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마다 봄이 다시 오지 않으면 어쩌나 노심초사했던 시절이 있었다. 세상이 온통 불확실성으로 가득찼던 태곳적 그리스인들은 봄이 오리라 예상은 했지만 확신이 서지 않았다. 봄이 여느해 보다 조금 늦게 오기라도 하면 혹시 신(神)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것이 아닌가 두려움에 떨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신을 위로하고 새 생명을 잉태하는 봄이 다시 올 수 있게 하기 위해 축제를 열었다. 세월이 흘러 이제 사람들은 때가 되면 봄이 오도록 신이 약속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봄을 알리는 절기도 정해 봄맞이 준비에 나서기 시작했다.
우리의 24절기 중 봄을 알리는 여섯 절기 가운데 맨 먼저 맞이하는 것이 입춘(立春·2월 4일)이다. 대문이나 문 양쪽 기둥에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을 써붙이고 봄맞이에 바쁘다. 올 입춘엔 서울 등 중부지방에서는 폭설이 내려서 입춘대설(立春大雪)이라고 법석을 떨었다.
그다음 빗물이 언 땅을 녹이는 우수(雨水·2월 18일),개구리가 깨어난다는 경칩(驚蟄·3월 5일),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춘분(春分·3월 20일), 하늘이 점차 맑아지는 청명(淸明·4월 5일), 봄비가 푸짐하게 내려 곡식이 쑥쑥 자라기 시작하는 곡우(穀雨·4월 20일) 등 봄맞이 여섯 절기가 줄을 서 있다.
기상학에서는 대체로 하루 평균 기온이 5℃이상으로 올라가는 때가 되면 봄이 시작됐다고 본다. 오늘은 천문학적으로 밤낮의 길이가 같아진 춘분이다. 이제 겨울 추위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긴 했다. 꽃이피는 것을 시샘한다는 꽃샘추위만 잘 넘기면 된다.
이맘때가 되면 따뜻한 바람결에 몸이 나른해지면서 오후에는 졸립다고 호소하는 사람이 많아진다. 매사에 의욕이 떨어지고 쉽게 짜증도 난다. 어느새 춘곤증(春困症)이 왔다며 투덜거린다. 그러나 춘곤증(spring fever)이 의학 용어는 아니다. 갑작스런 계절변화에 우리 몸이 잘 적응하지 못해서 생기는 일시적인 피로 증상이다.
그동안 추위에 익숙해 있던 인체의 신진대사 기능들이 봄의 환경에 적응하려면 2~3주 정도는 춘곤증을 이겨내야 한다. 몸과 마음이 봄을 맞이할 준비가 안돼 있다면 아무리 화려한 봄이 온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나의 천적(天敵)은 바로 나’라는 시도 있지 않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