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찾은 울산 중구의 한 번화가. 한 음식점 옆에는 SUV 한 대가 비탈길에 주차돼 있었지만, 고임목이나 고임돌은 보이지 않았다.
핸들 역시 가장자리 방향으로 꺾여 있지 않았다. 이곳 비탈길 아래에는 왕복 2차선 도로가 있어 차량이 밀릴 경우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아찔한 모습이었다.
현행 도로교통법 제34조의 3에 따르면 운전자는 경사진 곳에 자동차를 정차하거나 주차할 경우 주차제동장치를 작동한 뒤 미끄럼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를 해야 한다.
구체적인 조치로 내리막 방향 바퀴에 고임목·고임돌 등을 설치하거나 조향장치를 가장자리 방향으로 돌려놓는 등이다. 이는 도로교통법과 주차장법 개정안을 통칭한 일명 ‘하준이법’으로 알려져 있으며, 2020년 6월부터 시행됐다. 2017년 경기도 평택의 한 놀이공원에서 최하준(당시 4세) 군이 경사로에 주차된 차량이 미끄러져 내려오면서 숨진 사고를 계기로 마련된 법이다.
이 규정은 일반 도로뿐 아니라 ‘도로 외의 경사진 곳’에 주차하는 경우에도 적용된다.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승합차 5만원, 승용차 4만원 등의 범칙금이 부과될 수 있다.
하지만 올해로 시행 7년 차를 맞았음에도 현장에서는 여전히 안전조치가 미흡한 모습이다.
동네 주민이라는 김제민 씨는 “잠깐 세워놓는다는 생각으로 비탈길에 아무렇게나 주차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며 “차량이 밀리면 다른 사람까지 다칠 수 있는 만큼 불안한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 19일에는 중구의 한 야산 인근 공터에서 주차된 1t 트럭이 아래쪽으로 밀려 내려가 예초 작업을 하던 70대 작업자를 덮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 사고로 작업자는 숨졌다.
관련 대안으로 서울시 등 일부 지자체에서는 거주자우선주차장처럼 이용자가 한정된 곳에 고임목을 비치하거나 대여하는 방식으로 운영한 사례도 있다. 다만 이러한 안전조치가 모든 비탈길 주차에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데 대해서는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운전자는 “가뜩이나 주차공간이 부족한 상황에서 어느 정도 경사부터 이런 규칙을 적용해야 하는지 애매하다고 생각한다”며 “운전자들이 혼란을 겪지 않도록 구체적이고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경찰과 행정당국은 각별한 주의를 당부하고 나섰다.
울산경찰청 관계자는 “내리막길에 고임목 미설치 등 안전조치를 준수하지 않을 경우 즉각 현장에서 계도 조치를 하고 있다”라며 “안전조치 차원에서 집중 계도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울산시 관계자는 “범칙금과 관련한 단속은 경찰에서 담당하고 있지만, 주차장 내 관련된 사항은 행정에서 관리하는 만큼 성숙한 시민의식을 당부드린다”라고 전했다.
한편, 관할 경찰은 예초 작업자 사망사고와 관련해 안전조치 이행 여부 등을 조사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