿉했던 마음도 조금이나마 씻겼으리라. 깨끗해진 이불을 돌담이나 블록 담 위에 걸쳐놓으면 햇살이 말리며 새물내를 입혀줬다.
삼국시대엔 삼베나 모시, 비단 이불을 주로 사용하다가 조선시대에 목화가 보급된 이후 솜이불이 보편화됐다. 일제 강점기엔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대량생산이 이뤄졌고 화려한 프린트가 유행했다. 80년대 들어서서는 극세사 등 세탁이 쉬운 이불을 많이 찾았다. 요즘은 미니멀하고 깔끔한 디자인의 기능성 소재에 관심이 높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인기 있는 호랑이 밍크 담요는 우리 집에도 한 채 있었다. 가장 한국적인 디자인이라 쇼핑몰 아마존에서 대접받았지만 너무 무거워 덮고 있으면 맹수에 짓눌린 기분이었다. 이후 따뜻하고 부드러운 극세사 이불로 교체해 버렸다. 살면서 침구는 여러 번 바꾸었으나 혼수로 마련해 온 목화솜 이불은 쉽게 정리하지 못했다. 포근한 잠으로 세상을 헤쳐 갈 힘을 얻기를 바라는 친정엄마의 염원이 담겨있기 때문이었다.
큰아이는 엄마의 빈자리를 이불로 채우곤 했다. 애착 이불 모서리를 만지작거리거나 베개 지퍼를 어루만지며 젖병을 빨았다. 자라면서 그 버릇은 대부분 없어졌지만 긴장하거나 집중할 사안이 생기면 다시 도지곤 한다. 아마도 그런 행동을 하며 심신의 안정을 느끼는 것이리라.
취직한 아이에게 이불 한 채 마련해 주러 시장에 들른 참이었다. 집에서 사용하던 것은 여러 해 덮은 탓에 세탁해도 거뭇거뭇한 얼룩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깨끗한 걸 골랐지만 재질이 다르다며 난색을 보였다. 여러 군데를 둘러보다 다행히 비슷한 촉감을 찾았다.
사람마다 이불의 정의는 다를 테지만 낮 동안의 긴장을 이완시키며 위로받는 것은 대개 비슷할 것이다. 남편에겐 가장의 무게를 내려놓고 자신으로 돌아가는 퀘렌시아이며, 새로운 직장으로 출근하는 아이에겐 용기를 북돋워 주는 힘이 되리라.
주인은 흥정 마친 제품들을 진공 포장한다. 부피가 금세 십분의 일로 줄어든다. 이제 저들은 곧 제나라로 돌아가 한국산 이부루를 덮고 지친 하루를 위안 받으리라. 타지에서 둥지 틀 아이도 이 이불을 덮고 잠을 청할 것이다. 나 대신 잘 다독여 주기를 바라며 가만히 깃을 토닥여준다. 이상수 수필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