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는 지리적으로 엘니뇨의 영향을 직접 받는 위치는 아니지만, 올 여름은 지구 온난화에 강력한 엘니뇨가 겹치며 ‘복합 찜통’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엘니뇨와 별도로 국내 여름 폭염에 영향을 주는 북태평양의 해수온(海水溫)은 이미 높은 상태다. 적도 부근 동태평양에서 시작되는 엘니뇨는 전 세계의 대기 순환을 뒤흔들며 곳곳에 홍수와 가뭄을 일으킨다.
엘니뇨는 적도 태평양 중·동부의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0.5도 이상 높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기온 상승에 따라서 엘니뇨의 강도를 구분하는데 1도 이상이면 ‘중간’, 1.5도 이상은 ‘강함’, 2도 이상은 ‘매우 강함’ 단계로 분류된다. 공식적인 표현은 아니지만, 매우 강함 수준의 엘니뇨를 두고 ‘슈퍼 엘니뇨’라고 칭한다. 유럽 중기예보센터(ECMWF)에 따르면, 여러 기후 모델을 분석해볼 때 올해 적도 태평양 지역의 해수온이 평년보다 3도 이상 높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약 3.5도의 해수온 상승을 보였던 1876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1876년 적도 부근의 중·동태평양. 평소라면 서늘해야 할 남미 서안과 갈라파고스 제도 인근 해역의 해수온이 치솟기 시작했다. 당시 적도 해수면 온도는 평년보다 3.5도 이상 높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한껏 달궈진 바닷물은 전 세계로 흘러 들어가 가뭄과 기근 등 각종 재해를 일으켰다. 최대 5000만명의 인명 피해를 낳은 사상 최악의 엘니뇨였다. 엘니뇨는 불규칙하게 발생하는 자연 현상으로 평균 2∼7년에 한 번씩 관측되고 있다. 대개 약하거나 중간 수준의 강도를 보이고, 한 번 발생하면 9∼12개월간 지속된다.
그러나 1878년까지 2년간 지속되면서 역대 가장 강력했던 엘니뇨는 인도, 중국, 브라질, 아프리카 등 전 세계에 동시다발적인 극한 가뭄과 대기근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최대 5000만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1877년 인도의 참상을 고발한 영국 간호사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은 “일찍이 이처럼 끔찍한 인간의 고통과 파멸의 기록을 본 적이 없다”고 썼다.
우리나라 여름철 기온을 좌우하는 주요 기압계는 한반도 북쪽에서 세력을 키워 오는 북태평양고기압과 남서쪽에서 확장하는 티베트고기압이다. 이 두 고기압이 한반도 상공에서 포개질 때 한반도는 이른바 ‘이중 열돔’에 갇혀 극한 폭염을 겪는다. 북태평양고기압 중에서도 북서태평양고기압은 한반도와 필리핀, 일본 등 동아시아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서쪽 자락을 떼 내어 부르는 명칭이다. 기상청은 올 여름이 평년보다 더울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엘니뇨는 국가별 지형과 기후 특성에 따라 폭우, 산불, 가뭄 등 전혀 다른 양상의 재난을 일으킨다. 스페인어로 어린아이를 뜻하는 ‘엘니뇨’ 이름 자체가 가장 큰 피해를 보는 페루와 에콰도르 지역 어부들이 붙였다. 크리스마스 전후 해안 수온이 따뜻해지는 현상을 목격하고 이를 ‘아기 예수’에 빗댄 표현이다. 엘니뇨의 직격탄을 맞는 국가들은 연일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가장 최근 발생한 강력한 엘니뇨는 2015∼2016년 ‘슈퍼 엘니뇨’다. 지구온난화 시대에 발생한 첫 슈퍼 엘니뇨로, 기후변화가 자연재해와 만날 때 피해가 얼마나 극심해질 수 있는지 보여줬다. 당시 해수온이 평년보다 약 2.6도 치솟으며 발생한 엘니뇨로, 인류는 살인적인 폭염과 가뭄을 겪었다. 2015년 5월 인도의 기온은 47∼48도까지 치솟으며 2500명 이상이 숨졌다. 동남아시아 젖줄 메콩강 유역에 든 극심한 가뭄으로 수백만명의 식량 안보가 순식간에 마비됐다.
기존의 슈퍼 엘니뇨 적응 전략은 재난이 발생한 후 댐을 보수하는 식의 사후적 방식에 그쳤다. 하지만 앞으로는 미래 기후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 예측적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촘촘한 조기 경보 체계를 가동 중인 국가는 그렇지 못한 국가에 비해 재난 발생 시 사망률이 6배 낮기 때문이다. 한여름철을 앞두고 엘니뇨로 인한 이상 고온(高溫)과 극한 호우(豪雨), 돌발 가뭄 등에 대비하기 위한 인프라 보강과 사회 안전망 확충이 필요하다.
이동구 울산대학교 초빙교수·한국화학연구원 명예연구원·AX 얼라이언스 위원장·공학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