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북구 우가포에 가면 바다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 바다 위에 나란히 선 두 해녀 조각상이다. 파도는 하루에도 수없이 밀려왔다가 물러가고, 바람은 시시때때로 다른 온도로 그들 곁을 지나가지만, 해녀들은 같은 자리에서 같은 표정을 짓는다.
어느 날 갑자기 들어선 해녀상은 그저 마을사업 목적으로 세워놓은 조형물이라 생각해 자세히 보진 않았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갈수록 두 해녀의 모습에서 사람의 온기가 느껴졌다. 거친 바닷바람을 맞으며 수없이 물속을 드나들었을 실제 해녀들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그들에게 바다는 일터였으며 때로는 두려움이었다. 물 아래에서는 누구도 대신 숨을 쉬어줄 수 없다. 오직 자신의 숨 하나를 믿고, 깊은 곳으로 내려가야 한다. 한 번의 짧은 숨 안에 얼마나 많은 삶이 들어 있었을까.
전복과 소라를 따기 위해 바위틈을 더듬고, 미역을 걷어 올리며 그들은 숨이 다하기 전에 수면으로 올라왔다. 마침내 얼굴을 물 위로 내밀며 길게 내쉬는 숨비소리는 단순히 참았던 숨을 내쉬는 소리만은 아니다. 바닷속 깊은 어둠을 지나 다시 세상으로 돌아왔다는 안도의 소리이고, 오늘도 살아냈다는 생명의 소리다.
오래전 해녀들을 취재한 적이 있다. 변변한 나잠복조차 없던 시절 해녀들은 얇은 무명옷 한 벌에 몸을 맡긴 채 차가운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물흐름이 좋지 않은 날에는 물길에 몸을 맡긴 채 어디로 닿을지 모르고 흘러간 적도 있었다고 했다. 숨비소리는 삶을 건져 올리려는 한숨이었고, 다시 바다로 들어가기 위해 자신을 다독이는 숨이었다.
우가포 해변에 나란히 선 해녀 조각상을 바라보다 문득 사람은 혼자서만 살아갈 수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한 사람은 먼저 물속으로 들어가고 한 사람은 뒤따른다. 바다에서는 각자의 숨으로 버텨야 했지만 물 밖에서는 서로의 존재가 힘이 된다. 누군가 먼저 물 위로 올라오면 다른 사람의 위치를 살피고, 물질을 마친 뒤에는 함께 바구니를 들고 집으로 돌아간다. 두 해녀상이 유난히 마음에 남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조형물이 하나였다면 강인한 한 사람의 해녀를 떠올렸을 텐데, 둘이 함께 서 있으니 삶의 동행이 보인다. 고단한 세월을 함께 건너온 이웃 같고, 자매 같으며 때로는 어머니와 딸처럼 보인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깊은 물 속 같은 시간이 찾아온다. 숨이 가빠지고 어디가 수면인지조차 가늠하기 힘든 순간이 있다. 그럴 때 곁에 누군가 있다는 것은 큰 위로가 된다. 내가 다시 물 위로 올라올 때까지 기다려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게 소중하다.
바다는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 해녀들이 젊었을 때도, 머리에 흰 서리가 내려앉았을 때도 파도는 어김없이 밀려왔다가 물러난다. 생은 짧지만, 바다는 사람들의 시간을 기억한다.
물질을 나가던 어머니의 발자국, 바닷가에서 그 어머니를 기다리던 아이의 발자국, 하루 물질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젖은 발자국들이 해변 곳곳에 새겨졌다가 지워지곤 했다. 흔적은 사라져도 삶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해녀 조각상이 바로 그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우가포를 떠나며 뒤돌아보았다. 두 해녀는 여전히 바다 곁에 나란히 서 있었다. 파도가 밀려오고 바람이 거세도 서로의 곁을 떠나지 않은 채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곁에서 함께 바다를 바라봐 줄 사람이 한 사람만 있어도 우리는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우가포의 두 해녀가 오늘도 바다 곁에 서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