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산문화란 기원전3500년 전후에 중국 동북지역의 젖줄인 요하유역의 내몽고자치구 적봉을 주심으로 꽃피운 신석기시대의 원시문화를 일컬음이다. 이 홍산문화는 고조선의 선행문화이다. 넓은 의미의 홍산문화는 선대의 흥륭와문화까지 거슬러 올리는데 기원전 7000년까지 범위를 넓히고 있다. 홍산문화의 특징은 옥을 일상에 사용한, 옥기문화를 구축한 문화이다. 홍산문화의 무덤을 발굴하면 어김없이 옥기가 쏟아진다. 대부분 치레거리이거나 의식용 용기이지만 일상생활에 사용한 용기도 상당수 출토되고 있다. 그래서 중국의 홍산문화연구자들은 석기시대와 함께 옥기시대를 인류사 시대구분에 삽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만큼 독특한 문화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홍산문화는 동이족이 일군 문화이다. 그들이 후에 고조선의 문화를 형성하고 한반도 남부인 울산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들은 적석묘를 섰고, 제단을 마련하고, 신전을 세워 또 다른 인류문명을 이루었는데 4대문명의 하나인 황하문명보다 1000년 이상 앞서 꽃피운 사실이 밝혀져 중국의 동북공정 문화정책 수립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홍산문화시대의 흔적이 최근에 울산에서 나타나고 있어서 주목을 받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뚜렷한 홍산문화의 유물이 울산 처용리유적 출토품인 옥귀걸이이다. 이 유적은 외항강과 처용암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위치한 신석기시대 중기~후기 매장유구로 이곳에서 석제품들과 함께 옥으로 만든 귀걸이 즉 옥결이 발견 되어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름 8.1cm의 이 옥결은 홍산문화의 흥륭와에서 출토된 옥결과 모양이 거의 같을 뿐 아니라 옥의 재질도 흡사하다. 신석기시대 중기라면 홍산문화 전성기의 시기와 같다. 5000여 년 전 홍산문화의 터전과는 2000km 거리의 먼 곳인데 어떻게 이 곳 울산까지 옥결이 전해진 것일까? 어떤 형태이든 홍산문화 지역과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울산에 홍산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짐작되는 유물은 또 있다. 이른바 ‘신암리비너스‘라고 불리는 흙으로 만든 여인상도 홍산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밖에 눌러 찍은 토기, 덧무늬토기는 물론이고 파수형 토기편등 울산의 신석기시대 출토 유물들 가운데 홍산문화의 것과 흡사한 유물이 상당수 있다. 최근에 한국형암각화로 일컬어지는, 한반도 남부지역에만 있는 검파형암각화도 홍산지역에서 확인 되어 주목을 받고 있다. 천전리각석을 발견한 문명대교수는 천전리각석에 새겨진 암각화 문양은 북방 고조선 선대족들이 남하하여 새긴 초기문자로 보는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홍산문화의 영향이 미친 유적은 또 있다. 방기리알바위의 미확인 유적은 홍산문화의 제단형식과 흡사하다. 홍산문화의 3대 특징 가운데 제단이 우선으로 꼽힌다. 방기리유적은 홍산인들이 하늘에 제사를 올리던 원형제단 그 모양이다. 앞으로도 울산지역에서 홍산문화의 영향을 받은 그 시대의 유적과 유물은 계속 발견될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는 역사시대의 뿌리를 찾고 울산인의 정체성을 밝히는 데는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나 선사시대 문화의 뿌리를 찾고 인식하는 데는 미흡하다. 선사문화 하면 반구대암각화만 연상하지만 이와 더불어 선사문화 전반의 흐름에 관심을 갖고 시민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립해 나가야 한다. 한반도 동남부 울산지역에서 선사문화를 꽃피운 우리의 선인들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먼 집단들과 교감 하면서 일찍이 문화의 꽃을 피웠다. 울산인의 정체성 찾기는 선사시대부터 시작해야 한다. 여느 지역보다도 일찍 선사문화를 꽃피운 지혜로운 선민들의 행적에 대해 우리는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