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찬 숲해설가·자연환경해설사
김학찬 숲해설가·자연환경해설사

 이른 아침 태화강변 대숲길을 걸었다. 목덜미에 닿는 공기가 며칠 사이 선선해졌다. '십리대숲 은하수길' 안내판을 지나 스무 걸음만 들어가도 대숲 안은 바깥세상과 딴판이다. 하늘로 줄지어 뻗은 녹색 줄기들이 시야를 가지런히 정돈한다. 머리 위에선 댓잎들이 몸을 부비며 낮게 서걱거린다. 그 잔잔한 소리가 오히려 숲의 고요를 깊게 한다. 댓잎 사이로 건너온 강바람에는 물기 머금은 풀냄새가 은근하다. 아침 햇살은 줄기 사이로 잘게 부서져 산책로 벤치에 수줍게 내려앉는다. 가만히 등을 기대니 굳었던 몸이 나른해진다. 십리대숲은 태화강국가정원의 백미(白眉)다.

 숲의 주인공인 대나무는 울산을 상징하는 시목(市木)이다. 태화강 생태해설도 대개 십리대숲에서 시작한다. 으레 던지는 질문 중 하나는 이렇다. "대나무는 풀일까요, 나무일까요?" 질문의 의도를 간파하고 "풀"이라고 답하는 이들이 종종 있다. 정답이다. 대나무는 나무처럼 보이지만 식물 분류상 벼목 벼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벼와 같은 집안인데, 웬만한 나무만큼 크게 자라는 조금 특별한 친척인 셈이다.

 대나무가 '풀'인 까닭은 줄기를 보면 분명해진다. 일반적인 나무는 줄기 안의 형성층(形成層)이 해마다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 몸통을 불린다. 그 흔적이 나이테다. 하지만 대나무에는 이런 형성층이 없다. 죽순이 땅 위로 올라올 때 이미 줄기의 굵기가 정해져 있고, 이후에는 마디 사이가 길어지며 위로 키만 솟을 뿐이다. 그래서 줄기는 해가 지나도 굵어지지 않고 나이테도 생기지 않는다. 줄기 속이 비어 있고 곳곳에 단단한 마디를 두는 것 역시 벼과 식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특징이다.

 그런데도 왜 '대나무'라고 불렀을까. 식물의 족보를 따지기 전에 눈앞의 풍채에 먼저 압도됐기 때문일 것이다. 대나무는 종류에 따라 20~30m까지 자라 웬만한 나무를 훌쩍 넘는다. 자라면서 줄기가 목질화(木質化)해 단단해지고, 해마다 땅속에서 새 죽순을 밀어 올린다. 낱줄기 하나하나의 수명은 길지 않지만, 땅속에서 이어지는 뿌리는 여러 세대를 이어 살아간다. 같은 자리에서 수십 년 동안 울창한 숲을 이루는 것도 영락없이 나무군락을 닮았다. 그러니 나무라 부른들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을 듯하다.

 대나무의 가장 놀라운 특징은 성장 속도다. 대나무는 세상에서 가장 빨리 자라는 식물 가운데 하나인데, 일부 키 큰 종류는 생육조건이 맞으면 하루에 거의 1m씩 자라기도 한다. 숲의 햇빛 경쟁에서 유리한 높이를 빠르게 확보하려는 생존 전략인 셈이다. 그 결과 땅 위로 갓 머리를 내민 죽순이 두 달도 채 되기 전에 20m 안팎까지 단숨에 치솟기도 한다. 그야말로 괄목상대(刮目相對)다.

 폭발적인 키 성장의 비밀은 줄기의 '마디'에 숨어 있다. 대개의 식물은 줄기 끝의 생장점이 자라며 차근차근 키를 높인다. 하지만 대나무는 마디 사이의 생장조직이 함께 자라면서 여러 마디 사이가 동시에 길어진다. 마치 접이식 안테나가 한꺼번에 펼쳐지는 모습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빠른 성장에는 줄기의 독특한 구조도 한몫한다. 속을 비워 몸을 가볍게 하는 대신 줄기 중간중간 단단한 마디를 맺어 힘과 탄성을 보강한다. 덕분에 대나무는 높이 자라면서도 바람에 쉽게 꺾이지 않는다.

 서둘러 키 성장을 마친 대나무는 비로소 가지와 잎을 펼쳐 광합성에 몰두한다. 그렇게 만든 양분의 일부는 지하경(地下莖), 즉 땅속줄기에 저장된다. 사방으로 뻗은 땅속줄기는 양분이 오가는 통로가 되고, 땅속줄기에서 뻗어 내린 뿌리는 흙에서 물과 무기양분을 빨아올린다. 이렇게 땅속에 차곡차곡 비축한 힘이 이듬해 죽순을 밀어 올리는 밑천이 된다. 보이지 않는 땅속줄기는 대숲의 생명을 잇는 에너지 연결망이고, 저장고다.

 우후죽순(雨後竹筍)은 바로 이 보이지 않는 땅속줄기에서 시작된다. 사람의 눈에는 죽순이 어느 날 갑자기 불끈 솟아오른 듯 보이지만, 실은 땅속 깊은 곳에서 오래 준비한 힘이 한순간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태화강 십리대숲에서는 4월 하순 무렵 맹종죽이 먼저 죽순을 내밀고, 5월 하순부터는 주종인 왕대가 뒤를 잇는다. 땅 위의 성장은 갑작스러워 보여도, 그 채비는 오래전부터 땅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봄비 끝에 다투어 솟아오르던 그 죽순들도, 지금은 짙푸른 줄기로 자라 가을바람을 기다리고 있다.

 대나무는 예부터 선비들의 가까운 벗이었다. 매화·난초·국화와 함께 사군자(四君子)의 한 자리를 차지했고, 소나무·매화와 더불어 세한삼우(歲寒三友)로 불렸다. 옛사람들은 자신이 닮고 싶은 삶의 자세를 대나무에 투영했다. 곧은 줄기에서 굳센 기개를, 속을 비운 몸에서 담담한 기상을, 사철 푸른 잎에서 변치 않는 지조를 읽어냈다. 그 기품을 탐하여 서재 마당에 심어 곁에 두기도 했다.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는 「오우가(五友歌)」에 그런 마음을 오롯이 담아 노래했다.

 "나모도 아닌 거시 플도 아닌 것시

 곳기는 뉘 시기며 속은 어이 뷔연난다

 뎌러코 사시(四時)에 프르니 그를 됴하하노라."

 대나무의 곧음은 세찬 바람 앞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탄은(灘隱) 이정(李霆)의 「풍죽도(風竹圖)」가 그렇다. 오만원권 뒷면에 어몽룡의 「월매도」와 함께 담긴 그 대나무 그림이다. 먹빛 하나로 줄기의 결과 잎의 떨림까지 살려낸 붓질이 예사롭지 않다. 거센 바람에 댓잎은 한쪽으로 쏠리고 줄기는 휘어지지만, 대나무는 그 당당한 기세를 잃지 않는다.

   대나무는 속을 비워 가벼워지고, 마디를 맺어 단단해진다. 바람에 흔들리고 휠지언정 결코 꺾이지 않는다. 대나무의 곧음은 한 치도 휘지 않으려다 끝내 꺾이고 마는 완고함이 아니다. 흔들리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제자리로 돌아오는 유연한 곧음이다. 그것이 대나무가 건네는, '굽힐 줄 아는 삶'의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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