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은 목화(木花) 열매에서 뽑아낸 실(綿絲·면사)로 짠 옷감이다.
‘무명’이란 말은 1363년(고려 공민왕 13년) 원나라 사신으로 갔다가목화 씨앗 세개를 붓뚜껍 속에 숨겨들여왔다는 문익점(文益漸·1329~98)의 손자 이름에서 유래됐다.
문익점의 손자 문영(文英)은 목화실로 맨 처음 베를 짰으며 그 베가‘문영베’로 불렸으나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무명베’가 됐다.
또 목화솜에서 실을뽑아 내는‘물레’는문익점의 또 다른 손자 문래(文萊)가 처음만들어 보급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문익점이 목숨을걸고 목화씨앗을 숨겨와야 했던 것은 원나라가 양질의옷감 원료가 외국으로 흘러나가면경제적인 부를 이룩하여 원나라에맞설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또충선왕에게 쫓겨난 왕자 덕흥군 편을 들어 돕다 문익점이 파직된 것은하늘이 도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가벼슬을 그만뒀기에 고향에 내려가목화를 재배하고 보급할 수 있었다.
당시 고려사람들은 양잠을 해 얻은 명주와 삼을 길러 만든 삼베, 그리고 가죽옷 따위를 입었다.
그러나명주는 만들기가 까다롭고 삼베옷은 보온이 안 됐다.
이처럼 무명베옷은 우리 선조들의 옷이었으나 조선이 망한 뒤엔 일제가 기계로 짠양목(洋木)을 농촌에 풀어 한때 조선땅 목화생산을 마비시키기도 했다.
국립부여박물관은 지난 1999년부여 능산리 절터 제6차 조사에서수습한 직물을 최근 정밀분석한 결과 서기 6세기 무렵(백제시대)의 면직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 사실이 공식적으로 인정되면‘문익점 목화’보다 800년 앞선 것으로 한국면직물 역사를 바꿀 수도 있다는 얘기다.
우리 삼국시대 이전중국에서도 면직물은발견된 적이 없다.
이를 보면 인도 또는 중앙아시아에서 들여온목화를 재배해 백제에서 베를 짠 것이 아닐까 추정할 수도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신라가 면직물(백첩포)을 짜 중국에 예물로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문익점이 들여온 목화씨앗은 대량생산이 가능한 종자였고, 그 이전에도한반도에서 목화를 재배하고 면직물을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문익점이 가져온 목화씨앗과 무명 보급은 이 나라에 의복혁명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경제에도큰 영향을 줬다.
우리역사에서‘백성에게 옷을 입힌 공(衣服生民之功)’을 세운 문익점은 어느 위대한정치가나 학자보다 칭송을 받을만하다.
김병길 주필·편집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