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호일 한국은행 울산본부장

사람 생각이 비슷하기 때문에 지역이나 국가를 달리해도 문화나 기술이 발전하는 과정이 서로 닮는 경향이 있는데, 길게 보면 역사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중국의 고사성어가 많지만, 우리 고대사에도 당시의 문화를 짐작케 하는 많은 이야기가 남아 있다. 「삼국사기」가 편찬된 1145년을 기억하게 된 건 아내가 어느 한국사 강좌에서 듣고 가르쳐준 암기법 덕분인데, 책이 안팔려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일일이’(11) 한권만 ‘사주오’(45)라고 했단다.

흔히 장사할 때 첫 번째로 물건 파는 것을 일컬어 ‘마수걸이’ 또는 ‘개시(開市)’ 했다고 한다. 맨 처음 물건을 산 고객을 ‘마수손님’이라 하고, 일부 가게에서는 마수손님에 따라 그날 장사 운이 결정된다고 해서 첫손님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두기도 한다. 국어사전에서 ‘마수’를 찾아보면 “첫 번째에 팔리는 것으로 미루어 헤아리는 그날의 장사 운수”라고 설명되어 있는데, 인터넷 검색을 해봐도 어디서 나온 말인지는 분명치 않다.
최근 울산의 땅이름 유래를 찾아 「삼국사기」의 관련 부분을 읽다가 현재 쓰고 있는 ‘마수’라는 말의 어원과 관련될지 모른다고 생각되는 흥미로운 기록이 있어 전문을 인용해 본다.

“거도(居道)는 그 성씨가 전하지 않아 어느 곳 사람인지 알 수 없는데, 탈해 임금을 섬겨 간(干) 벼슬을 하였다. 이 때 우시산국(于尸山國)과 거칠산국(居柒山國)이 국경에 인접해 있어 자못 나라의 걱정거리가 되었다. 거도는 변방을 지키는 관리가 되어 몰래 이를 병탄할 뜻을 품었고, 해마다 한 번씩 장토(張吐) 들판에 많은 말을 모아 병사들로 하여금 달리며 놀게 했는데, 사람들은 이를 ‘마숙(馬叔)’이라고 불렀다. 이웃 나라 사람들이 신라에서 늘 하는 일로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때, 군사를 일으켜 불시에 쳐 두 나라를 멸했다.”(<열전>4 거도)
경주를 중심으로 하는 소국에 불과했던 신라가 탈해임금(재위 서기 57~80년) 때 거도 장수가 기병으로 마숙을 하면서 사람들이 연례행사 정도로 여겨 경계하지 않는 틈을 타 이웃 나라를 기습 병합했다는 이야기다. 한편 마숙과 비슷한 놀이로 마상재(馬上才)가 있었다. 이는 달리는 말위에서 무예나 재주를 보이는 것인데 1600년대의 조선통신사에 포함되어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서울에서 출발한 통신사 일행이 지나가는 영천과 부산에서도 많은 구경꾼이 몰렸다는 기록이 있다.
그래서 마숙이란 표현을 ‘말타는 재주가 뛰어난 사람’을 일컫는 순우리말, 이를테면 ‘말잡이’의 이두식 표기로 보고, 약 2000년 전 이곳 울산의 어느 벌판에서 마수걸이 단어의 원형이 만들어졌다고 상상해본다. 마수걸이란 말에는 그 옛날의 전설적인 마숙처럼 많은 사람이 몰려들기를 기대하는 시장 상인들의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다.

최근 수년간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는 울산지역 유통산업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한 논의가 활발하다.
먼저 생활편의와 삶의 질을 중시하는 소비패턴 변화, 생산과 소비간의 매개채널 다양화 등의 여건변화에 맞추어 유통산업구조를 변모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대형소매점과 복합쇼핑몰의 기능 확충, 40개 전통시장의 영업환경 개선, 특화상업지구 조성 등의 과제를 꾸준히 추진해나가야 하겠다.
또한 선진기반시설 정비, 도심재개발, 관광육성 등으로 역내 소비기반을 다지는 노력도 긴요하다. 아울러 양산 밀양 경주 등과 연계하는 울산중추 지역행복생활권 계획도 잘 발전시켜 나가야 하겠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같은 구체적인 실행계획의 근저에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는 ‘마숙’의 간절한 마음이 그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상기의 대책들이 울산지역 경제 발전을 위한 진정한 ‘마수걸이’로서 작용할 수 있다. 우리말 소리에는 뜻이 담겨 있고, 우리글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뜻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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