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십수년 전만 해도 이 길은 매연을 내뿜은 2층 버스와 승용차가 꼬리를 물고 늘어서 옴짝달싹 못하는 시드니 최고의 교통지옥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곳은 엔진 소음 대신 카페 테라스에서 나뉘는 시민들의 대화 소리와 버스킹 음악이 흘러넘치는 보행자 천국으로 완벽히 탈바꿈해 있었다.
L1,L2,L3 촘촘한 철길망...시드니 동서남북 잇는 역할
시드니의 라이트 레일 체계는 단순한 도심 단일 노선에 그치지 않는다.
기존에 운행되던 L1 덜위치힐선(Dulwich Hill Line)에 도심 라이트 레일 사업으로 구축된 L2 랜드윅 선(Randwick Line)과 L3 킹스포드 선(Kingsford Line)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거대한 교통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L1은 중앙역에서 출발해 시드니 서부 내륙 주거지인 덜위치힐까지 13㎞를 연결하며 서부 외곽 주민들의 도심 진입을 담당하고 있다.
L3은 서큘러 키부터 무어파크까지 L2 노선과 핵심 도심 구간을 같이 운행한 후 동남부 주거지역과 상권 중심지인 킹스포드로 갈라져 나간다.
도심구간에서는 L2, L3 트램이 번갈아 다녀 4분 간격으로 배차가 이뤄진다.
주요 정거장에서 기차, 페리, 버스와 환승되는 구조 덕분에 시드니 서부와 동부, 남부의 승객들이 자연스럽게 도심과 이어지고 있었다.
뉴사우스웨일스 교통부(Transport for NSW)의 최신 교통 통계에 따르면 시드니 라이트레일(L1·L2·L3)의 하루 평균 승객수는 11만명을 웃돈다.
특히 도심과 대학, 병원을 잇는 L2·L3 노선에서만 하루 9만명 가까운 인원을 수송하며, 승용차 이용을 줄이고 대중교통 전환을 이끄는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뉴사우스웨일스대(UNSW) 재학생 윌리엄 브라운(William Brown, 22) 씨는 “서큘러 키나 중앙역에서 트램을 타면 캠퍼스와 랜드윅 병원 지구까지 한번에 이어져서 편하다. 지하철처럼 계단을 오르내릴 필요 없이 도로 위에서 바로 승하차할 수 있어 정말 편리하다. 학생 뿐만 아니라 통근자, 관광객들로 늘 북적이는 이유다”라고 설명했다.
“많이 타도 일정 금액 이상 무제한 무료”...시민 사로잡은 요금 정책
라이트레일과 버스의 성인 기본 요금은 이동 거리에 따라 피크 시간대 기준 △0~3㎞ 3.3$(호주달러 기준 약 3,080원) △3~8㎞ 4.25$(약 3,970원) △8㎞ 이상 5.30$(약 4,950원)으로 책정돼있다.
특히 출퇴근 혼잡시간을 제외한 비피크(off Peak) 시간대에는 30% 할인이 적용돼 약 2,000원대의 부담없는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다.
무엇보다 시만들의 호평을 받는 것은 요금 캡 제도다. 하루동안 버스, 기차, 페리, 라이트 레일(트램) 등 대중교통을 몇 번을 이용하든 평일은 최대 19.30$(약 1만8,000원), 주말과 공휴일은 하루 최대 9.65$(약 9,000원)까지만 부과되고 그 이후 이용은 전액 무료다. 주간 상한선 역시 50$(약 4만6,650원)로 제한된다.
여기에 하차 후 60분 이내 다른 수단으로 환승할 경우 2$(약 1,860원) 할인 혜택까지 제공돼 승용차 유류비와 도심 주차비를 감당해야 하는 시민들에게 대중교통 이동 유인을 제공하고 있었다.
공사 불편 딛고 보행자 중심 도심으로 거듭나
2015년 L2, L3 노선 착공 당시 도심 한복판의 도로를 파헤치는 굴착 공사가 시작되자 도심은 극심한 마비 상태에 빠졌다. 100년이 넘은 고도 지하의 미확인 매설물 이설 작업이 지연되면서 당초 예산을 훌쩍 넘어섰고, 공기 지연으로 상권 발길이 끊긴 소상공인들의 대규모 손해배상 소송전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개통 후 시드니시와 뉴사우스웨일스(NSW) 주정부의 과감한 차도 축소, 보행로 확대 정책은 빛을 발했다. 도심 중심축 2.6㎞ 구간에서 승용차 통행을 제한하고, 철로 양옆을 보행자 전용길로 내어주자 도심 상권은 오히려 이전보다 활기를 되찾았다.
트램 정류장에서 만난 써리힐스 주민 올리비아 테일러(Olivia Taylor, 34) 씨는 “과거 조지 스트리트는 버스와 승용차가 엉켜 매연과 소음이 지독했던 곳이었다”라며 “트램이 들어선 뒤 도로가 쾌적한 보행자길로 변했고, 출퇴근 시간 정체도 사라졌다. 일일요금 상한제 덕분에 부담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배차 간격이 4분 정도로 짧고 제시간에 오니 이젠 도심에 나올 때 승용차를 아예 집에 두고 다닌다”라고 말했다.
울산 트램, 시드니 라이트 레일 사례 주목해야
하지만 울산시가 추진 중인 트램 1호선 역시 삼산로와 문수로라는 도시의 가장 핵심 교통망을 건드리는 사업인 만큼 시드니의 사례는 단순한 우려를 넘어 확실한 이정표를 제시한다.
차도를 줄이더라도 보행환경을 대폭 개선하고, 주요 상권과 대학, 병원, 환승 거점을 하나의 철길망으로 완벽히 엮어내며 환승, 요금 혜택을 시너지화 한다면 트램은 도시 전체의 가치를 바꿀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뉴사우스웨일스주 교통부 대변인은 “시드니 라이트레일 프로젝트는 민관협력사업(PPP)로 추진돼 초기 공사 진통을 극복하고 시드니 대중교통의 패러다임을 바꾼 핵심 역작”이라며 “단순히 새로운 교통수단을 하나 더한 것이 아니라 사람 중심의 정체성을 가진 도심 공간으로 재생해낸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시드니 교통부 “트램은 교통수단 넘어 도시재생의 동력”
△시드니 CBD 및 동남부 경전철(L2·L3) 프로젝트는 어떤 방식으로 추진됐나?
―뉴사우스웨일스주 정부와 악시오나(ACCIONA) 등이 참여한 알트랙(ALTRAC) 컨소시엄 간의 민관협력사업(PPP) 방식으로 진행됐다. 12㎞의 이중 궤도 노선 설계 및 건설은 물론 운영과 유지보수까지 아우르는 프로젝트였다. 기존 13㎞인 L1 노선 인프라와 신규 25㎞ 구간을 성공적으로 연계해 시드니 장기 교통 마스터플랜의 핵심 축을 완성했다.
△ 공사 과정에서 소상공인과 지역 사회의 반발 등 진통이 적지 않았는데, 어떻게 관리했나?
―도심 한복판을 관통하는 대규모 공사였던 만큼 주정부는 기업과 지역 사회, 지방 정부와 긴밀하게 소통했다. 공사로 인한 영향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리고, 상권 활성화(Activations)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 비즈니스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신뢰를 쌓아왔다.
△ L2(랜드윅 선)와 L3(킹스포드 선) 개통 이후 시드니 대중교통 체계가 거둔 실질적 성과는 무엇인가?
―2019년 12월 L2 노선과 2020년 4월 L3 노선이 차례로 개통된 이후, 시드니 CBD와 서큘러 키, 스포츠·레저·의료 중심지를 잇는 19개 정거장이 핵심 교통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1편성당 최대 450명(일반 버스 9대 분량)을 수송하며 출퇴근 시간대(오전 7시~오후 7시) 4분 간격(일부 구간 8분 간격)으로 촘촘히 운행된다. 이를 통해 교통 체증을 눈에 띄게 완화하고, UNSW 대학 및 주요 병원 의료지구로의 접근성을 혁신적으로 높였다.
△ 트램 도입이 시드니의 도시 공간에 남긴 가장 큰 의미는 무엇인가?
―경전철은 전 세계적으로 도시 재생(Urban Renewal)을 이끄는 강력한 드라이버다. 조지 스트리트의 보행자 전용 구역화는 승용차 중심이었던 도심을 사람 중심의 환경으로 완전히 탈바꿈시킨 대표적 사례다. 버스, 기차, 페리와 완벽히 연계되는 깨끗하고 조용한 교통망을 통해 시민들에게 더 즐거운 도심 경험과 지속 가능한 미래를 선사하고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