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가 피는 한여름. 초록 잎 사이로 너울너울 번져가는 주홍빛 능소화는 언제 보아도 도발적이면서 아름답다. 화려하면서도 귀티가 나고 요염하면서도 천해 보이지 않는다. 나팔꽃 같은 꽃 모양에 귀를 기울이면 맑고 청아한 소리가 들릴 것 같다.
고운 빛깔의 능소화는 혼자 힘으로 서 있지 못한다. 덩굴식물이라 긴 줄기로 담장을 넘고, 나무를 타고, 벽을 기어오르는 기생꽃이다. 벽을 타고 아래로 드리운 꽃은 하늘하늘 매력적이고 담을 넘어 주렁주렁 달린 꽃들은 탐스럽기까지 하다.
능소화는 시들어 떨어질 때도 추하게 매달려 목숨에 연연하지 않는다. 아름다움의 절정에서 우아하고 정갈한 자태 그대로 툭 내려앉는 모습은 죽어서도 지조를 굽히지 않았던 전설 속의 궁녀 ‘소화’의 정절을 닮은 것 같아 고고하기까지 하다.
폭염에서도 찬란히 피고 지는 능소화의 꽃말은 ‘명예와 자랑’, ‘기다림과 그리움’이다. 과거 급제자가 머리에 썼던 어사화에 이 꽃이 쓰여 높은 신분과 명예를 뜻했고 양반 꽃이라고도 했다. 평생 왕만 바라보며 담장 너머를 훔쳐보던 소화의 마음을 대변했는 것 같다.
우리집 화단에도 능소화가 있다. 십여 년을 넘도록 매년 꽃을 피워 눈을 즐겁게 해주던 꽃에 올해는 이변이 생겼다. 초록색 잎이 까맣게 타들어 가기 시작한 것이다. 가지 끝마다 몇 개씩 달고 있는 뾰족한 꽃 몽우리마저도 힘없이 늘어져 있다. 담 밖으로 탄력 있게 가지를 늘어뜨리고 주황색 꽃을 피우면 환상적인데 못내 볼 수 없을 처지가 되었다. 능소화 밑에 있는 국화도 며칠 전의 싱싱함을 잃고 시름시름 앓고 있다.
생각해보니 며칠 전 나의 잘못 때문이었다. 장미 잎에 진딧물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을 본 순간, 옆집 할머니가 진딧물 없애는데 쓰는 약이라고 준 약을 무심코 물에 타서 뿌렸다. 동네가 주택이다 보니 집집마다 유실수가 한두 그루씩은 있어 조금씩 살충제를 나눠 쓰고 있다. 화초 생태를 말씀드리고 받아 온 게 진딧물 약이 아닌 제초제일 줄이야. 성분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내 불찰이다. 제초제를 맞은 장미는 괜찮은데 옆에 있는 능소화와 국화가 독을 쓰고 타들어 간 것이다.
말을 못하는 식물이지만 타들어 가는 잎과 고개 숙인 꽃 몽우리를 마주할 때마다 나의 경솔함으로 상처를 낸듯해 참담하다. 능소화를 살려야겠다고 온갖 정성을 쏟고 있다. 검게 탄 가지를 잘라내고 늦었지만 물을 뿌려 잎을 씻어냈다. 차라리 진딧물이 있더라도 그냥 놔둘 걸 하는 후회를 하면서 매일 들여다보고 있다.
무당벌레의 밥인 작은 진딧물조차 어울려 살아가는 꽃밭인데 그것을 없애겠다고 엉뚱한 독약을 뿌리고 무고한 생명을 사지에 몰아넣었다. 내 생각만이 세상의 잣대인 양 휘두르는 이기심은 어떤 생명도 꽃피울 수 없는 죽은 땅으로 만들 수 있겠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생태계의 모든 생물들은 해충이라도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의존하는 관계에 놓여 있다. 생물이 모여 사는 터전을 함부로 허무는 일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자신의 주변이 생명력으로 활력이 넘치는 좋은 세상이 되게 하려면 동식물의 습성을 잘 알고 그들이 잘 어울려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 진정한 사랑이며 배려이다.
나의 잘못으로 올해는 담장 너머 수를 놓던 예쁜 능소화를 볼 수 없게 되었지만 생사를 오가는 아픔 속에서도 능소화는 특유의 정갈한 자태를 놓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꽃 이름처럼 힘듦을 이겨내고 하늘 높이 담장을 기어올랐으면 좋겠다. 평생 왕을 기다리던 애틋한 꽃말처럼 남은 뿌리와 줄기가 살아남아 내년 여름 눈부신 자태로 피어나길 간절히 기다려 본다.
조정숙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