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구와도 같지 않은, 어디서도 본 적 없는 화면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40여 년간 울산을 기반으로 창작활동을 이어온 중견작가 오나경은 바위에 새겨진 선사시대 암각화에서 예술의 본질을 찾았다. 기록되지 않는 순간의 감정과 기억, 지나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찰나의 이미지들을 붙잡기 위해 그는 수십 년간 재료와 기법을 실험해 왔다.
"다섯 살 딸아이의 낙서를 보면서 처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이 순수하고 기발한 흔적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고요. 그런데 캔버스는 왠지 불안했죠. 그때부터였어요. 바위에 수천 년을 새겨져 있던 암각화를 떠올린 것이."
그가 구현한 화면은 물리적 시간의 흐름에도 풍화되지 않는 벽화 같은 질감과 깊이를 품고 있다. 요철 화지(ARCHES)에 오일바와 오일파스텔로 색을 칠하고 긁어내는 스크래치 기법은 단순한 회화적 표현이 아니다. 그 자체가 물성과 흔적, 그리고 기억의 보존을 위한 일종의 '작가적 제의(祭儀)'다.
"작업은 굉장히 힘들어요. 반복해서 긁고 칠하다 보면 팔이 나가요. 하지만 그만큼 깊이 있는 색감과 마티에르가 나와요. 단지 '보여주기 위해' 그리는 게 아니라, '그릴 가치가 있는 것'을 고민하고 그걸 어떻게 그려낼지 묻는 시간이죠."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는 오 작가의 예술세계에서 중요한 축을 이룬다.
암각화 소재의 작품들은 고유의 재료 기법과 매우 잘 어울려서 작품성에 시너지를 주면서, 초현대적인 감각을 이끌어 내는 특별함이 있다.

그는 이들 유적의 형상을 단순히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초현대적인 감각과의 연결점으로 해석해 왔다. 수십 점의 관련 작품 가운데 일부는 십수 년 전 울산교원연수원에 기증되기도 했다.
"암각화는 시간을 견디는 예술이에요. 저 역시 '보존'을 위해 이 길을 택했어요. 나의 작업이 언젠가 사라지지 않고, 누군가의 기억과 만나기를 바라는 거죠"
오 작가는 미술교사로서도 오랜 기간 재직하며 생태교육 프로그램, 문화정책 자문, 교과서 집필 등 다방면의 활동을 펼쳐왔다. 본지 등에서 200편이 넘는 예술 칼럼과 문화 에세이를 써온 그는 일상과 예술을 잇는 '통로'로서의 삶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저는 미적 가치를 좇기 위해 일상의 안락함을 포기한 사람이에요. 도달점은 없지만, 제 작업이 '미술사적으로 가치 있고, 작가 의식이 뚜렷하며, 독창적이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창작에 정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이 제 예술을 통해 행복해지길 바라고요."
한편, 현재 태화복합문화공간 만디 제1전시장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 'Heritage; 잃고 싶지 않은 것, 보존해야 할 것들'은 오나경 작가의 예술 세계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자리다. 'Childlike', 'Pure', 'Now & Then' 세 섹션으로 구성된 전시는 각각의 주제를 따라 순수함, 무의식의 흐름, 그리고 암각화와 시간의 흔적을 오롯이 담은 작품 80여 점이 소개된다. 전시는 8월 24일까지 이어진다.
고은정 기자 kowriter1@iusm.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