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원 UNIST 교수
조재원 UNIST 교수

부산역 길 건너 차이나타운 입구에 대기 줄이 항상 긴 피자 가게가 하나 있다. 울산에서 이 동네로 이사 온 후 피자의 맛이 늘 궁금했다. 하루는 대기 신청하는 QR 코드를 찍고는 깜짝 놀랐는데 무려 4시간을 대기해야 한다는 거다. 그냥 포기하고 말았다. 근처에 사는 사람으로서는 동네 피자를 먹기에는 너무 긴 대기 시간이었다. 그 피자 가게 근처에 만두 맛집도 있는데 이곳에서 만두를 먹는 것도 대기 줄이 길어 만만치가 않다.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먼 곳에서 부산으로 여행을 와서 우리 동네 피자 가게와 만둣집을 찾아주니 고맙기 그지없지만 동네 사람에게는 조금 아주 작더라도 일종의 우선권을 주면 좋을 텐데 하는 다소 황당한 욕심을 부려보게 된다.

피자와 만두 맛집 가게가 동네 주민에게만 줄 설 필요 없는 우선권을 준다면 여행객들은 공정하지 못한 특권이라고 비판할 듯하다. 그래서 황당한 욕심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런데 비판과 여러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긴 대기 줄을 기다려야 겨우 탈 수 있는,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이름난 놀이기구를 탈 수 있는 테마파크에서는 비싼 우선 탑승권을 구매하면 대기하지 않고 바로 탈 수 있는 방법도 있다. 놀이기구의 우선 탑승권이 허락된다는 것은, 일반 탑승권에 비해 높은 가격을 지급하면 공정하지 못하다는 비판을 잠재웠기 때문이다. 돈을 더 지급하면 불공정 상황은 공정한 기회로 바뀐다.

돈이 많은 일을 가능케 한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우선 탑승권 같은 경우를 보면 돈의 위력이 새삼스럽다. 동네 맛집 상황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돈이 가능하게 하는 우선권은 받아들이면서도 맛집이 한동네 사람에게 우선권을 주는 것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다. 물론 맛집에서도 같은 동네 사람이라고 해서 특별히 혜택을 줄 것 같지는 않다. 돈과 한동네에 위치한다는 장소성의 상황을 아울러서 아이디어 하나를 제안해 본다. 디지털 기술이 가능케 한 디지털 토큰이다. 특정 디지털 토큰을 가진 사람은 그 토큰을 가지지 않은 사람보다 맛집과 놀이기구 등에서 우선권을 갖는다.

디지털 토큰을 가진 손님이 오면 왜 우선권을 주어야 하는가? 부산 차이나타운에는 길게 줄을 서야만 먹을 수 있는 피자와 만둣가게만 있는 게 아니다. 기념품점, 중국 음식점, 오락실, 베이커리 등 많은 가게가 있는데 현재는 이들 모두 장사가 잘 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이런 가게들에서 상품, 굿즈와 서비스를 구매하면 포인트 또는 할인권 대신 토큰을 받아 피자와 만두 맛집에서 우선 입장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되는 상황을 상상해 보자. 그러면 거리의 모든 가게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차이나타운 모델이 생기는 거다. 이런 제안을 하면 두 번째 질문이 나올 듯하다. 지금도 장사가 잘 되는 피자와 만두 맛집에서 굳이 왜 우선 입장 토큰을 허락하겠는가? 어쭙잖게 차이나타운 공동체를 강조하려는 게 아니다. 철저하게 신자유주의 태도를 고수하고서라도 함께 성공할 수 있는 차이나타운 비즈니스 모델이 디지털 시대 토큰을 통해 가능하다는 논리를 말하는 것이다. 지금 피자와 만두 맛집으로 여행객을 끌 수 있는 잠재력은, 토큰을 통해 다른 가게의 구매력을 상승시킨다면,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커져서 해당 토큰이 통용 화폐 기능의 일부를 대체하는 가능성까지 말하는 거다. 즉, 디지털 토큰은 중앙 정부의 관리 외곽에서 강력한 연대를 갖춘 화폐 역할까지 할 수 있게 된다.

연대란 말이 있다. 사회적 연대와 군부대 조직 중 하나인 연대는 한자로는 連帶와 聯隊와 같이 다르지만, 그 의미를 따져보면 매우 유사하다. 즉, 속한 조직 내 구성원의 이름, 얼굴, 자세한 정보는 모르더라도 서로를 연결하는 선을 공유한다는 면에서는 결속력을 가진다. 디지털 토큰이 그 결속의 선을 제공할 수 있어 당장은 맛집과 놀이동산 우선권과 같은 역할만 하겠지만 이런 결속의 연대를 통해 디지털 미래 사회 대안 화폐의 역할까지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디지털 첨단 기술의 가치가 중앙 관리사회의 법정화폐를 벌어주는 도구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대안 가치로서의 돈을 아예 새롭게 만들 것이라는 기대를 해 본다. 조재원 UNIST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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