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창 시절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는 선사 문화의 상징이 빗살무늬 토기다. 전문용어로 즐문토기라 부르는 이 토기는 기하문토기(幾何文土器)라는 이름도 있다. 기하학적 평행선 문양을 음각한 토기로 아래가 뾰족한 화분형부터 평평하거나 깊이감이 있는 화분 형태로 발전했다. 동아시아에서는 시베리아에서 내몽골, 요동반도와 한반도 일부에서 출토됐고 일본의 큐슈와 오키나와에서 나타나는 광범위한 신석기 문화 징표다. 바로 오늘 울산여지도가 서른한번째로 찾아간 땅 신암이 대한민국 즐문토기의 출토지다.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선사시대 유물이 울산에서 출토된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즐문토기가 발견됐다는 이야기는 수만 년전부터 이 땅이 따뜻하고 온화한 곳으로 해안가 일대에 다양한 수산물이 많았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그 증좌의 대부분은 문화 징표로서의 가치가 중하기에 상당 부분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신암은 북쪽에 용리라는 이름의 신성한 장소가 있고 신암봉산 아래 덕곡재에 법골과 동대사고개, 미실골, 용시물골 등 이름이 예사롭지 않은 땅이 옹기종기 남아 있다. 바로 그 마을의 끝자락에 서면 동남 방향으로 광활한 동해가 펼쳐진다. 지금은 인근에 새울 원전이 들어서면서 사통팔달로 도로망이 뚫려 상전벽해가 된 곳이다. 하지만 신암 해안과 해안 마을은 여전히 해송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앞으로는 바다가 가슴을 열어젖힌 풍요와 길상의 땅으로 우리를 맞이한다.
한반도에서 인류가 살기 시작한 흔적을 이야기하면 충청권의 공주 석장리나 경기도 연천 등이 손을 번쩍 들지만 유일무이한 울산 신암의 여인상 앞에서는 기를 펴지 못한다. 40여년 전 처음으로 세상에 나온 뒤 '신암리 비너스상'으로 이름을 얻은 신석기 사람들의 성물은 울산 서생읍 신암리 유적 제2지구에서 1974년 출토됐다. 한반도에서 출토된 선사시대 여인상은 울산 신암리와 함께 함경북도 청진 농포 패총에서 확인된 것이 전부이고 그 중 신암 여인상이 단연 특출하다. 사람의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보이는 토우는 전남 완도에서도 유적 등에서 출토된 바 있지만 이들 출토품은 대부분 성별이 확실치 않고 보존 상태가 좋지 못해 문화적 징표로 내세우기엔 부족한 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울산의 신암리 비너스상은 오묘한 형태나 구조적인 안정감 등에서 신석기 유물로서의 가치가 절대적인 수준이다.
신석기시대의 조각품으로 추정되는 여인상은 일종의 신앙적 성격을 가진 성물이거나 또 다른 목적의 상징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적으로도 희귀 유물에 속하는 신석기 여인상은 사실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암리 비너스상도 흙을 빚어 만든 것이어서 몸체의 일부만 남아 기적에 가까운 보존 상태라 할 수 있다. 참고로 세계 고고학계에서는 오스트리아에서 출토된 빌렌도르프(Willendorf)의 비너스를 여인상의 으뜸으로 친다. 가슴과 엉덩이를 과장해서 표현하고 있는 이 여인상은 생식과 출산 등을 상징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남쪽의 신암 바닷가부터 내륙의 신화리 일대까지 울산의 석기 유적은 구석기부터 신석기까지 다양하게 출토되고 있다. 하지만 울산의 석기시대 유물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물론 한반도 지역의 석기유적이나 유물이 고고학계에 보고되기 시작한 것도 따지고 보면 얼마 되지 않은 일천한 역사를 가졌다. 울산의 경우 고고학계에서는 초기 발굴 단계에서 대상지에도 넣지 않는 완전히 소외된 땅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1970년과 1971년 대곡천에서 암각화가 쏟아졌고 인근 삼동 조일 신화 등에서 신석기 시대의 유물이 고개를 들면서 고고학자들과 인류학자들이 울산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신암리와 함께 주목받는 곳은 옥현지역과 신화리 일대다. 한반도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벼농사 유적과 구석기들이 발굴된 옥현주공아파트와 KTX 울산역 공사 중 발굴한 신화리 유적은 석기시대의 한반도를 잘 보여주는 유적이다.
또 하나의 충격은 후기 구석기시대부터 한반도에 등장하는 흑요석이 바로 신암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흑요석의 출토는 충격 그 자체였다. 흑요석은 용암이 급속하게 굳어지면서 만들어지는 암석이다. 흑요석 돌날의 경우 현대 과학기술로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얇고도 날카롭다. 바로 그 흑요석의 출처는 화산지대로 원산지가 일본 남쪽과 백두산뿐이다. 분석 결과 울산의 흑요석은 일본이 원산지였다. 어떤 경로든 대한해협을 건너온 물건이 울산의 한적한 바닷가에서 여인상과 함께 발견됐다. 설명이 필요하지만 탐구하는 울산 사람이 없었다.
마을 이름에도 역사가 있다. 신암은 한동안 빈 땅으로 남았다. 조선조에 와서야 갯가에 사람이 모여들었고 이들이 마을 이름을 짓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는데 앞에 구름 같이 희고 큰 바위가 보여 그 바위 모양을 따서 신암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전한다. 운암(雲岩)이 신암(新巖)으로 변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처음에 운암이 세월이 흐르면서 신암이 된 것은 확실하다. 이 마을 자연부락에는 비학머리 마을이 있는데 이 이름을 미뤄 보면 일제강점기까지는 겨울마다 신암에 학이 떼를 지어 겨울나기를 한 것으로 추정된다.
마지막 팁 하나. 신암에는 오래전부터 이런 이야기가 전한다. 마을에 몹쓸 병에 걸린 환자가 나오면 독경쟁이를 불러다가 경을 읽어 환자를 치료했다. 몹쓸 병의 원인이 귀신의 탓이라 여겨 독경쟁이가 귀신 쫓는 경문을 읽다가 그 악귀를 병 안에 가둔 뒤 땅에 깊이 묻었다. 역병의 치료술은 오래된 풍습으로 신암 땅 깊은 곳에 역병의 혼을 묶어 재발을 막았다. 그래서 신암에서는 봄마다 땅을 일굴 때 너무 깊이 땅을 파지 않는다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신석기 여인상이 출토될 만큼 토속신앙의 뿌리가 깊다는 이야기다. 믿거나 말거나다. 김진영 논설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