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400억 원의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도로를 3배나 넓혔지만, 정작 그 도로를 터전 삼아 평생을 살아온 농민들이 논밭으로 들어갈 길은 사라지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울산 북구 강동동 신현교차로~옛 강동중학교 구간 도로 확장공사 현장의 이야기다. 현재 공정률이 80%를 넘기며 올해 말 준공을 앞두고 있지만, 주민들의 생계가 걸린 농로 단절 문제는 여전히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어 농민들의 속만 타들어 가고 있다.

취재진이 찾은 현장의 모습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다고 한다. 드넓은 농경지와 맞닿은 도로를 확장하면서, 도로와 농지 사이에 보행 공간과 함께 단차가 큰 화단까지 조성해 놓았다. 이 때문에 트랙터나 이앙기 같은 농기계는 물론이고 일반 차량조차 논밭으로 진입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졌다. 도로와 접한 곳에 논밭을 가지고 있는 20여가구의 주민들은 기존에 이용하던 길마저 뚝 끊겨버린 것이다.

이번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행정당국의 전형적인 탁상행정과 설계 부실에 있다. 도심에서 정자항으로 가는 옛길인 해당 구간은 평소 농기계도 운행되던, 사실상의 농삿길이었다. 울산시가 “법적으로 명확한 농로가 아니었다”고 하지만, 이는 현장 조사를 소홀히 했음을 자인하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특히 주민들과 시공사가 이미 2024년부터 지속적으로 울산시에 문제를 제기했음에도 설계에 반영되지 않았다고 한다. 법적으로 하자가 없었는지는 몰라도 충분히 예상 가능한 민원 발생을 막지 못한 것은 분명한 행정 미스다.

농로 단절이 장기화되면서 농민들이 입는 피해는 막대하다. 당장 올해 농사를 타인의 배려로 겨우 지은 주민들은 내년 농사를 장담할 수 없어 전전긍긍하고 있다.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땅으로 전락하면서 땅값마저 폭락해 농민들의 재산권 또한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다.

행정의 최우선 가치는 주민의 삶을 이롭게 하는 데 있다. 농사가 급한 주민들을 위해서라도 울산시는 더 이상 방관만 해서는 안된다. 이번 주부터 해결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나선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확장도로 옆 배수로 상부를 활용해 통행로를 만들어달라는 주민들의 대안을 포함,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즉각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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