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학 교수

1980년대 민주항쟁의 물결은 대학생들로 하여금 향기로운 커피 향에 젖는 것 보다는 독한 최루탄가스 속으로 뛰어들게 했다. 82년 야간통행금지가 해제되면서 심야영화관과 심야다방이 등장했다.

80년대 초까지 절정에 달했던 음악다방은 중반부터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가정에 오디오 공급과 LP판의 CD 교체 등이 원인이었다.
또 80년대 초 시내 중심가와 대학가 주변을 중심으로 ‘커피숍’이란 명칭이 등장했다.

밝고 세련된 커피숍은 음악다방을 몰아내고, 마담 등이 있는 일반다방마저 변두리로 몰아내기 시작했다. 커피숍은 실내의 테이블과 의자, 가구 및 소품, 화장실까지 모던한 인테리어로 치장하며 경쟁했다. 다방은 구세대가 가는 곳, 커피숍은 신세대가 찾는 곳으로 이원화됐다.

1993년 ‘개정 식품위생법’ 시행은 토종 커피점의 프랜차이즈가 확산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러한 커피점은 간단한 스낵과 함께 처음으로 셀프서비스를 도입했고, 일인용 액상프림과 봉지설탕을 줬다.

다방이나 커피숍의 인적 서비스에 익숙했던 사람들에겐 생소했지만,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은 음악다방을 한 방에 종식시켜버렸다.

랩과 힙합으로 대변되는 그들의 신세대음악은 대중음악에 혁명을 일으켰고, 음악을 듣는 것에서 보는 것으로 진화시켰다.

결국 랩과 힙합댄스가 없는 음악다방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됐다. 1990년대는 토종 커피전문점을 비롯해 ‘커피믹스’와 커피자동판매기의 보급, 전자오락실과 노래방의 등장 등이 다방을 몰아냈다.

1900년 우리나라 최초의 다방이라고 할 수 있는 ‘송교청향관’이 문을 연 후 1980년대 커피숍의 시대까지 사랑방 역할을 해왔던 다방은 약 1세기만인 1990년대 말 서서히 막을 내리기 시작했다.

1999년 ‘스타벅스’가 한국에 상륙한 것을 계기로 2000년대부터 우후죽순 등장한 커피전문점은 다방을 변두리로, 변두리에서 지방의 소도시, 면소재지로 밀려나게 만들었다.

2000년대 이후 눈 뜨면 생기는 것이 커피전문점이라고 할 정도로 대한민국은 커피공화국이 되었다. 코브러리족, 코피스, 글루미족 등의 신종어도 만들어 냈다.

‘카페라테 지수’는 세계경제의 물가지표로서 활용되고 있다. 이제 다방은 아날로그 추억 속에 묻혀버렸고, 대형 커피전문점이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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