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꽃은 불교를 상징하는 염화미소이다. 시궁창의 썩은 물속에서 꽃을 피우지만, 더러운 물을 정화하는 능력을 가졌고, 스스로는 더럽혀지지 않은, 처염상정(處染常淨)이며, 하루 피어 꽃 짐과 더불어 화과동시(花果同時)의 식물이 연꽃이다.
더럽고 추하게 보이는 물에 살지만 그 더러움을 조금도 자신의 꽃이나 잎에는 묻히지 않는 것은 마치 불자가 세속에 처해 있어도 세상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오직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아름다운 신행의 꽃을 피우는 것과 같다.
중생을 구제하고, 온갖 추한 업보와 죄악을 씻어주는 처염상정은 생사의 가림 끝에서도 본연을 잃지 않는다. 또한 화과동시(花果同時)는 그 누구보다도 본연을 거스를 수 없는 인과율을 상징하는 것으로, 부처님이 가르치는 정도의 핵심 사항이다.
음력 4월 8일 부처님 오신 날이 되면, 가깝고 먼 사찰을 찾아 내남없이 연등을 달고 길흉화복, 무운장수, 소원성취를 빈다. 정작 왜 연등을 밝히는지 조차 그 의미를 많은 불자들은 알지 못한다.
연등행사는 힌두교인들이 그들의 신에게 물, 향, 꽃, 등불과 음식을 바쳐 신(부처님)을 추앙하는 습속에서 시작되었다.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이후 신라 경문왕 6년(866년)과 진성여왕 4년(890년) 정월 대보름에 황룡사에 연등을 달고, 불이 꺼지지 않도록 했다.
또한 진흥왕 때는 연등회를 가지기도 했다. 고려시대에 국교와 다름없었던 불교는 연등회가 큰 명절의 하나로, 정월 대보름과 2월에 열렸는데, 그 후 4월 8일 부처님 오신 날로 바뀌었다.
올해 부처님 오신날에도 크고 작은 사찰마다 사람들이 넘쳐났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소원성취의 연등을 달기 위해 법당안은 발을 들여 놓을 틈이 없었다. 어디서 나온 속설인지는 몰라도, 세 곳의 절을 찾아보아야 복을 받는다고 하니, 그 연등 값이나 시줏돈만 해도 만만치 않다.
벌써 부처님 오신 날의 여러 날 전부터 사찰 주변이나 들어서는 입구의 길거리에 무수한 연등을 매달아 두고, 부처님 오신 날이면 등을 밝힌다. 단 하루 탄신일을 맞아, 수많은 등을 달고 떼어야 하는 번거로움도 여간 힘들지 않으리라.
대체로 올해에 등을 밝혔던 연등은 겉(창호지)은 떼어내고, 속(철사로 된 등틀)은 갈무리 했다가, 다음해 다시 사용하는 것이 동예이다. 해마다 준비하는 연등의 제작비와 설치비도 대단한 거금이 들어 신도들이 함당하기엔 버거워서 하도급을 내어주는 경우도 많은가 보다.
해마다 치러지는 연등법회는 그 규모나 절차가 상상을 초월한 만큼 성대하고 진지하다. 올해는 연등달기에 참여하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남들이 다하니까 덩달아서 일정한 곳 없이 절을 찾아 연등을 달았으나, 올해는 한곳도 가지 못했다. 사찰마다 속내를 보이는 배금현상은 심기를 더욱 불편하게 하기 때문이다.
연등을 켜는 진정한 의미는 부처님의 가르침과 자비로움을 온 세상에 비치게 함이다. 또한 미망에 허우적이는 중생들을 위해 지혜로운 등불을 밝히는데 있다.
연등을 켜는 것은 처염상정(處染常淨)의 깊은 의미가 담겨 있음을 알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