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울산의 대표축제를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가칭)울산문화시민모임이라는 단체가 주최한 ‘울산 대표축제 방향 모색을 위한 심포지엄’이다. 근대 울산이 시작된지 한세기를 향하지만 울산은 여전히 대표축제를 두고 갑론을박이다. 울산의 대표축제는 무엇일까. 올해도 우여곡절 끝에 열리는 공업축제는 질곡의 역사를 가졌다. 공업축제였다가 처용문화제가 되고, 다시 공업축제가 됐다가 이제 또 방향성을 모색하는 중이다. 이쯤 되면 축제가 문제인지, 축제를 바라보는 울산의 눈이 문제인지 한번 쯤 물어볼 때가 됐다.
울산의 대표축제 역사는 파란만장하다. 1967년 울산공업단지 조성을 기념하며 시작한 공업축제는 울산의 성장과 자부심을 담은 잔치였다. 이후 처용문화제로 이름을 바꾸면서 산업을 넘어 울산의 역사와 전통문화까지 담으려 했다. 하지만 처용은 순탄하지 않았다. 처용설화를 외설로 읽는 시선이 등장했고 특정 종교와 연결해 바라보는 주장도 나왔다.
처용은 졸지에 바람난 아내를 보고도 화 한번 제대로 내지 못한 어수룩한 남자가 됐다. 어떤 이에게는 무당이었고 또 어떤 이에게는 미신과 우상숭배의 흔적이었다. 학계와 종교계의 주장이 커질수록 처용의 얼굴은 기괴하게 변했다.
뿌리를 살펴보자. <삼국유사>의 이야기는 다르다.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온 처용은 아내 곁의 역신을 발견한다. 처용은 칼을 들지 않았다. 노래하고 춤췄다. 그러자 역신이 감복해 처용의 얼굴이 있는 곳에는 다시 들어가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물러났다. 처용의 본질은 그래서 ‘벽사진경’이다. 사악한 것을 물리치고 경사로운 것을 맞아들인다는 뜻이다. 역신을 죽이는 대신 물러나게 한 힘은 관용과 치유의 코드다.
왜 처용은 울산의 남쪽 바다에 등장했을까. 설화의 무대에는 개운포와 망해사, 처용암이 등장한다. 개운포는 천 년 전 국제교류의 현장이었고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나는 공간이었다. 낯선 것이 들어오고 다른 것이 섞이는 곳이었다. 그런 공간에서 태어난 처용을 공존과 관용의 상징으로 읽는 것은 현대식 포장이 아니다. 서로 다른 것을 받아여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온 울산이라는 공간의 역사성 때문이다.
울산은 1962년 공업센터 기공식과 함께 갑자기 생겨난 도시가 아니다. 이 땅에는 그보다 훨씬 긴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다. 울산은 북방의 대륙에서 흘러든 문화와 남방과 해양에서 올라온 문화가 만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낸 땅이다. 오늘의 산업수도 역시 그 긴 시간 위에 올라선 울산의 모습이다. 공업도 울산이고 처용도 울산이다. 문제는 둘 가운데 하나를 골라 다른 하나를 지우려 했던 우리의 조급함이었다.
2023년 처용문화제 예산이 사라지고 35년 만에 공업축제가 부활했다. 거리에는 다시 대규모 퍼레이드가 펼쳐졌다. 산업수도 울산을 보여주겠다는 의도였다.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관 주도 행사와 시민을 구경꾼으로 만드는 축제라는 비판도 따라붙었다. 그리고 불과 몇 년 만에 또다시 공업축제를 다른 축제로 전환하고 처용문화제를 복원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이래서야 대표축제라는 이름이 민망해진다.
지난주 울산시청에서 울산 대표축제의 새로운 방향을 찾겠다며 심포지엄이 있었다. 울산의 오래된 역사와 문화를 담고 처용을 ‘포용과 화합, 공존과 융합’의 정신으로 재해석하자는 주장이다. 반구천 암각화를 비롯한 울산의 역사문화 자원을 현대적인 콘텐츠로 연결하고 시민과 지역 예술인이 함께 만드는 축제로 가자는 제안도 나왔다. 취지는 좋다. 외부 전문가의 눈으로 다른 지역과 세계의 축제를 살펴보고 조언을 듣는 것도 필요하다.
문제는 관점이다. 울산의 대표축제를 만드는 일은 울산 안에서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 울산의 역사학자와 문화예술인, 축제 현장을 지켜온 사람들, 무엇보다 시민들이 머리를 맞대고 우리가 지켜야 할 울산의 문화적 원형이 무엇인지부터 따져야 한다. 외부의 성공사례와 축제 전문가의 평가표를 가져오는 일은 그 다음이다. 남의 눈으로 우리 얼굴부터 그려놓고 그것을 울산의 자화상이라고 부를 수 없다.
여기서 고민해야 할 부분은 정체성이다. 반구천부터 처용과 산업까지를 포용과 화합과 융합이라는 주제로 담아낸다고 울산다운 축제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좋은 말이 많다고 좋은 축제가 되는 것도 아니다. 과거 처용문화제 역시 현대적인 콘텐츠를 받아들이며 월드뮤직 등을 결합했지만 무엇이 축제의 중심 가치인가를 놓고 끊임없이 흔들렸다. 처용을 살린다면서 정작 처용은 간판에만 걸어놓고 온갖 콘텐츠를 백화점식으로 진열한다면 또 같은 길을 걷게 된다.
핵심은 처용문화제의 ‘복원’이 아니다. 처용의 복권이다. 불륜과 외설, 무당과 미신이라는 얄팍한 프레임에 갇혀버린 처용을 천 년 전 울산의 역사와 공간 속에 다시 세우는 일이다. 개운포에서 시작해 신라의 국제교류와 울산의 해양문화로 이어지는 역사적 맥락을 되찾고, 벽사진경이라는 문화적 원형이 오늘의 울산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묻는 작업이 먼저다. 그 바탕 위에서 산업도 얹고 암각화도 만나고 오늘의 다문화 사회도 품어야 한다.
다른 도시들은 없는 이야기까지 만들어 자기 도시의 문화로 키우려 애쓴다. 그런데 울산은 천 년을 살아남은 처용을 가지고도 스스로 의심하고 있다. 불륜이라 해서 밀어내고, 미신이라 해서 몸을 사리고, 시장이 바뀌면 축제 이름부터 바꿨다. 울산의 문화자산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다. 그것을 지켜내고 키워낼 자존감이 부족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공업축제냐 처용문화제냐는 그 다음 문제다. 먼저 울산을 공부해야 한다. 반구천의 암각화에서 개운포와 처용을 지나 산업수도로 이어진 이 도시의 긴 시간을 제대로 들여다봐야 한다. 외부의 시선은 조언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그러나 울산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눈까지 밖에서 빌려올 수는 없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절대 놓쳐서는 안되는 전제가 있다. 울산은 인류이동의 증거가 기적처럼 새겨진 세계문화유산 반구대암각화를 보유한 도시라는 사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