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시 예술인 지위와 권리 보장 조례 구상안
울산시 예술인 지위와 권리 보장 조례 구상안
울산시는 2013년 「울산광역시 예술인 복지 증진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예술인 복지 증진과 창작 활동 활성화를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 이후 청년 예술인과 장애 예술인 지원, 대출 이자 지원 등 다양한 사업도 추진해왔다.

그러나 기존 조례는 ‘복지’와 ‘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권리침해 예방과 피해 발생 시 상담·조사·구제로 이어지는 체계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울산의 예술활동증명 발급률이 전국 최하위 수준이라는 점, 전달 체계와 전문 인력 확보의 한계도 개선 과제로 꼽힌다.

지역 예술계 일각에서는 울산시 문화정책이 예술인 지원보다 관광 산업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돼 왔다. 문화예술도시를 표방하면서도 정작 지역 예술인이 안정적으로 활동할 토대는 충분하지 않다는 문제의식이다.

울산의 문화예술정책은 그동안 창작비와 사업비를 지원하고 공연·전시 기회를 마련하는 방식으로 운영돼 왔다. 하지만 권리침해 대응 체계가 없다면 예술인은 여전히 취약하다. 계약서를 제대로 쓰지 못하고, 수익 배분에서 밀리거나 성희롱·성폭력, 갑질을 겪어도 어디에 호소해야 할지 모르는 구조가 반복될 수 있다.

울산형 조례에는 예술인의 창작과 표현의 자유 보호, 직업적 권리 신장, 성평등한 예술환경 조성, 권리침해 구제 등이 명확히 담겨야 한다. 예술 표현의 자유와 동등한 직업적 지위, 안전한 활동 환경, 정책 참여와 정보 접근권도 핵심 권리로 포함돼야 한다.

특히 시장의 책무를 강화하는 조항이 중요하다. 예술 지원 사업에서의 차별 금지, 문화 다양성 보장, 예술인 정책 참여, 피해 구제 시책 마련 등을 권고가 아니라 의무로 규정해야 실효성이 생긴다. ‘노력할 수 있다’가 아니라 ‘해야 한다’는 조항으로 바뀔 때 행정 책임도 분명해진다.

실행 장치도 필요하다. 조례에는 예술인 지위와 권리보장을 위한 지원 계획 수립, 예술인 권리 현황과 활동 실태에 대한 정기 조사, 관련 예산 연계가 포함돼야 한다. 울산은 아직 예술인 권리침해와 활동 실태에 대한 체계적 조사가 부족한 만큼, 정확한 현장 자료를 바탕으로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

예술인 권익·지원센터 설치 근거도 마련돼야 한다. 계약 분쟁, 임금체불, 저작권 침해, 성폭력 피해, 세무·회계 문제 등을 상담하고 법률 지원과 구제 절차로 연결하는 창구가 지역 안에 필요하다. 현재 울산민예총이 운영하는 ‘울산예술인 권익보호센터’ 역시 이러한 공백을 메우기 위한 시도로 볼 수 있다.

광주광역시의 「예술인 지위와 권리 보장 조례」는 울산에 시사점을 준다. 광주는 예술인권리보장법 시행 이후 지방자치단체 중 처음으로 관련 조례를 제정했고, 권리 보장 중심의 접근과 예술인권익지원센터 등 피해 구제 시스템을 명시했다. 조례 제정 과정에서도 민관협치를 통해 현장 예술인의 목소리를 반영했다.

울산 역시 단순한 복지 지원을 넘어 권리침해를 예방하고, 피해 발생 시 실효적으로 구제할 수 있는 지역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불공정 계약, 부당한 활동 방해, 성희롱·성폭력 등 구체적인 권리침해 행위를 조례에 명시하고, 이를 상담·조사·구제할 전문 기구 설치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성희롱·성폭력 예방교육과 피해 대응 매뉴얼도 필요하다. 예술 현장은 프리랜서 계약, 도제식 관계, 프로젝트 중심 작업이 많아 권력관계가 불분명하게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예방교육과 기관별 책임 체계가 없으면 피해자는 침묵하고 가해자는 다시 현장으로 돌아오는 일이 반복될 수 있다.

위원회 설치와 민관협치 체계도 중요하다. 예술인 지위와 권리보장에 관한 주요 사항을 심의·자문할 위원회에 현장 예술인, 예술단체, 시민사회, 전문가가 참여해야 정책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

예술활동증명 제도 개선도 울산의 과제다. 예술활동증명은 예술인 복지와 지원 사업의 기본 요건이 되지만, 제도를 알지 못하거나 절차의 문턱을 느끼는 지역 예술인도 적지 않다. 지역 문화재단 등이 등록 상담과 현장 예술인 발굴 지원에 나서는 적극 행정이 필요하다.

다만 조례 제정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울산 역시 조례와 함께 예산, 전담 인력, 민관 협력 체계를 갖춰야 한다. 청년 예술인의 지역 이탈, 시 지원금 진입장벽, 풀뿌리 예술단체의 지속성 문제도 함께 풀어야 한다.

예술인 권리 보장은 복지 차원의 문제만이 아니다. 문화도시 울산의 기반을 다지는 일이다. 예술인이 안정적으로 창작하고, 정당한 대가를 받고, 부당한 일을 겪었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시민의 문화 향유도 넓어진다.

민선 9기 울산시가 문화예술정책을 ‘지원 중심’에서 ‘생태계 중심’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면, 그 첫 조건은 예술인의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일이다.

이강민 ‘봄’ 미학연구소 대표
이강민 ‘봄’ 미학연구소 대표

“예술인 권리 보장은 복지 넘어 도시 경쟁력”


[인터뷰] 이강민 울산미학연구소‘봄’ 대표

이강민 ‘봄’ 미학연구소 대표는 예술인 지위와 권리보장 조례를 “복지 차원을 넘어 도시의 문화 경쟁력을 만드는 제도”라고 설명했다.

이 위원은 “문화다양성은 지역 고유의 정체성을 지키는 민주주의의 문제이자, 동시에 도시 브랜딩과 산업적 자산의 문제”라며 “콘텐츠 시대에는 지역문화 자체가 도시 경쟁력이 된다”라고 말했다.

그는 예술인이 지역 문화자원을 만들고 확장하는 주체인 만큼, 창작 활동이 멈추지 않도록 제도적 기반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불공정 계약, 정당한 대가 미지급, 발주처의 갑질 문제를 주요 과제로 꼽았다.

이 대표는 “예술인 복지는 생존을 위한 사회보장에 가깝다면, 권리 보장은 예술활동의 정당한 대가를 받고 있는지 들여다보는 문제”라며 “예술인이 제대로 활동할 수 있어야 지역의 문화자원이 자산이 된다. 울산이 문화예술도시를 말하려면 예술인의 권리 보장부터 제도화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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