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은 작가. 본인 제공
황정은 작가. 본인 제공

드물게 어떤 소설은 작가를 잠시나마 불멸하게 합니다. 내가 쓰는 이야기가 아니고 이야기가 스스로의 필요로 나를 거쳐 가는 소설. 그런 소설을 쓰는 동안에 저는 다치거나 병에 걸려서 소설 쓰는 일이 중단되지 않도록 생활을 관리합니다. 작업실에서 가급적 멀리 나가지 않고 사람 만나지 않고 말을 많이 하지 않고 과하게 먹지 않고 매일 달려 체력을 기르고, 침묵과 단순한 생활을 유지하며 그 소설이 무사히 마무리되는 데 힘을 쏟습니다. 이 소설을 다 쓸 때까지는 죽을 수 없다고 생각하며 매일 조금씩 원고지를 채워 나가는 것입니다. 다 쓸 때까지 죽을 수 없으니 나는 이것을 쓰는 동안엔 죽지 않습니다. 이십 년 넘게 소설을 쓰며 이런 소설을 몇 번 만났고 [문제없는, 하루]는 제게 그런 소설이었습니다.

2024년 10월에 저는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그해 11월, 영월 팔괴터널에서 소설 속 자매가 겪은 사고와 유사한 사고를 목격했습니다. 터널의 본래 용도인 ‘차량이 지나가도록’ 설계된 구조물에 발을 딛고 나섰을 때 느낀 섬뜩한 예감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의식을 잃어가는 취약한 사람 곁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저는 그 터널로 들어오는 다음 차량을 향해 돌아섰습니다.

전조등을 눈부시게 밝힌 채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차량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을 때 저는 ‘내가 지닌 것이 내 몸 밖에 없다’는 사실을 오감으로 깨달았습니다. 나라는 ‘몸’으로 응집된 하나의 세계, 그 세계 바깥의 모든 것을 나는 알지 못하며 믿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말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타인의 가능성을 믿어 보려는 간절한 마음이 내게 있었습니다. 믿어 보고자 애쓰면서, 저는 다가오는 타인을 바라보았습니다. 지금 다가오는 저 불빛 사이에 앉은 그에게 여기가 보이는가, 이것이 들리는가, 그가 여기를 제대로 보고 있는가, 여기에 무엇이 어떻게 있는지를 그는 보고 들을 수 있는가, 제때에 그가 멈추거나 속력을 줄일 수 있는가, 그래서 우리가 동시에 어떤 가능성에서 다른 가능성으로, 함께 넘어갈 수 있는가.

그 일이 예상보다도 내게 깊은 흔적을 남겼다는 것을 안 때는 2024년 12월 3일에서 4일로 넘어가는 밤이었습니다. 자정 넘어 컴컴한 도로를 응시하며 타인, 무엇보다도 그것을 저는 맹렬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타인, 그에게 여기가 보이는가, 이것이 들리는가, 그가 여기를 제대로 보고 있는가, 여기에 무엇이 어떻게 있는지를 그는 보고 들을 수 있는가, 제때에 그가 멈추거나 속력을 줄일 수 있는가, 그에게 멈출 마음이 있는가.

언젠가 이 소설을 다시 풀어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수상 소식을 들었습니다. 큰 격려로 여기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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