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지방선거 기간동안 가장 뉴스의 초점이 된 장소는 공업탑이다. 울산 도로망의 중심에 있는 공업탑이지만 실상은 도로망의 기능 말고도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곳이다. 특히 지난 지방선거 기간동안 공업탑은 시장과 교육감 출마자, 국회의원 출마자까지 선거사무실을 두고 한달여 동안의 선거전을 펼진 전장의 지휘부였다. 이 때문에 공업탑 주변의 건물과 도로변은 후보들의 플랜카드 수십여개가 걸개로 걸려 저마다의 구호로 유권자들을 맞았다. 오늘 울산여지도는 그 선거전의 중심에 있던 공업탑 이야기를 풍수의 지형과 지세로 풀어보려고 한다.
공업탑을 이야기 하기 위해서는 남산부터 올라야 한다. 남산에 오르면 울산을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산맥과 그 땅이 빚은 물길이 잔잔하게 펼쳐진다. 한눈에 봐도 풍수의 명당이다.
잠시 울산의 풍수지리를 살펴보자. 풍수지리에서는 좋은 터를 이야기할 때 흔히 ‘산이 감싸고 물이 흐르는 곳’을 으뜸으로 꼽는다. 그 관점에서 본다면 울산은 풍수적 조건을 두루 갖춘 땅이다. 울산의 지형은 서쪽에는 태백산맥의 남단인 영남알프스가 병풍처럼 둘러서 있고, 동쪽에는 푸른 동해가 펼쳐져 있다. 풍수에서는 뒤를 받쳐주는 산을 현무(玄武)라 하는데, 울산의 산지는 거대한 현무의 역할을 하며 도시 전체의 기운을 떠받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1,000m가 넘는 산봉우리들이 연이어 솟아 있는 영남알프스다. 이 울타리 같은 지세는 울산의 기맥(氣脈)이 시작되는 근원이다. 그 지세에서 내려온 기운이 물을 만나면서 비로소 생기를 얻는다. 울산의 대표 하천인 태화강은 서부 산지에서 발원하여 도심을 관통한 뒤 동해로 흘러든다. 그런데 이 태화강의 물길은 역수형이다. 동에서 서로 흐르는 한반도 물줄기의 원형과 달리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물길이다. 역수는 자연을 거스러는듯 보이지만 실은 대길의 형세다. 물길이 역으로 흐르면 사방의 기운을 품어 천천히 흘러가기에 풍요의 땅을 잉태한다는 속설이 있다.
풍수에서는 물을 재물과 생명의 상징으로 본다. 태화강은 울산의 생명줄이자 도시의 혈맥과 같은 존재인 이유다. 동쪽 바다는 울산 풍수의 또 다른 특징이다. 풍수에서는 물이 너무 가까우면 기운이 흩어지고, 너무 멀면 생기가 부족하다고 본다. 울산은 산에서 내려온 기운이 태화강을 따라 흘러 바다와 함몸이 되는 구조다. 그 만남의 지점이 절묘해 해안의 다양한 곶과 만이 그 기운을 한 번 더 머물게 하는 형세를 갖추고 있다. 방어진 반도와 대왕암 일대의 해안선은 단순한 경관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마치 용이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형국처럼 역동적인 기운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실제로 울산은 예로부터 어업과 농업이 공존하던 터전이었으며, 현대에 들어서는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끈 대표 도시로 성장했다. 풍수에서는 이러한 번영을 두고 산과 물의 조화라고 해석한다. 서쪽 산맥이 든든하게 기운을 모으고, 태화강이 이를 실어 나르며, 동해가 넓게 품어 주는 형세가 도시의 성장 에너지를 가동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억지 해석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풍수는 자연을 바라보는 전통적 지혜의 한 방식이지 과학적 이론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이 모여들어 삶을 시작한 뿌리가 수천년이라면 이야기가 다른다. 울산은 선사문화 1번지다. 1만년 전 한반도 동남쪽에서 선사인들이 삶의 터전을 잡은 곳이 울산이다. 울산의 지형을 살펴보면 선조들이 왜 산과 물의 흐름을 중요하게 여겼는지 이해할 수 있다. 높은 산에서 시작된 물길이 평야를 만들고, 그 평야가 사람을 불러 모으며, 바다가 도시를 세계와 연결해 주는 모습은 풍수의 언어를 빌리지 않아도 충분히 인상적이다.
풍수는 특별한 논리나 과학적 산물이 아니라 자연의 질서 속에서 인간의 삶을 이야기 하는 이론이다. 서쪽의 산이 뿌리가 되고, 태화강이 혈맥이 되며, 동해가 열린 미래가 되는 것. 울산은 그렇게 산과 물이 함께 빚어낸 하나의 거대한 명당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이 울산을 감싸는 세가지 지맥이다. 울산은 백두대간에서 내려온 낙동정맥에서 뻗어내린 세개의 지맥으로 둘러싸여 있다. 중구에는 치술령에서 내려온 호미지맥, 북구에는 경주와 무룡산의 삼태지맥, 남구에는 남암지맥이 뻗어내렸다. 남암지맥은 문수산 남쪽에 있는 남암산에서 문수산으로 치켜올라간 뒤에 다시 영축산으로 내려왔다. 그 동쪽에 삼호산과 은월봉 등 남산 12봉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 한자락이 공업탑을 둘러치며 울산대공원 건너편으로 이어져 선암수변공원 남쪽의 남구 함월산에 봉긋 쏫았다가 바다로 달려가 돋질산에서 마침표를 찍었다.
남산에는 범장골과 개장골, 성지골, 큰골, 상아골, 산태골, 까시밭골, 솔티밭골, 파라골, 풍로골 등의 크고 작은 많은 골짜기가 있었다. 지금 솔마루길을 걷다보면 옛날의 골짜기들이 팻말로 흔적을 남기고 있다. 그 많은 골짜기가 사라진 이유는 뭘까. 산을 허물어 주택단지를 만들면서 많은 골짜기가 사라졌다. 남산밑이라든가 와와와 격동, 옥현, 거마동, 봉월, 월진촌, 원당 등의 옛 마을도 새로운 주택지에 옛 모습을 잃었다.
남산이 만든 월평을 지나면 지금의 공업탑로터리와 마주한다. 공업탑 주변은 오래전 수많은 고개가 만나는 자리였다. 지금의 문수로 방향은 떡고개였다. 떡고개가 옛 울주군청 방향으로 제법 높은 지대였지만 문수로 공사로 낮아졌다. 오래전 흉년이 들자 굶주림에 시달린 사람이 떡 한 조각과 근처에 있던 논 한 마지기를 맞바꿨다는 쓰린 사연이 있는 고개다.
공업탑로터리에서 덕하 방향은 지금도 오르막 고갯길이다. 덕하로 넘어가는 이 고개는 화리고개(爐峴)였다. 화리는 오래전 하늘에서 불덩어리가 떨어져 분지로 꺼진 자리 위로 지형이 만들어져 붙은 이름이다. 화리는 우리가 흔히 부르는 화로(爐)의 사투리다. 공업탑로터리에서 울산여고 방향은 구신잇골이란 골짜기가 있었고 학성고교 서쪽에서 남산자락까지는 계단식 논이 펼쳐져 너드렛골이라 불렀다. 구릉과 언덕, 골짜기가 하나로 응집된 기혈이 공업탑 자리다. 그래서 공업탑 아래 혈자리에 오래전 용이 살았고 그 용트림이 탑으로 올라 대한의 산업화를 이끌었다는 이야기가 떠돈다. 믿거나 말거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