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학 전 울산과학대학교 교수·관광학 박사
이정학 전 울산과학대학교 교수·관광학 박사

1995년 본격적인 지방자치제 시행 이후 대한민국의 지역축제는 무려 1,000여 개에 달하는 대(大)축제의 시대를 맞이했다. 그러나 이러한 외형적 성장 뒤에는 선거철 표심을 의식한 단기성 행정과 타 지역 축제를 무분별하게 베낀 복사품들이 난립하며, 주민과 관광객 모두에게 피로감을 안기는 고질적 병폐를 낳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수많은 축제 속에서 정작 ‘축제의 고유성’이 실종되었다는 점이다. 프로그램들이 서로 차별화되지 못하고 천편일률적인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축제의 고유성(Authenticity)이란 해당 지역과 공동체만의 역사, 전통, 문화적 특색이 콘텐츠와 운영 전반에 깊이 녹아들어 타 축제와 차별화되는 근본적인 성격을 뜻한다. 이는 단순히 옛것을 박제하듯 고증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 땅이 거쳐온 역사성과 지역성을 뼈대로 삼고, 현재를 살아가는 주민들의 일상을 거울처럼 비추며, 축제의 주제와 프로그램이 하나의 거대한 서사로 정교하게 맞물릴 때 비로소 진정한 고유성이 확보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울산공업축제의 발자취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축소판이자 축제가 나아가야 할 고유성의 본질을 품고 있다. 1967년 대한민국 최초의 특정공업지구 지정과 공업탑 준공을 기념하며 출발한 이 축제는, 산업화의 최전선에서 땀 흘린 노동자와 시민의 노고를 위로하던 뜨거운 가무의 장이었다. 비록 시대의 그늘이었던 공해 이미지와 관제 동원 논란으로 중단과 명칭 변경이라는 모진 아픔을 겪었으나, 민선 8기 들어 ‘산업수도의 자부심을 되살리자’며 35년 만에 극적으로 부활했다. 그러나 민선 9기 출범과 함께 축제는 2026년 가을을 끝으로 또다시 존폐의 갈림길에 서는 가혹한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다.

지자체장이 바뀔 때마다 전임자의 흔적을 지우듯 축제 간판을 바꾸는 정치적 관행은 명백한 행정 낭비다. 수십억 원의 예산을 쏟아부으면서도 타 지역과 차별화되지 않는 기성품 같은 프로그램으로 시민의 호응을 얻지 못한다면 존속 명분 또한 빈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본질은 축제를 오직 경제적 수치로만 재단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축제는 지역 소상공인의 생계를 살리는 경제적 상생의 고리이자, 파편화된 현대인에게 공동체 의식을 심어주는 사회·문화적 용광로이다. 나아가 과거 공해를 연상시키던 회색빛 편견을 깨고, 활력 넘치는 미래형 공업 도시로서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도시 브랜딩의 핵심 수단이기 때문이다.

최근 필자가 참여했던 전문가 간담회에서 도출된 지혜는 울산공업축제가 나아가야 할 명확한 이정표를 제시한다. 외지 전문가들의 눈에 ‘공업’이라는 단어는 오직 울산만이 독점할 수 있는 가장 독보적이고 차별화된 브랜드 자산이었다. 따라서 과거 실패했던 처용문화제로의 후퇴는 결코 대안이 될 수 없으며, 예산의 재정적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전면 쇄신해야 한다. 가령 매년 ‘자동차’, ‘선박’ 등 울산을 키워낸 핵심 산업을 로테이션 테마로 설정해 정교한 스토리텔링을 입힌다면, 소비자의 욕구를 지속해서 자극하는 독창적인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울산공업축제는 단절 없이 지속되어야 한다. 힘겨운 노동의 역사를 거쳐온 울산에게 이 축제는 도시의 고유성과 정신적 뿌리를 전승할 유일무이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각 구·군별로 개최되는 축제만으로는 110만 울산 시민 전체를 하나로 아우르는 대통합의 장을 만들기에는 한계가 있다. 모두가 한마당으로 어우러질 대통합 축제의 해답은 현재 공업축제에 있다.

만약 공업축제를 대체할 더 나은 대안이 있다면 그것 역시 환영할 일이다. 다만 우리가 선택해야 할 길은 울산의 산업 역사를 일궈낸 노동자와 시민의 고귀한 서사를 후대에 영원히 전승할 지속가능한 ‘진짜 축제’여야 한다. 이제는 축제의 내실과 고유성을 채울 지혜를 모으는 울산의 담대한 선택이 필요한 시간이다.

이정학 전 울산과학대학교 교수·관광학 박사

저작권자 © 울산매일 - 울산최초, 최고의 조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