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 편집국장·이사
김진영 편집국장·이사

 주말이면 추석 연휴다. 추석 하면 역시 보름달이다. 한 해 농사의 결실에 감사하고 가족의 안녕을 빌었던 달, 고향을 떠난 이들에게는 그리움이었고 기다림이었던 달이다. 그래서 한가위를 앞두고 울산의 지도를 펼쳐보면 유난히 눈길을 끄는 이름이 있다. 함월(含月). 말 그대로 ‘달을 품는다’는 뜻이다. 울산에는 함월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이 여럿 있지만 오늘 울산여지도가 찾아갈 곳은 남구 상개동과 선암동 일대의 함월산이다. 해발 138m에 불과한 낮은 산이다. 그러나 이 산에 올라 울산을 바라보면 오래전 사람들이 왜 이 산에 ‘달을 품는다’는 아름다운 이름을 붙였는지 금방 알게 된다.

 지금처럼 높은 건물도, 밤을 밝히는 공단의 불빛도 없었던 옛 울산을 상상해보자. 해가 지고 용연 앞바다에 둥근 달이 떠오른다. 달은 삼산들을 동쪽에서 막아선 돋질산을 지나 선암동 함월산 위에 걸린다. 달을 품었으니 함월산이다. 다시 서쪽으로 길을 재촉한 달은 남산 끝자락의 은월봉 뒤로 모습을 감춘다. 은월(隱月), ‘달이 숨는다’는 뜻이다. 달을 품은 산과 달이 숨는 봉우리. 울산 사람들은 산과 봉우리의 이름에 하늘을 건너는 달의 움직임을 새겨놓았다.

 그 달빛 아래에는 삼산들이 펼쳐져 있다. 영취산에서 뻗어온 산줄기는 함월산과 신선산을 지나 돋질산에 이르고, 또 다른 줄기는 남산을 거쳐 은월봉을 만들었다. 그 산줄기와 태화강 사이에 만들어진 비옥한 충적지가 삼산들이다. 여천천 주변에는 왕생이들이 있었고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에는 삼산염전이 있었다. 들에서는 곡식이 익고 바다에서는 소금을 얻었다. 한가위 무렵이면 황금빛으로 익어가는 들판 위로 둥근 보름달이 떠올랐다. 지금 우리가 아파트와 도로, 공장의 불빛 사이에서 바라보는 달과 전혀 다른 풍경이다. 하지만 달이 지나가는 길만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다.

 함월산에는 달빛만 머물렀던 것이 아니다. 산 정상부와 남동쪽 사면에는 함월산성의 흔적이 남아 있다. 정확한 축성 시기는 단정하기 어렵지만 산 정상에 서보면 왜 이곳에 성을 두었는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울산 도심에서 청량 덕하를 지나 온산과 서생으로 이어지는 길이 발아래 놓이고 외황강과 태화강 하구가 한눈에 들어온다. 장생포와 덕하를 연결하는 길도 이곳을 지난다. 높은 산이어서가 아니라 울산으로 들어오는 바닷길과 육지의 길을 함께 바라볼 수 있었기에 중요한 산이었다.

 실제로 임진왜란 당시 여러 고을에서 모여든 의병들이 힘을 합쳐 상개 함월에 진을 쳤다는 기록이 전한다. 실제로 오래전 산성의 흔적이 발견된 곳이 함월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함월산 아래에는 상개동유적과 선암동 끝바위유적, 두왕동 호박골유적 같은 청동기와 삼국시대 유적들이 발굴된 흔적이 있다. 바다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신라 헌강왕과 처용설화가 전해지는 개운포까지 보인다. 함월산 하나에 울산의 선사부터 근대까지 여러 겹의 시간이 포개져 있다.

 산에서 이제 사람의 길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 보자. 만나는 곳이 덕하다. 덕하라는 이름도 시간을 품고 있다. 덕정의 ‘덕’과 하정의 ‘하’를 합쳐 만든 이름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두 지역이 합쳐져 덕하리가 됐고, 1918년 면사무소가 들어서면서 청량의 행정 중심지가 됐다. 그런데 덕하라는 이름을 지금처럼 넓은 생활권의 이름으로 만든 결정적인 계기는 철도였다.

 1935년 덕하역이 생겼다. 재미있는 것은 덕하역이 덕하리에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처음부터 상남리에 있었다. 당시 청량면사무소가 덕하리에 있었기 때문에 역 이름을 덕하역이라 붙였다. 그런데 역이 생기자 사람들이 모여들고 상권이 만들어졌다. 결국 면사무소마저 상남리로 옮겨왔다. 행정구역은 상남리였지만 사람들은 역 주변까지 모두 ‘덕하’라 불렀다. 지명이 행정구역의 경계를 넘어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스스로 영역을 넓혀간 것이다.

 역 주변에는 덕하시장이 있었다. 장날이면 포목과 옹기, 곡식과 농기구, 생선과 생활용품을 짊어진 장꾼들이 몰려들었다. 농민들은 농산물과 땔나무를 내다 팔고 필요한 물건을 사서 집으로 돌아갔다. 지금도 2일과 7일이면 장이 선다. 더 흥미로운 것은 청량천과 외황강 하구에 염전이 있어 이곳의 소금과 그 소금으로 만든 두부가 유명했다는 기록이다. 그 염전이 마채다. 추석을 앞둔 장터는 그래서 풍성하다. 햅쌀과 햇곡식이 나오고 바다에서 올라온 생선과 소금이 놓이고 차례상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장터를 오갔다. 그 오래된 흔적이 지금도 덕하장에는 추억처럼 왁자한 소리로 장날을 달구고 있다.

 덕하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물길이 청량천이다. 문수산 일대에서 발원한 물길은 덕하를 지나 외황강과 만나 동해로 나간다. 하류는 개운포라 불리던 공간과 연결된다. 바로 신라 헌강왕과 처용 이야기가 시작되는 바다다. 함월산에서 바라보던 물길이 덕하의 들과 장터를 적시고 마침내 개운포와 바다에 닿는다.

 가만히 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하나의 길이 보인다. 하늘에는 달이 가는 길이 있고, 땅에는 사람이 걷는 길, 그 사이에 물이 흘러가는 길이 있다. 용연 앞바다에서 떠오른 달이 함월산에 걸리고 은월봉으로 사라지는 동안 그 아래에서는 수많은 울산 사람들이 길을 걸었다. 의병이 함월산성에 올랐고 장꾼들이 덕하장으로 향했다. 기차가 덕하역에 멈춰 사람과 물건을 내려놓았고 청량천의 물은 묵묵히 외황강으로 흘렀다. 오늘은 국도와 철도, 고속도로를 따라 자동차와 전철이 달린다. 길의 모습은 달라졌지만 울산 남쪽으로 이어지는 이 공간의 역할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번 추석에는 보름달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면 어떨까. 동해 깊은 물살을 머금고 올라온 달이 함월산에 첫 망울을 걸고, 들판과 강을 비추며 은월봉 뒤로 천천히 사라지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산은 그 자리에 있지만 산 아래 세상은 수없이 변했다. 들판은 도시가 됐고 옛길에는 철도와 자동차가 다닌다. 염전은 사라졌고 장터의 모습도 달라졌다. 그래도 함월은 여전히 ‘달을 품은 산’이고 덕하는 여전히 사람들의 삶이 모이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울산은 참 넉넉한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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