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특수학교에서 근무하는 중등 특수교사다. 일반 중등교사들처럼 표시과목이 있지만 그 과목으로 수업할 일은 거의 없다.
올해 나는 중학교 미술, 과학, 사회 세 과목을 맡아 가르치고 있는데 아무래도 전공이 아니다 보니 어려운 점이 많다. 이십 년 서당 개의 풍월로 기본 없이 응용을 해야 하는 형편이랄까.
그중 제일 수업하기 나은 과목은 '미술'이다. 평생을 꽝손으로 살아왔지만 굳이 뭔가를 잘하지 않더라도 아이들에게 다양한 세상을 열어 보인다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상당히 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성취기준이나 활동 목표까지 전부 고려해서 말이다. 지금은 '아름다움의 원리'라는 단원을 공부하고 있는데 빛과 색, 선과 형, 점·선·면, 평면과 입체 등의 내용을 다룬다.
클레이를 섞어가며 색상환을 만든다든지, 야요이의 <호박>에서 점을, 피카소의 선화에서 선을, 마티스의 <달팽이>에서 면을 찾아보고 작품을 따라 해 보는 등의 활동은 아이들이 무척 즐거워한다.
똑같지 않으면 어떤가. 거장의 작품들도 사실은 우리의 작은 일상들을, 재밌고 슬프고 조금은 이상한 하루하루들을 관찰해서 표현해 낸 것뿐이지 않나.
그렇지만 내가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을 과연 제대로 가르치고 있나 싶은 의문이 들 때는 종종 있다. 그럴 때면 나의 미술 선생님들을 떠올린다. 무얼 배웠더라. 어떻게 하셨더라. 사실 기억이 잘 나진 않는다. 지식적인 측면은 특히 더. 다만 내 중학교 때의 미술 선생님을 떠올리면 당신의 삶 또는 예술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암묵적인 가르침만은 선명하게 떠오른다.
선생님은 교사이자 작가셨다. 지금 돌아보면 교사에서는 꽤 멀고 작가에서는 1cm도 안 떨어져 계셨던 것 같다. 미술실에서 작품 앞에 서 계시던 뒷모습, 여긴 내 영역이니 건드리지 말라는 느낌을 팍팍 풍기시던 그 에너지가 여전히 또렷하다. 자신의 세계를 열렬하게 가꾸는 그 삶이 사춘기의 내게 얼마나 멋있게 보였을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선생님은 여러 해 전에 명예퇴직을 하시고 지금은 타지에 계신다. 지난여름, 계신 곳의 군립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여신다 하여 다녀온 적이 있다. 자그마한 군립미술관의 따뜻함과 학예사님의 친절한 설명이 선생님의 작품을 하나하나 감싸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새벽 기차를 타고 갔다가 야간 시외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그 멋진 인생을 볼 수 있어서 그저 좋았다.
차창에 기대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이 울산에 계셨을 땐 왜 시립미술관 같은 데서 전시를 하지 않으셨던 걸까. 내 안목은 별로 믿을 게 못 돼도 평생을 예술에 바친 선생님의 열정 어린 작품은 믿을 수 있을 텐데. 비단 선생님만의 얘긴 아니지 싶다. 울산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계신 많은 작가들의 작품도 시립미술관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지니 말이다.
홈페이지를 열어 확인하니 울산시립미술관에서는 현대 트랜스로컬 시리즈, 이중섭 전시 등을 하고 있고 울산광역시 승격 30주년 기념전도 준비 중이라고 한다.
현대미술의 흐름을 경험하는 전시, 유명 작가의 작품을 만나는 전시, 지역의 역사와 산업을 돌아보는 전시 등 시립미술관에서 이 정도의 문화적 경험을 시민들에게 제공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고 아주 귀한 역할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 지역에 뿌리내리고 활동하는 지역 작가들의 작품도 시립미술관에서 자주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들의 손을 잡고 미술관으로 현장체험학습을 가서 "잘 봐, 이 작품은 선생님의 선생님 작품이다. 그 선생님은 말이지,"로 시작하는 말이나 "이 작품 만드신 작가님, 선생님 옆 동네 살거든. 뵌 적이 있어."로 시작하는 설명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기 지난주에 갔던 거기잖아, 알아보겠어?" 같은 말도.
꽝손일지언정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나를 키워주신 미술 선생님의 단단한 등을 생각한다. 시립미술관도 없고 작은 갤러리도 드물었던 시절 나의 미술관이었다.
예술이 밤하늘 먼 별처럼 아득한 것이 아니라 일상 아주 가까운 곳에서 숨 쉬는 것처럼 이어져 있다는 것을 우리 아이들도 느끼며 자라나면 참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