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가는 반구천은 한 폭의 수묵화였다. 물과 바위, 숲과 하늘이 어우러진 풍경 속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울산매일UTV가 매년 가을 함께하는 인문학 산책이다. 누군가는 가족의 손을 잡았고, 누군가는 친구와 함께 먼 옛날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인류가 남긴 위대한 선사미술의 현장이자 세계가 함께 지켜야 할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가을 아침 반구천을 찾은 시민들의 눈빛에는 세계유산을 품은 도시에 살고 있다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반구천은 특별한 곳이다. 태화강의 지류인 대곡천이 산과 바위를 휘감으며 흘러가는 구곡계곡에는 수천 년의 시간이 겹겹이 쌓여 있다. 그 오랜 흔적이 지난해 '반구천의 암각화'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울산의 오랜 숙원이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세계유산은 단순히 오래된 유적에 붙이는 명예로운 이름이 아니다. 인류가 함께 기억하고 미래 세대에 물려주어야 할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의미다. 울산 사람들에게 반구천은 이제 세계의 역사와 만나는 통로가 됐다.
암각화나 동굴벽화가 세계유산이 된 사례는 오래됐다. 울산의 반구대암각화가 52번째다. 가장 오래된 알타미라 동굴벽화는 지난 1879년 스페인 북부에서 발견됐다. 사냥꾼의 첫발견을 무시했던 후작 사우투올라가 어린 딸과 함게 동굴을 찾았을 때 천장에 그려진 들소 그림을 발견했다. 수만 년 전 인류가 남긴 놀라운 예술작품이었다. 하지만 당시 학계는 선사인들이 그토록 정교한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을 부정했다. 1940년 프랑스 남서부 라스코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동굴을 발견한 소년들이 어둠 속에서 마주한 것은 말과 들소, 사슴과 야생 소들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거대한 그림이었다. 약 2만 년 전 인류가 남긴 경이로운 예술이었다.
반구대암각화가 세상에 알려진 것도 우연의 연속이었다. 동네사람들은 신비로운 바위그림을 알고 있었지만 그저 오래된 문양 정도로 생각했다. 원효의 흔적을 찾아 학술조사에 나선 대학의 연구팀이 촌로의 이야기를 흘려듣지 않은 것이 기적의 출발이었다. 발견 당시는 '크리스마스의 기적'이었지만 20년 이상 방치됐다. 가치를 몰랐기에 국보지정도 늦었다. 영국의 BBC가 "인류 고래사냥의 출발은 울산"이라고 알리자 우리 문화재 당국이 움직였다. 자신의 것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몰랐던 시절이었다.
그 험난한 세월을 딛고 반구대암각화가 세계인의 보물이 됐다. 오랜 세월 물과 바람이 다듬어 놓은 암벽에는 사람과 동물, 배와 사냥 도구를 비롯한 수많은 형상이 새겨져 있다. 그 가운데 단연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고래다. 바위에 새겨진 고래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선사인들이 오랫동안 바다를 관찰하고 그 생명체의 특징을 이해한 끝에 남긴 기록이다. 오늘날 연구자들은 이 그림들에서 다양한 고래의 특징을 읽어낸다.
반구대암각화가 놀라운 것은 고래를 잡는 장면이 연결돼 있다는 사실이다. 반구대암각화에는 배에 탄 사람들이 고래를 탐색하고 작살로 찔러 인양하고 끌고와 해체하는 과정이 새겨져 있다. 연구자들은 이를 선사시대 포경 활동을 보여주는 중요한 시각 자료로 평가한다. 거대한 고래를 상대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바다의 흐름을 읽어야 했고, 고래가 움직이는 길을 알아야 했으며, 여러 사람이 힘을 모아야 했다. 한 마리의 고래를 잡기 위해서는 오랜 경험과 공동체의 협력이 필요했다. 놀랍게도 공동의 선단을 꾸려 한마리의 고래를 사냥하는 장면도 새겨져 있다. 바로 그 장면 때문에 반구대암각화는 단순한 사냥의 기록을 넘어 당시 사람들이 자연을 이해하고 함께 살아갔던 방식까지 상상하게 만든다.
반구대암각화가 더욱 특별한 이유는 그 그림들이 바다가 아닌 내륙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반구천에서 동해까지는 적지 않은 거리가 있다. 그러나 선사시대에도 그랬을까. 1만년전 울산은 달랐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이 지금보다 휠씬 상류쪽으로로 올라와 있었다. 태화강 수계는 내륙과 해안을 이어주는 자연의 길이었다. 울산의 신석기시대 유적에서 확인되는 해양생활의 흔적은 이 지역 사람들이 일찍부터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았음을 보여준다. 반구대암각화는 그 세계를 바위 위에 펼쳐 놓은 거대한 기록장이다.
울산에서 고래는 특별하다. 장생포에는 근대 포경산업의 역사가 남아 있기에 오늘날에도 고래는 울산을 상징하는 문화적 자산이다. 반구대암각화의 선사시대 포경과 장생포의 근대 포경산업 사이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긴 시간의 공백이 있다. 그러나 수천 년 전 바위에 고래를 새긴 사람들과 오늘날 고래를 도시의 상징으로 기억하는 울산 사람들 사이에는 묘한 울림이 있다. 고래라는 생명체가 시대를 달리하면서도 울산의 자연과 문화 속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는 사실이다. 그것만으로도 반구대는 울산의 정체성을 되돌아보게 하는 특별한 장소다.
이날 반구천을 찾은 300여 명의 인문학 산책 참가자들에게도 그런 감동이 전해졌다. 3개조로 나눠 현장을 탐방한 사람들에게 암각화와 선사인의 이야기를 들려줄 때마다 모두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차단막을 열고 가장 가까운 거리까지 내려가 반구대암각화를 마주했을 때 사람들은 탄성을 질렀다. 세계유산은 책이나 사진으로 만날 때와 현장에서 직접 바라볼 때의 느낌이 완전히 달라지는 순간이었다.
세계유산을 가진 도시의 자부심은 단순히 유네스코의 이름을 얻었다는 데서 완성되지 않는다. 그 유산이 왜 위대한지 알고, 그 안에 담긴 인류의 이야기를 이해하며, 온전히 지켜 후손에게 물려주려는 마음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반구대암각화는 오랫동안 보존과 물 관리 문제를 둘러싼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세계유산 등재는 그 논쟁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책임의 시작이다. 이제 울산은 세계가 인정한 유산의 도시라는 명예에 걸맞은 보존과 관리의 지혜를 보여주어야 한다.
주말 많은 시민들이 반구천을 찾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계인의 보물이 된 울산의 문화유산을 지키는 가장 튼튼한 울타리는 결국 그 가치를 이해하는 시민들이기 때문이다. 이날 현장에서 필자에 던지 참가자들의 질문 하나하나에는 바로 그 애정의 끈끈함이 묻어 있었다. 1만년의 세월은 흘렀지만 선사인들이 남긴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이날 반구천을 찾은 300여 명의 발걸음은 단순한 가을 나들이가 아니었다. 인류의 오래된 기억을 찾아가는 발걸음 이었고, 세계유산을 품은 울산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