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미래를 잇다'를 주제로 섬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모색하는 여수세계섬박람회가 열리고 있다.
울산의 섬을 한번 바라보자. 동해안은 섬이 귀하다. 울산에는 작은 무인도 4개가 있다. 일산의 선암(민섬), 외황강의 처용암(622㎡), 온산의 목도(1만5,074㎡), 진하의 명선도(6,744㎡)이다. 처용암과 목도는 보호를 위해 입도가 제한돼 있다. 기후변화로 생태계까지 변하고 있어 개방은 요원하다.
선암은 나무 한 그루 없는 사실상 암초나 마찬가지라 강태공들이 서 있기에도 아슬아슬한 곳이다. 명선도만 아름답고 접근이 쉬워 관광에 일조하고 있다.
울산에는 부산 영도나 가덕도처럼 항만 보호에 큰 도움이 되는 섬은 없다. 대신 초대형 방파제들이 바다 가운데에 줄지어 누워 파도를 막아주고 있다.
울산에도 한때는 아름다운 섬들이 성곽만큼 풍부했지만, 산업단지를 만들기 위해 바다를 메우면서 남은 섬보다 없어진 섬이 더 많다. 지리지와 오래된 지도에서 그 원형을 어렴풋하게나마 발견할 수 있다.
먼저 동쪽 방어진반도를 보자. 파련암이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부터 나타난다. <세종실록>에는 왜인 태랑좌위문 무리 표류사건이 기록되었다. 조선 후기 <울산목장지도>가 제작되던 시절에는 이름이 홍상도로 바뀐다. 낙화암(여기암)에서 어린 기생이 떨어져 죽었다는 설화가 나온 후 이름이 바뀐 듯하다. 실화인지, 동백섬 사건 모방인지 확실하지 않다. 미포만 북쪽 끝에 있었으며, 지금은 조선소 방파제에 묻혔다. 일산 선암(민섬)과 방어진항 슬도는 워낙 작은 섬이라 지리지나 고지도에는 나타나지 않다가 1919년 <오만분의일지형도>에서부터 나타난다. 슬도는 방파제로 연결돼 더 이상 섬이 아니다.
태화강과 외황강 너머로 가보자. 지리지를 보면 조선 초기부터 처용암, 죽도, 동백도가 나타난다. 그런데 이 부근 섬 중 죽도는 시대마다 인식이 달랐는지, 마을을 달리해서 불렀는지 고지도를 보면 일관되게 이어지지 않아 혼란을 준다. 섬마다 대나무와 동백이 많아서 그런 듯하다.
사실 죽도는 송도보다 더 흔한 이름이다. 울릉도의 다른 이름도 죽도였다. 섬이 천 개 넘는 신안에는 죽도가 16개 정도라고 하고, 인근 기장에도 있다.
울산에서 자체 제작한 <학성각면산천도로총도>에는 죽도, 목도, 명선도 순서로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을 보면 죽도를 소위 '윤수일의 환상의 섬', 장생포 죽도로 볼 수 있다. 지금은 해운대 동백섬처럼 육지와 합쳐져 버렸다. 앞서 작성한 <학성지> 지도에는 동백도(목도)는 나오는데 작아서 생략했는지 죽도가 보이지 않는다.
목도는 춘도 또는 동백도라고도 한다. 상록수림이 울창한 천연기념물로서 넓은 바위들이 섬을 두르고 있다. 우물이 하나 있었고, 80년대까지도 배를 타고 소풍을 다닐 정도였다.
태종 때는 이복례 지울주사 귀양사건이 있었다. 한바탕 즐긴 후 자신이 탄 배는 돌아왔는데 염장관 일행이 탄 배가 전복돼 기생과 종들이 희생된 책임을 졌다. 김종직이 동백도라는 시를 지어 "노를 잘못 저어 미인들을 고기밥이 되게 했다"고 한탄했다.
이곳을 죽도라 한 경우도 있다. 조선 후기 <비변사인방안지도>에는 처용암 바로 아래에 죽도가 있다고 했다. <심원권일기>에도 그런 정황이 보인다.
1875년 3월 3일 일기에 "본부 안에 가서 여덟 사람이 함께 목도에 와서 잠시 놀고 난 뒤에 배를 타고 죽도를 돌아보며 오른쪽으로 선회하였다"라고 했다. 1919년 지형도에는 동백도가 보이지 않는 걸로 보아 같은 섬을 말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가장 가장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고려시대 해도입보(海島入堡) 유적이 발견된 연자도(燕子島, 17,690㎡)이다. 지금은 매립돼 없어졌다. 규모로 보면 울산의 섬 중 가장 넓었지만, 이름은 1919년 지형도에 처음 등장한다.
김정호의 <청구도>를 보면 동백도, 명선도 사이에 또 죽도를 그려뒀다. 그렇다면 당시 연자도를 죽도라고 불렀을 수 있다. 그런데 <대동여지도>를 보면 장생포 앞에 명선도를 표시하고, 그 아래로 처용암, 죽도, 동백도 순서로 그렸다. 완전히 거꾸로 돼 있는데, 앞서 그린 <청구도>가 정확하다.
1919년 지형도에는 연자도 외에 죽도(지금의 목도) 바로 아래 거무암(巨無岩), 조암도(鳥岩島)가 나타난다. 그리고 합도(蛤島)가 있었다. 태화강의 중도(中島)처럼 돋질산 동쪽에 접해 있던 모래톱이었다.
지도는 계속 정교해졌고, 1986년 <울산지명사>에는 태화강 남쪽으로 더욱 많은 섬 이름을 조사해 남겼다. 조개섬, 죽도(장생포), 처용암, 새섬(한발섬), 신선암, 거무도, 동백도, 노루섬, 뽈락돌, 연자도(제비섬), 이팔도(二八島), 흑섬, 주암(周岩), 의논암(議論岩), 명선도, 이덕도 등이다. 암초에도 이름을 붙였던 듯하다.
울산의 섬들은 육지와 너무 가까웠고, 작았으며, 유인도가 없었다. 살아남은 섬들이 기적이다. 이 섬들에는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 바다는 미래와 이어지지만, 과거와도 통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