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경민 LS니꼬동제련 온산제련소장  
 

 

불확실한 환경 속에서 변화·죽음의 기로에 선 기업들
‘환경·사회적 책임·투명’ 경영은 지속 가능성의 핵심
돈 잘 ‘버는’ 기업 아닌 잘 ‘쓰는’ 기업 되도록 변화해야

 

 

예전에 국정 교과서가 있던 시절, 중학교인지 고등학교인지 국어책에 실려있던 유치환의 시 ‘깃발’은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 저 푸른 해원을 향하야 흔드는 영원한 노스탈쟈의 손수건…’으로 시작한다. 기억으론 당시 여러 시험 마다 출제 빈도가 높았던 시였고 그리 길지도 않은 탓에 시 전문을 꽤 오랜 동안 외우고 있었던 것 같다. 이 시에서 깃발은 힘차게 펄럭이긴 하지만 묶여 있어 이상향에 도달할 수 없는 숙명적 한계를 가진 존재를, 소리없는 아우성은 유토피아를 향한 간절한 그리움과 열망을 역설법으로 표현한 것이다. 옛 기억을 더듬어 시를 소개한 이유는 ‘소리없는 아우성’이라는 도입 구절 때문이다. 국어 사전에 아우성은 ‘떠들석하게 기세를 올려 지르는 소리’라고 나온다 결국 ‘소리없는 아우성’은 ‘소리없는… 소리’가 된다. 소리없는 몸짓이라면 몰라도 다분히 모순된 표현법이다. 이처럼 상반되는 의미의 단어를 함께 배치하여 강조 효과를 얻기 위해 사용하는 수사법을 모순 형용법이라 하는데 영어로는 옥시모론(Oxymoron)이라 부른다. 그리스어 어원으로 옥시(Oxy)는 날카로운(Sharp)이며, 모론(moron)은 바보(Fool)라고 하니 옥시모론 자체가 똑똑한 바보라는 모순된 뜻을 가지고 있다.

변화의 시대인 지금, 우리의 일상도 어쩌면 옥시모론과 같은 상황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회적 거리두기 장기화로 일상이 급격히 바뀌면서 변화의 방향과 속도를 가늠하기 어려워져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도 모호해짐에 따라 ‘하고 싶은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사이에서 모순된 감정의 충돌을 겪기도 하고, ‘옳다고 믿고 있는 것과 옳은 것을 옳게 행하는 것’ 간의 괴리에서 모두가 적잖은 당혹감을 느끼고 있다. 예컨대 최근 주식시장에서 동학개미들의 눈부신(?) 성과를 보면서 주식투자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느낀다는 FOMO 증후군(Fear of Missing out : 정보와 유행에 뒤쳐져 고립되는 걸 두려워 하는 현상), 부동산 정책과 시장 경제 논리의 힘겨루기 과정에서 끝까지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었던 사람들의 성취(?)를 복잡한 심경으로 바라 보는 무주택자와 젊은 예비 수요자들의 허탈감등이 비근한 사례이다. 심지어 명절이 되어도 부모형제 간 얼굴 마주하기도 어려운 형국이니 이른바 격변의 시대에 깃발이 내는 소리없는 아우성이 아닐 수 없다.

개인의 일상도 이러하듯 기업 또한 상전벽해와 같은 경영환경 속에서 근원적 변화를 감행 할 것인가 점진적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모순상황에서 지속가능 경영의 기로에 직면해 있다. 지속 가능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변화의 ‘방향’이 중요한데 최근 주요 기업 사이에는 ‘ESG 경영’이 핵심적인 화두로 부각 되고 있다. Environment(환경), Social(사회적 책임), Governance(투명경영)의 첫 글자를 따온 말로 앞으로 기업 경영에서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하는 핵심항목이다. 최근 약 8조 달러 이상의 자산을 운영하고 있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미국의 블랙록이 글로벌 기업들에게 탄소배출억제 노력을 촉구하면서 이러한 환경, 사회적 책임 경영 노력을 게을리 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투자를 중단 할 수도 있다고 통지한 사실은 기업이 과거처럼 수익 추구 위주의 경영 만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국내 유수 기업들도 앞다투어 ‘ESG 경영’을 선언하고 있으며, 언론에서도 국내 주요 상장 기업들의 ESG 경영 평가 순위를 공개하고 있어 앞으로는 ESG 경영 성과가 해당 기업에게 투자를 할 것인지를 판단하는 주요 기준이 될 것이라고 한다. 돈을 얼마나 많이 버는가 하는 재무 성과로 투자 유망 기업을 판단하는 시대에서 ‘환경, 사회적 책임, 투명경영’으로 투자 기준이 바뀌어 간다는 다소 생소한 전망은 지금까지의 성공 체험이 앞으로의 성공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돈을 잘 ‘버는’ 기업이 아닌 잘 ‘쓰는’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역설에서 근원적 변화를 선택할 것인지 서서히 죽어 갈 것인지 기업의 선택지는 어쩌면 명확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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