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질 무렵이면 붉은 꽃 하나가 먼저 찾아온다. 잎도 없이 긴 꽃대 끝에 불꽃처럼 피어나는 꽃무릇이다.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한다고 하여 애틋한 이야기를 품은 꽃이다. 그래서인지 꽃무릇이 피어 있는 풍경 앞에 서면 아름답다기보다 쓸쓸함이 먼저 일어난다.
꽃무릇을 보러 고창 선운사와 영광 불갑사를 찾은 적이 있다. 같은 꽃인데도 두 곳에서 만난 느낌은 사뭇 달랐다. 어느 쪽이 더 아름답다고 쉽게 말할 수 없다. 선운사의 꽃무릇이 한 편의 서정시라면, 불갑사의 꽃무릇은 긴 서사시처럼 다가왔다.
선운사 꽃무릇은 숲을 따라 조용히 피어 있었다. 초록빛 숲 사이사이 번지는 붉은빛은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늘 속에서 더 깊고 선명했다. 발걸음이 자꾸 느려졌다. 사진 한 장을 찍고도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게 되었다. 꽃을 보기보다 꽃이 있는 풍경 속에 오래 머물고 싶었다. 선운사의 꽃무릇은 마음속 소음을 잠시 내려놓으라고 말하는 듯했다.
불갑사 꽃무릇은 달랐다. 불갑산 자락에 들어서는 순간 붉은 물결이 눈앞으로 밀려왔다. 한 송이 두 송이를 셀 수 있는 풍경이 아니었다. 수많은 꽃무릇이 땅을 붉게 덮고 있었다. 논두렁과 밭둑까지 붉게 번져 있었다.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는 논 사이에서 선홍빛 꽃무릇은 유난히 또렷했다.
불갑사의 꽃무릇 앞에서는 감탄사가 먼저 나왔다. 사람들도 발걸음을 멈추고 휴대전화를 들었다. 어디를 바라보아도 한 폭의 그림이 되었다. 선운사에서 혼자만의 생각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면, 불갑사에서는 사람들과 함께 꽃의 축제를 걷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실제 꽃무릇 축제기간이기도 했다.
같은 꽃인데 어째서 이렇게 다르게 보이는 것일까. 선운사의 꽃무릇은 한 송이를 들여다보게 하고, 불갑사의 꽃무릇은 수만 송이를 한꺼번에 바라보게 한다. 선운사의 붉음이 마음 안으로 스며드는 붉음이라면 불갑사의 붉음은 눈앞으로 밀려오는 붉음이다.
선운사에는 여백이 있다. 나무와 물과 돌과 꽃 사이에 빈자리가 있다. 그 빈자리로 생각이 들어간다. 지나간 사람도 떠오르고 오래 묻어 두었던 기억도 따라 나온다. 그래서 그곳의 꽃무릇을 보고 있으면 조금 쓸쓸해진다.
불갑사의 꽃무릇에는 충만함이 있다. 꽃과 꽃 사이가 보이지 않을 만큼 붉은 기운이 가득하다. 생명이 한꺼번에 솟구치는 듯하다. 꽃잎마다 불꽃 하나씩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쓸쓸함보다는 환희가 먼저 밀려온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 꽃 한 송이를 바라보면 두 곳의 꽃은 결국 같다. 가느다란 꽃대 위에서 여섯 장의 꽃잎이 뒤로 젖혀지고 긴 꽃술이 허공을 향해 뻗어 있다. 잎이 없는 동안 꽃이 피고, 꽃이 사라진 뒤에야 잎이 올라온다.
꽃과 잎은 같은 뿌리에서 태어나면서도 서로를 만나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꽃무릇에 그리움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삶에도 그런 인연이 있다. 같은 시간에 같은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끝내 마음이 닿지 않는 사람이 있고, 너무 늦게서야 소중함을 깨닫는 사람이 있다. 곁에 있을 때는 모르다가 떠나고 난 뒤 비로소 그 자리를 바라보게 되는 일도 있다.
꽃무릇은 해마다 이야기를 되풀이한다. 나는 아직도 어느 곳의 꽃무릇이 더 좋았는지 말할 수 없다. 선운사의 꽃무릇과 불갑사의 꽃무릇이 가을날을 아름답게 장식한다. 하나는 마음을 비우게 하고, 하나는 마음을 가득 채운다. 하지만 두 꽃길의 끝에서 내가 만난 것은 결국 같은 것이었다.
고은희 울산문인협회 회장·북구생활문화센터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