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바느질 외길 인생을 걸어온 최인숙 조각보 명인이 울산 북구 창평동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반구대 암각화 문양을 바탕으로 한 조각보를 제작하고 있다. 이수화 기자
50년 바느질 외길 인생을 걸어온 최인숙 조각보 명인이 울산 북구 창평동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반구대 암각화 문양을 바탕으로 한 조각보를 제작하고 있다. 이수화 기자
감물 암각화 문양 발.
감물 암각화 문양 발.

"베니스 비엔날레에 내 작품이 걸린 걸 보고, 아… 내가 참 잘 살아왔구나 싶었어요."

울산 북구 창평동 한 골목 어귀. 이곳에서 50년 바느질 외길 인생을 걸어온 규방공예가 최인숙 씨를 만났다. 

'전통조각보연구실'이라는 손 글씨 간판이 달린 작은 작업실엔 베니스 비엔날레 출품작 사진과 손수 기록한 설명들이 정갈히 놓여 있었다.

지난해 4월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열린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미술전에서, 최 씨는 다국적 작가 공동체 '나인 드래곤 헤즈(Nine Dragon Heads)'가 기획한 '노마딕 파티(Nomadic Party)' 전시 부문에 참여해 감물 염색 암각화 문양 조각보, 쪽 염색 암각화 문양 조각보, 손공자수 등 세 작품을 선보였다.

전통 기법과 울산 암각화 문양을 접목한 자연염색 조각보는 국내외 관람객의 주목을 받았다.

반구대 암각화 문양 조각보.
반구대 암각화 문양 조각보.

기자에게 사진 속 동행인들, 전시 작품들을 다시 한번 읊어주는 최 씨의 얼굴에는 웃음과 자부심이 가득했다.

최인숙 씨는 학문으로 규방공예를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다. 그래서 화려한 이론으로 바느질 이야기를 치장하진 않는다.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고자 시작한 바느질은 50년 일상이 됐다. 무엇보다 바늘을 잡고 실을 꿰어 나가는 일이 무엇보다 좋았고, 가장 잘하는 일이었기에 묵묵히 한평생을 해왔을 뿐인데, 어느 순간부터 손끝은 점차 '생활'에서 '예술'로 진화했고, 세계적인 베니스 비엔날레에까지 초청받았다.

전통 조각보 규방공예품을 제작하기 위해 자연 염색, 매듭 동양자수, 생활자수, 예절 다도 등 모든 것을 터득할 만큼 50년 가까운 바느질 생활은 그의 인생이었다.

"처음 일을 맡아 시작할 때의 설레임과 뿌듯함은 아직도 잊히지 않아요. 지금이야 전시회도 하고, 만들어진 작품에 남들이 경외심을 보내오기도 하지만, 그때는 꼼꼼한 바느질 솜씨를 인정받는 것이 전부였죠".

암각화 문양을 넣은 작품으로 1999년 울산공예품대전에서 수상하자, 팔리는 것에만 신경을 쓰던 '바느질 생활'은 하루아침에 바뀌었다. 여성인력개발센터 강사를 시작으로, 농업기술센터에서 또 포항, 통영, 대구, 강릉, 용인, 완도까지 갔다. 서울 인사동에선 정기적인 강의도 했다.

스스로 작품에 대한 애정도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작품활동 자체를 즐기기 시작했고, 더 나은 제작 방법, 새로운 패턴과 색상의 배치와 구성에 정성과 시간을 투자했다. 이전 작품들이 애벌레였다면, 수상 후의 작품은 세상을 향해 아름다운 날갯짓하는 나비로 진화하고 있었다.

최인숙 씨는 지난해 4월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열린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미술전에서, 감물 염색 암각화 문양 조각보, 쪽 염색 암각화 문양 조각보, 손공자수 등 세 작품을 선보였다. 사진은 당시 모습.
최인숙 씨는 지난해 4월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열린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미술전에서, 감물 염색 암각화 문양 조각보, 쪽 염색 암각화 문양 조각보, 손공자수 등 세 작품을 선보였다. 사진은 당시 모습.

전혀 다른 장르부터 전혀 다른 매체를 봐도 작품 소재로 삼을만한 것들이 무궁무진해 빽빽한 글로, 상세한 그림으로 기록한 것만 수첩 한 권이다.

울산 시민으로서의 자긍심은 그의 작품에 고스란히 담겼다. 특히 반구대 암각화는 중요한 창작 소재가 됐다. 여름 모시천 위에 고래 문양을 수놓은 조각보는 울산의 전통과 생명력을 느끼게 해 준다.

"빨간 버스 타고 아이들과 고랑에 놀러 갔다가, 암각화 속 고래 문양이 마음에 쏙 들어와 바느질로 넣었죠. 살아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암각화 문양의 작품들은 울산시 관광기념품으로 인기를 끌었고 일본, 중국, 뉴질랜드, 루마니아, 미국 등 세계 어디든 기회가 닿는 대로 전시회를 하기 위해 작품을 싸 들고 달려갔다.

작년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는 한 영국 남성이 암각화 문양을 알아보고 반가움을 표하기도 했다. 그는 울산에 두 번이나 암각화 관련 심포지엄을 위해 방문했다고 했다.

최 씨는 "세계유산 등재를 앞둔 울산 암각화를 내 손으로 수놓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라며 "조각보가 세계 박물관에 보존된다면, 내 손길과 숨결이 세계 어딘가에서 살아 숨 쉬는 것만으로도 벅차다"라고 말했다.

최인숙 씨는 지난 2017년 한국예술문화 명인(규방공예 암각화 문양 조각보)으로 선정됐다. 개인전 11회, 해외 전시 58회, 국내 전시 212회 등의 경력과 함께 한국공예예술공모전(전통섬유공예대상 부문)에서 지식경제부 장관상을 받았다.

고은정 기자 kowriter1@ius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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