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무림이 혼돈지세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강호를 호령하던 보수석열은 을사년 겨울, 뜬금없이 내지른 ‘계엄신공’이 비루잡술임이 천하에 드러나며 몰락의 길을 걷는다. 우성마방은 독존동혁의 내부 숙청과 분란으로 자멸의 위기에 처했고, 영남 본향마저 좌성마방의 침공에 속수무책인 지경이다. 부활재명의 와대입성으로 기세등등한 호남마방은 연일 승전보를 울리며 달구벌까지 장악태세다. 하지만 승부의 향방은 모를 일. 사방에서 화기가 차오르고 황룡과 백룡이 여의주를 다투는 병오년의 봄. 팔도마방 장악을 위한 피비린내 나는 무림대회전의 서막이 올랐다. 강호의 주인은 과연 누가 될 것인가. 정치무협이 그 궁금증을 풀어간다.
# 천하무림 열국지 혼돈지세
드런대공의 페르시국 초토화가 미궁에 빠진뒤 강호 열국의 이합집산이 점입가경이다. 때를 만난 북극러국의 부침대공은 잠두비행 수백대로 잘란털공의 목을 죄고 백두정은은 소녀주애를 앞세워 동해로 서해로 연일 대포질이다.
열강외교의 선두는 왜국이었다. 포화가 뒤흔든 아랍을 뒤로하고 드런대공 품에 가장 먼저 안긴 무사는 뜻밖에 왜국 무녀 다가궁주였다. 다가궁주가 누군가. 몇해전 아배신공이 자객의 철포탄에 비명횡사할 때, 후계 1순위로 찍은 여전사 아닌가.
왜국 강호가 즐비한데 아배가 다가궁주를 찍은 이유를 두고 소문이 분분했다. 아배일족이 다가궁주를 신임한 것은 자민방파 비서에 적힌 혈통 족보 때문이라는 설이 비등했다. 동해를 건너 도래한 고구려의 후예가 나라에 터를 잡고 그 일족이 뿌리를 내린 곳이 다가궁주의 본향이다. 무려 1,300년 전 전설의 무림시절, 왜의 무림질서를 흔든 자객댄무가 있었다. 나라시대를 흔든 백제무림이 천황을 이어가던 시절, 자객댄무가 백제계를 몰아내고 왕좌에 올랐으니 그가 바로 고구려계 댄무천왕이다. 그의 아들이 다가태왕이고 그 뿌리가 다가궁주에 이어졌다.
뿌리야 어찌됐든 다가궁주의 선제 외교술에 페르시국발 유류대란은 오리무중이다. 이중재명을 벗어던지고 부활재명으로 와대궁주가 된 재명대공은 천구를 띄워 태평양을 건너갈 준비를 하다 다가궁주에게 뒤통수를 맞았다. 몇 달 전 와신돈 백악궁에서 분위기를 띄워 놓았기에 선제입국으로 필살기를 보일 수 있었는데 안구회전술이 실기한 모양새다.
# 병오춘절, 강호지세 급변
붉은 말이 날뛰는 적토병오 춘절이다. 양기가 솟구치니 병화(丙火)와 오화(午火)가 뒤엉킨 형국이다. 적토가 불을 뿜고 황룡과 백룡이 여의주를 다툰다. 사방이 요란하고 천지간이 불의 기운이다. 하필 화기가 차오르는 시점에 마방 서열을 정하게 됐으니 분란지세는 필연이다.
한해 전, 유월 대회전에서 자중지란을 보인 우성마방은 태극우파 절단논의가 겨울까지 이어져 자멸상황이다. 설상가상 추대한 독존동혁이 절윤비책을 거부하며 동훈일족을 처단하는 잡술에 몰입하자 내부분란이 극에 달해 우성본향 영남마방까지 좌성의 침공에 속수무책인 지경이다.
보수석열이 양산대공의 보수분열 필살기라는 비밀이 드러난 을사년 겨울 이후, 무림의 세대결은 일방우세 국면이 전개되는 양상이다. 강호에서는 양산대공의 석열 등용 이후 석열의 정체를 두고 꾸준히 설왕설래했다. 한쪽은 불의에 굴하지 않는 정의의 화신으로 양산대공의 복심이라 했지만 다른쪽은 고개를 저었다. 9수등판과 주경야주(酒敬夜酒)의 일상에 경처지세의 성정까지 석열의 이름 앞에 정의를 붙이기엔 가소롭기 짝이 없다며 혀를 차는 쪽이 상당했다.
석열의 정체는 계엄신공으로 드러났다. 뜬금포로 내지른 계엄신공이 졸렬용현 무리배의 아부신공에 보수석열 주류혼배술이 빚은 비루잡술로 밝혀진뒤 지리신공과 백두권법의 비책이 용산밀실에 전해졌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는 조루운풍처럼 흩어졌다. 율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직후 와해지국의 보수마방은 그날부터 니탓과 네탓에다 산놈은 살아야 한다는 기회주의 잡술까지 혼돈지세다.
아직은 초반 탐색이라 결기를 모으면 반전의 기회가 있다는 자도 있지만 오호통제다. 여의마방 사정이 태극우파 장악설로 분분한데다 순천정현의 공천심판이 공정성 문제로 흔들리자 탈락무사들의 법적 대응이 이어지는 중이다. 달구벌의 사정은 비루직하요, 양광마방은 도방수령이 탈락직후 삭발단식 중이다.
강호 사정이 이쯤되니 춘추 이후 강호의 양대지분은 이미 지난 시절 구전이 됐다. 영남마방의 용병이 간자로 밝혀진뒤 간자 무리의 비리단자가 속속 드러나자 오합지졸 형국이다. 아차 싶은 영남북파 퇴계인맥과 영남남파 남명인맥이 소백을 따라 가야지령에 모여들어 무림의 뿌리가 사림에 있음을 천명한뒤 독존동혁의 용병잡술 적멸기를 수거하자고 나섰다.
기세가 탱천한 호남마방은 쾌재다. 어중나발의 민심분석방이 연일 마방인기지수를 조사한뒤 조보에 결과를 뿌리니 나오는 족족 승전보다. 얼씨구, 불과 이레전 달구벌 마방 조사는 호남마방에 기적같은 낭보였다. 대두부겸이 방통진숙은 물론이고 육선호영까지 누르는 형국임을 걸개로 걸었다. 절씨구 쾌재 아닌가.
# 울산마방 퇴역무사 반란설
병오 원단부터 팔도무림 9차 대회전 이야기가가 강호에 떠돌 때, 광화벌은 서둘러 팔도 두령 서열정리에 분분했다. 병오원단의 북풍이 잦아들고 동북방에서 조풍(條風)이 불어오니 그 때부터 명서풍(明庶風)의 길목까지 삽시간이다. 개화만발 호시절이 지나 적도열풍이 웅비할 시점에 시작되는 무림대회은 청명하풍이 불어야 길하다.
천하좌방 방장에 등극한 걸래(傑來)청래는 이리병도를 불렀다. 영웅이 도래한다는 걸래의 무림명(武林名)이 위세를 떨치는 시간이다.
"와대여론이 7할지수로 가는 마당이니 이번 팔도무림 대회전이야 말로 석권지세 아닌가?"
청래의 실금미소에 병도가 이리살수로 적은 비첩방을 펼쳤다.
"경북마방과 달구벌, 그리고 울산마방만 적절간택 한다면 8도 장악도 가능합니다. 어중나발의 민심분석방 조사로는 달구벌의 부겸대두와 울산마방의 변복쌍욱이 필승지세입니다"
여의나루 좌성마방 본채에 ‘팔도장악 천하필승’이 걸개로 걸린 것은 청래와 병도의 밀실간담 직후였다.
무림의 좌우본채가 위치한 여의나루가 어떤곳인가. 무림대회 때마다 와대입성의 교두보로 여겨진 심장이다. 이십여 회의 무림대회마다 팔도를 장악한 마방이라도 결국 여의나루에 선단을 꾸려야 무림계를 장악할 수 있지 않았던가. 선단이 팔도진품을 가득 싣고 육전거리를 타고올라 와대로 입성해야 천하강호의 주인이 된다는 사실은 무림 5,000년 전통이다.
좌성마방이 천하좌방으로 기세를 높일 때, 우성마방의 분란은 잡탕지세였다. 순천정현의 결전지 발표 직후부터 터져나온 불복소송이 일부 마방에서 멱살잡이로 번지더니 전통우파 주둔지조차 좌파무사의 자객침투에 흔들린다는 첩보다.
여기에 울산마방에서는 급보가 전해졌다. 공천초반 단일대오로 결정한 울산방 우파 무사에 불복선언한 이가 나타났으니 바로 삼선방장에 여의무사까지 지낸 기득권사 삼선맹우였다.
"나 맹우는 오뉴월 울산방 무림결전에 독고필승(獨孤必勝)으로 임하겠다. 작금의 울산마방은 좌성졸부들의 염탐지역이 됐다. 삼선득력을 운기탱천하여 백년비술을 끌어모아 좌파무리의 잠입을 봉쇄하겠노라."
결기는 분투이나 과정이 구설이다. 울산마방의 강호두령이 굳건한데 삼선기득에 여의방 총책까지 수차례 지낸 노자객 아닌가. 울산 강호 무사들 사이에선 삼선무림 어른이 결기를 펼쳐 좌성마방의 두각을 막겠다면 "결기에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노장의 공력을 불살라 우성마방 사수에 마지막 불꽃을 태우겠노라" 선언하고 우성마방 결전합방에 백의종군 깃발을 흔드는게 먼저라는 주문이다.
신불굴사의 현중거사를 뵈러 갔던 상진밀공이 1보를 받아왔다. 태화본진에 모인 울산방 우성마방 책사들이 웅성거리며 모여들었다. 겹두대부는 밀랍을 해제하고 한지를 펼쳤다.
장기어신 불악이엄( 藏器於身 不惡而嚴), 여덟 글자다. 칼집 속의 날카로움은 드러내지 않아도 움직인다. 소란과 난장이 사방을 혼란에 빠뜨리면 원인을 찾아 엄하게 잘라야 한다. 난제를 푼 여덟 글자를 한나절 살핀 겹두대부는 좌우를 물리고 태화본진 장춘오 밀실로 표표히 걸어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