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화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이다. 그는 민중을 위하여 그려지고, 민중에 의해서 구매되는 그림을 '민화'라고 불렀다. 그의 주장에는 두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하나는 오랫동안 낮춰봤던 민중의 미술을 복권하여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수수하고 평범한 생활미술에 대한 재평가다.
그런데 현대에 들어서 민화는 그 뜻이 크게 확장되었다. 민중의 회화인 민화뿐만 아니라 궁중 화원의 그림인 궁중 회화까지 민화의 범주에 포괄하고 있다.
오늘 소개할 그림은 <일월오봉도>이다. 일월오봉도는 민화에서의 분류상 궁중민화로 분류되는데, 궁중민화는 화려하고 장엄한 것이 특징이다. 크기도 크고, 채색도 진하며, 세부묘사도 정밀하고, 숙련도도 아주 뛰어나다. 이런 궁중 민화는 궁중에서 훈련된 화원들에 의해 그려진 최고 수준의 그림이다..
일월오봉도는 말 그대로 해와 달, 그리고 다섯 개의 봉우리를 그린 그림이다. 여기서 해와 달은 왕과 왕비를 상징하고 다섯 봉우리는 전설상의 중국 곤륜산을 나타낸 것이라는 설이 있다.
일월오봉도는 동양화의 여러 그림들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하늘에는 흰 달과 붉은 해가 좌우에 떠 있고, 그 아래로 다섯 개의 바위산 봉우리가 우뚝 솟아있다. 바위산에서는 두 줄기의 폭포수가 쏟아져서 큰물을 이루어 물보라가 굽이치고 있으며, 그 앞 좌우에는 붉은 소나무가 있다. 그림은 가운데를 중심으로 좌우대칭 구도를 이루고 있고, 산봉우리 끝부분은 흰 선으로 테두리를 입혀 장엄한 느낌을 주며 산수화보다 강한 상징성을 담고 있는 그림이라 볼 수 있다.
일월오봉도는 그림 그 자체만으로도 왕이 임석했음을 말하는 왕권의 상징이었다.
각종 기록화에 왕은 나타나지 않는다. 단지 일월오봉도 병풍이 서 있을 뿐이다.
그것으로 왕의 존재감을 표현했다. 일월오봉도는 주로 병풍으로 만들어 왕이 앉는 어좌 뒤에 세워졌다. 이 그림은 살아있는 왕은 물론 죽은 왕도 상징했다.
신성한 그림이었기 때문에 왕이 죽은 뒤 혼전, 빈전, 제실에도 장식되었다. 정도전의 창안으로 만들어졌다고 추론되는 일월오봉도의 도상은 한반도 전래의 산악신앙과 오악전통이 담겨있다. 왕좌에 오르는 임금이 위로는 하늘을 섬기고 아래로는 백성을 보살피는 성군이라는 상징이었다. 왕조의 정통성, 정치적인 권위, 통치자의 위엄을 상징하기 위한 철학을 바탕에 둔 장엄함과 화려함을 갖춘 그림이었다.
일월오봉도는 풍경을 그린 그림이면서 시간적으로 동일한 공간에 표현될 수 없는 해와 달을 동시에 그려 넣었다. 또 좌우 같은 형식의 구도에, 엄격하고 흐트러짐 없는 도식적인 이미지가 절대의 조형을 보여주고 있다. 일반 회화에서는 도식적인 표현보다는 사실적인 표현을 더 높이 평가하지만, 위엄과 권위를 나타내는 궁중 회화에서는 오히려 그 반대이다. 색채 또한 마찬가지이다.
청, 적, 황, 백, 흑... 철저한 오방색의 사용으로 그 절대성을 강조한다. 그림에서처럼 산과 소나무는 녹색을 주조로 삼고, 소나무의 줄기에는 붉은색이 장식처럼 부각된다. 그런가 하면 하늘은 청색을 칠하여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일월오봉도와 함께 책가도. 문자도 등도 궁중화에서 민화로 넘어온 대표적인 경우인데, 일월오봉도는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발견되지 않고 오직 조선에서만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인균민화작가·본지 독자권익위원·前 울산시청자미디어센터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