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영 전 남구의원
이소영 전 남구의원

 며칠 전,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이제는 때가 된 것 같아서요."

 그동안 꾹 참고 충분히 인내의 시간을 보냈노라며 조심스레 안부를 물었던 그분의 전화기 너머 목소리는 또 다른 색깔의 위로처럼 느껴졌다. 

 당장 건네는 위로와 시간을 두고 마음이 조금 가라앉은 뒤 찾아오는 위로는 같은 말이라도 다르게 다가온다.

 같은 사안인데도 받아들이는 마음이 다른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때', 즉 시기의 차이일 것이다. 관계의 깊이나 서로를 이해하는 방식, 각자가 가진 감정의 크기 등 다른 이유도 있을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사회복지 현장에서 일했다. 그중 정신건강 분야에서의 경험은 훗날 내가 살아가면서 내 마음과 정신건강을 돌보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예기치 않은 일이 찾아온다. 상실과 실패, 관계의 갈등처럼 미처 준비하지 못한 일이 어느 날 갑자기 삶에 들어오기도 한다. 그럴 때 사람마다 마음을 다루고 회복하는 방법은 다르다.

 누구는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누구는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어떤 사람은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충분히 멈춰 있어야 다시 움직일 수 있는 사람도 있다. 

 중요한 것은 방법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지금의 내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아는 것이다.

 이런 경험을 떠올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기애'라는 단어를 생각하게 된다. 

 자기애라고 하면 흔히 자기밖에 모르거나 자신을 지나치게 사랑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하지만 자기애가 나쁜 것은 아니다.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고 노력과 성취를 존중하며, 실패했다고 해서 자신을 부정하지 않는 마음은 건강한 삶에 필요한 힘이다.

 문제는 '나는 소중하다'는 마음이 어느 순간 '나는 특별하다'는 생각으로 바뀔 때다.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지나치면 타인의 감정보다 자신의 감정이 우선되고, 타인의 성공을 축하하기보다 자신의 위치와 비교하게 된다. 다른 의견 역시 하나의 의견이 아니라 자신을 공격하는 것 처럼 받아들이기도 한다. 이러한 모습은 권력과 결합했을 때 더욱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영화 '시민 케인'이 떠오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거대한 부와 영향력을 가진 찰스 포스터 케인은 사람들의 인정과 사랑을 원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주변 사람과 관계를 자신의 방식대로 움직이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는 멀어지기만 한다.

 이 영화는 한 사람의 성공과 몰락만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고 싶어 하지만, 그 욕구가 지나치게 커지면 타인의 마음보다 자신의 욕망을 앞세울 수 있다는 사실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을 움직이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정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정치에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자신의 생각을 시민에게 설명하고 결정을 내리며 그 결과에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감과 자기중심성은 다르다. 자신의 판단을 믿는 것과 자신의 판단만 옳다고 믿는 것 역시 다르다.

 4년간 지방의정의 현장에서 생활하고 그 자리를 떠난 지금, 한 걸음 물러나 정치현장을 바라보면서 더욱 그런 생각을 한다. 

 정치의 현장에서는 한 사람의 판단과 행동이 크게 보일 때가 있다. 자신의 성과를 설명하고 역할을 강조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하나의 결과가 만들어지기까지는 주민의 의견과 동료들의 협력,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내는 많은 사람의 노력이 있다. 그럼에도 모든 결과를 자신의 성과로만 해석한다면 어느 순간 정치의 중심에는 시민이 아니라 '나'가 놓일 수 있다.

 비판을 받아들이는 태도에서도 차이가 드러난다. 

 건강한 자기애를 가진 사람은 비판이 불편하더라도 자신이 놓친 부분을 찾아볼 수 있다. 반면 자신의 존재가 지나치게 중요해지면 비판은 성찰의 기회가 아니라 자신을 방어해야 하는 공격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정치는 결국 사람을 위한 일이다. 그래서 정치인에게 필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가'를 확인하는 마음보다 '내가 지금 누구를 위해 이 자리에 있는가'를 끊임없이 묻는 마음이 아닐까.

 정치의 중심에 '나'가 들어오는 순간 시민은 주변으로 밀려난다. 

 반대로 자신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을 때 비로소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린다. 

 어쩌면 좋은 정치란 자신을 드러내는 능력보다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힘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그 질문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래서 가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이 자리에 있는가."

  그 질문을 잊지 않는 것. 어쩌면 그것이 자기애와 자기중심성 사이에서 나를 지켜주는 가장 현실적인 기준일지도 모른다. 이소영 전 남구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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