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용 남산초 교사·동화작가
송광용 남산초 교사·동화작가

  수업 시간에 네 컷 만화 그리기 활동을 했다. 활동을 시작하고 잠시 후, 교실 한구석에서 낄낄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 아이가 자신이 그린 만화를 친구들에게 보여주며 우쭐대고 있었다. 그 아이가 칠판에 붙인 만화엔, 우스꽝스러운 표정의 유명인이 머리에 총을 맞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특별한 내용이 있다기보다, 그저 누군가를 향한 조롱과 폭력성이 담긴 이미지였다. 그림을 그린 아이나 그걸 보고 웃는 아이들은 별다른 문제의식을 못 느끼는 것 같았다. 그림을 그린 아이는 다른 친구들을 웃겼다는 사실에 성취감을 느끼는 듯했다. 바로 이 문제의식 없는 유희, 어떤 대상을 조롱하고 이것을 재치쯤으로 여기는 현상이 아이들의 문화로 스며들고 있다.

​ 오늘날 청소년들의 조롱 문화는 과거의 거친 욕설이나 직접적인 위해와는 결이 다르다. 그것은 ‘유쾌한 놀이’나 ‘인터넷 밈(Meme)’의 가면을 쓰고 일상에 스며든다. 장애인을 희화화하는 표현이 유행어가 되고, 경제적 처지나 외모를 비하하는 단어를 만들어 쓴다. 심지어 역사적 비극이나 사회적 참사조차 숏폼 영상의 소스나 발표 자료의 유머 코드로 소비된다. 최근 사회적으로 파장을 일으켰던 배재고의 야구 경기 응원 구호 문제도 같은 맥락이다.

아이들은 왜 이토록 조롱에 열광하면서도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할까. 아이들은 이것을 타인을 향한 공격이 아니라, 그저 스마트폰 화면에서 본 ‘트렌디한 놀이’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문제를 제기하면 아이들은 “그냥 유행하는 밈인데 왜 그렇게 진지해지냐”며 오히려 상대방을 유난스러운 사람으로 몰아세운다. 최신 밈을 모르면 또래 집단에서 소외될지 모른다는 공포 역시 아이들을 조롱의 대열에 참여하게 만드는 원인이다. 알고리즘이 매일 배달하는 냉소적이고 자극적인 콘텐츠 속에서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뇌의 회로는 점차 둔감해지고 있다.

아이들만 손가락질할 수는 없다. 결국 아이들은 어른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정치권의 유치한 비방전, 인터넷 뉴스 댓글 창의 무차별적인 멸칭, 미디어에서 상대방을 깎아내리며 웃음을 유발하는 방식 등 우리 사회는 이미 혐오와 조롱을 능력과 위트로 포장해 왔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왜곡된 역사관을 아이들에게 주입하기 위해 쇼츠와 밈을 활용하는 어른들도 있다. 아이들은 그저 어른들이 만든 냉소주의를 놀이로 흡수해 분출하고 있을 뿐이다.

​아이들의 조롱 문화를 단순히 혼내거나 통제하는 것만으로는 이 흐름을 막을 수 없다. 이제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넘어서, 가정과 학교에서 아이들이 무심코 쓰는 언어와 밈이 어떤 맥락을 품고 있는지, 타인에게 어떤 상처를 주는지 스스로 성찰하게 만드는 ‘밈 리터러시’ 교육이 필요하다.

아이들의 가치관 형성의 가장 중요한 타자는 부모다. 가정에서 아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해보자. “요즘 친구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밈은 어떤 게 있어?”, “그 밈은 어떤 의미야? 혹시 다른 사람들을 비하하거나 조롱하는 의미는 아니니?” 이런 질문만으로도 아이들의 비판적 수용 버튼을 누를 수 있다. 학교에서는 일베가 주로 조롱하는 사회 역사적 비극의 참 의미를 정리해서 아이들에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 재미로라도 누군가를 상처 줬다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식도 심어주어야 한다.

‘재미있으면 그만’이라는 무감각한 유희의 자리에 ‘함께 아파할 줄 아는’ 공감의 렌즈를 쥐어주어야 한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품격을 세우는 일이자, 아이들이 품격 있는 어른으로 자라도록 돕는 일이다. 송광용 남산초 교사·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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