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시의회 일부 의원들이 ‘울산광역시 공론화 추진에 관한 조례안’을 발의했다는 소식이다. 트램사업이나 간선급행버스체계(BRT)처럼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고 시민 찬반이 첨예하게 갈리는 대형 정책들을 시민의 ‘숙의(熟議)’를 통해 결정하자는 취지다.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행정 독점이나 소모적인 공방으로 치닫던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 제도적 틀 안에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겠다는 시도는 그 자체로 신선하며 긍정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조례안이 성글면 현장에서 작동하기 어렵다. 제9대 시의회 ‘1호 조례안’이라는 상징성에 걸맞은 실효성을 갖추려면, 현재 발의된 조례안의 허점들을 보다 촘꼼하게 보완해야 한다. 이왕 제도를 만드는 단계라면 시행령이나 규칙에 미룰 것이 아니라, 조례 자체에서 갈등의 불씨를 원천 차단할 수 있도록 정교하게 다듬는 것이 옳다.

가장 눈여겨 봐야할 지점은 ‘조례안 제10조’가 공론화 제안 주체를 시장으로 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갈등의 당사자인 시민이나 이해관계인, 혹은 민의를 대변하는 시의회가 특정 현안을 공론화해 달라고 공식 요구할 수 있는 통로가 막힌 셈이다. 이대로라면 행정에 부담을 주거나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은 아예 공론화 테이블에 오르지도 못하고 묻힐 우려가 크다. 타 지자체처럼 일정 수 이상의 시민 서명으로 청구하는 ‘주민 직접 청구형’(제주)이나 ‘시의회 발의형’ (창원)등의 다각적인 제안 주체를 반드시 추가해야 마땅하다.

‘시민 대표성’을 확보할 구체적인 기준이 빠진 점도 문제다. 숙의민주주의의 성패는 ‘누가 참여하는가’의 공정성에 달렸다. 그러나 이번에 제출된 조례안은 ‘참여자 구성에 관한 사항’을 전적으로 위원회가 구성하는 추진단에 일임하고 있어, 자칫 특정 성향이나 편향된 인사가 공론장을 독점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편향성 시비가 일면 공론화 결과는 또 다른 갈등의 시작점이 될 뿐이다. 다른 지자체 조례에서 명시된 무작위 추첨과 인구통계학적 안배 기준을 반드시 명시해야 하는 이유다.

울산은 지난 민선7기에도 유사한 숙의 과정을 거쳤지만 첨예한 대립 속에 제대로된 결론을 내지 못했던 뼈아픈 경험이 있다. 앞으로 조례안을 법안을 심사할 행정자치위원회는 다른 지역의 사례와 현장의 목소리를 적극 반영해 더 촘촘하게 보완해야 한다. 첫 단추를 잘 꿰어야 울산이 진정한 숙의민주주의 도시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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