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울산 울주군 온산읍 공장지대, 한 좁은 길을 따라 들어선 마을 중턱에 자리 잡은 회색 컨테이너, 이 마을의 마을회관이자 경로당이다. 화장실 한 칸 없는 컨테이너에서 만난 평균연령 80대의 화산리 산성마을 주민들은 35년째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한다며 울분을 토하며 본지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수화 기자
지난 26일 울산 울주군 온산읍 공장지대, 한 좁은 길을 따라 들어선 마을 중턱에 자리 잡은 회색 컨테이너, 이 마을의 마을회관이자 경로당이다. 화장실 한 칸 없는 컨테이너에서 만난 평균연령 80대의 화산리 산성마을 주민들은 35년째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한다며 울분을 토하며 본지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수화 기자
마을회관으로 쓰고 있는 컨테이너 내부에는 공장폐수로 인해 지하수를 식수로 쓸 수 없어 구매해둔 생수병들이 한쪽에 싸여 있다. (오른쪽부터)김채화(88) 이장, 김금수(84)씨, 안남필(83)씨, 천금자(80)씨, 정창희(75)씨. 이수화 기자
마을회관으로 쓰고 있는 컨테이너 내부에는 공장폐수로 인해 지하수를 식수로 쓸 수 없어 구매해둔 생수병들이 한쪽에 싸여 있다. (오른쪽부터)김채화(88) 이장, 김금수(84)씨, 안남필(83)씨, 천금자(80)씨, 정창희(75)씨. 이수화 기자

온산공단 조성 이후 대부분의 주민들이 고향을 떠났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주민들이 있다. 이른바 '지도에도 없는 마을'로 남은 온산 화산마을이다. 이 마을은 지난 2021년 인근 공장들에서 5.5t의 염산이 누출되고 질소산화물이 일대 하늘을 뒤덮으면서 전국적인 뉴스가 됐다. 안전이 도마에 오르면서 몇차례 대책이 논의됐지만 언제나 그랬듯 시간이 지나면서 또다시 대책 없는 미래로 남아 있다. 최근 이 마을 주민들이 울주군의회에 자필로 호소문을 전달하면서 다시 산성마을 안전문제가 부각되고 있다. 그 현장으로 본지 기자가 달려갔다.

"조금이라도 더 숨 쉴 수 있을 때 나가고 싶어."

지난 26일 울산 울주군 온산읍 화산리 산성마을. 이곳은 지난 1989년 온산국가산업단지 추가 확장 계획부지에 편입된 마을주민 20여 세대가 이주해 35년째 머물고 있다.

그런데 사방이 공장에 둘러싸여 있는데 다, 국내 한 대표 포털사이트 지도에는 '존재하지 않는 마을'이어서 취재진은 마을을 찾는 것부터 어려웠다.

그렇게 찾은 마을 입구 길목에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기도 힘든 나이 지긋한 주민들이 외벽에 녹이 슬은 한 컨테이너 박스로 들어갔다. 놀랍게도 마을회관이었다.

한 맺힌 사연 때문이었을까. 김채화(88) 이장은 취재진에게 떨림과 격앙이 함께 담긴 목소리로 이야기를 꺼냈다.

"당시에 정부가 산단 조성으로 이주 정책을 추진하면서 거주지만 매입하고는 농지도 2~3년 안에 해결(매입)한다고 했어. 우리 생업이 농사인데, 당장 다른 곳으로 떠나서 땅을 살 수도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농지 근처에 농막같이 임시로 집을 지었지. 처음엔 전기도 안들어오고 제대로 된 상수도도 없고. 그래도 이주 당시에는 남편도 나도, 함께 온 주민들도 혈기 왕성한 40~50대였고 몇 년만 참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절망적이진 않았어. 그런데 토지 보상 약속은 온데간데없고 마치 우리가 없다는 듯 마을 주변에 공장이 들어섰어. 그렇게 야속한 35년의 세월이 흘렀고, 공해 때문인지 뭣 때문인지는 몰라도 남편들은 숨 차 하다가 호흡 질환, 암으로 세상 다 떠났어. 남은 우리도 80살을 넘어 90을 바라보는데, 무슨 농사를 짓겠어. 이젠 여기서 할 수 있는 것도 없어."

안남필(83)씨는 "공장에서 밤낮없이 쿵쾅거리고, 집채만한 트럭이 시도 때도 없이 다니는데 잠도 제대로 못 자. 마을 온 천지에 먼지 날리고, 상수도가 안들어 와서 군에서 만들어준 지하수 관정 쓰는데 어떤 오염물질이 들어오는지 알 수도 없어. 식수는 사서 먹고, 씻고 빨래하고 논에 물주는 용도로만 쓰는데, 그나마도 계속 고장나서 수리비만 계속 들어가. 이렇게 사는 주민이 어딨노. 우리는 울주군민도 온산읍민도 아닌거지"라고 울분을 토했다.

마을 초입에 위치한 집 앞으로 밤새 지나다니는 공장 트럭들의 덜컹거리는 소리로 밤에는 소음 때문에 잠조차 편하게 이룰 수 없다는 정창희 씨. 이수화 기자
마을 초입에 위치한 집 앞으로 밤새 지나다니는 공장 트럭들의 덜컹거리는 소리로 밤에는 소음 때문에 잠조차 편하게 이룰 수 없다는 정창희 씨. 이수화 기자

이날 함께 자리한 김금수(84)·천금자(80)·정창희(74)씨도 같은 이야기를 하며 침울함에 빠졌다.

1993년도에 산성마을로 시집온 김윤이(55)씨는 "신혼 때 잠깐 마을에 들어와서 살았는데, 물도 안좋고 피부도 안좋아지고, 애들 키울 생각을 하니 도저히 살 수가 없어 나왔다. 가끔 어른들을 뵈러 오는데, 마음이 늘 안좋다"고 말했다.

마을주민들이 직접 흙을 발라서 지었다는 화산리 경로당도 어느새 무너져 내려 이제는 컨테이너를 경로당으로 쓰고 있다는 평균연령 80대의 마을주민들이 그 형체만 남아있는 경로당 지붕 아래 그늘에 있다. 이수화 기자
마을주민들이 직접 흙을 발라서 지었다는 화산리 경로당도 어느새 무너져 내려 이제는 컨테이너를 경로당으로 쓰고 있다는 평균연령 80대의 마을주민들이 그 형체만 남아있는 경로당 지붕 아래 그늘에 있다. 이수화 기자

컨테이너 박스 마을회관 맞은편에는 지금은 창고로 사용하는 허름한 경로당이 있다. 이주민들이 손수 흙으로 만들어 사용하다가 낡고 허물어져 컨테이너 박스를 구매해 전기도 넣고 싱크대도 넣어 마을회관으로 사용하게 됐다. 화장실도 없어 컨테이너 박스 외부에 간이 화장실을 마련해 이용하고 있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도 이 경로당은 철거될 마을이라는 이유로 정식 경로당으로 등록이 안됐다. 그래서 온산읍 등 행정기관의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다.

컨테이너 마을회관으로 향하고 있는 마을주민들. 이수화 기자
컨테이너 마을회관으로 향하고 있는 마을주민들. 이수화 기자
 

이들이 이렇게 소외받고 살아간지 31년째 된 지난 2021년 인근 공장들에서 5.5t의 염산이 누출되고 질소산화물이 일대 하늘을 뒤덮어 주민 안전이 도마 위에 올랐다. 울산시의회에서 환경오염 피해 지역주민 이주 관련법 개정을 촉구하고, 공해마을 집단이주 법적근거 마련 대정부 건의안이 상임위를 통과하는 등 이주를 위한 희망의 불씨가 켜졌는데, 2022년 지방선거가 치러지고 집권 여당이 바뀌면서 상황이 흐지부지됐다.

그렇게 또 흐른 2년 주민들은 이달 초 이 같은 내용을 담아 군의회에 자필로 적은 호소문을 전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주민들에게 마지막 희망은 ㈜토탈이 산성마을에 추진 중인 폐기물매립장 건립이다. 지난 2021년 9월 울산시로부터 사업계획서 적정통보를 받았고, 마을주민들과 이주보상 협의까지 마쳤고 울주군의 입안 신청 등 절차만 남겨두고 있다.

김채화 이장은 "우리도 죽기 전에 사람답게 남은 생을 살아야 하지 않겠나. 군에서 조속히 행정처리를 진행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고 말했다.
김상아 기자 secrets21@ius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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