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으로 위장한 채 이동하는 모습은 민족 전쟁을 겪고 분단국가로 여전히 휴전 상태인 한국 현실을 꼬집고 있다. 평소에는 평화롭고 안온해 보이지만 언제나 전쟁의 불안을 내재하고 있는 한국의 이중적인 사회상을 암시한다. (이용백 작가 '엔젤-솔저')

# 도자기 명장들에 의해 가차 없이 깨진 도자 조각들을 이어 붙이고, 화려한 금박을 입혀서 전혀 다른 형상으로 탄생시키는 과정은, 치유의 과정으로 다시 태어나는 파괴와 재생, 죽음과 부활의 순환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이수경 작가 '번역된 도자기')

울산시립미술관이 3일 개막한 기획전 '낯선 코드'는 제목처럼 현대 사회를 이루는 익숙한 코드들 속에 숨어 있던 낯섦을 꺼내 보인다. 이번 전시는 개관 이후 세 번째 소장품전으로, 미디어 기술과 예술이 융합된 동시대 미술의 패러다임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자리다.
울산시립미술관 소장품 7점을 포함해, 국내외 주요 기관의 대표적인 동시대 미술작품 16점을 펼쳤다.
전시는 동시대를 바라보는 현대미술 작가들의 시선을 통해 현대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시각예술로 조망해 볼 수 있는 자리였다.
전시는 인간, 사회, 기술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나의 프리즘 △현실을 마주한 예술적 메시지 △현실을 마주하는 예술적 사유 △경계를 넘는 하이브리드 △가상의 이야기 등 다섯 개의 섹션으로 구성됐다. 섹션마다 현대사회를 바라보는 작가들의 예리한 시선이 녹아들어, 관람객은 각기 다른 질문 앞에 서게 된다.
특히 이번에 처음으로 선보이는 울산시립미술관의 소장품 서도호의 '유니폼/들:자화상/들:나의 39년'(패브릭 등)은 한국 사회에서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소개할 때 지역, 경제적 지위, 지적 수준 등을 암묵적으로 드러내는 지표가 되지만 유니폼을 벗어난 이후의 삶에서는 '어떻게 자기 증명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송민정의 '야생종'(단채널 영상)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가상과 실재, 도시공간과 망망대해를 교차시키며 데이터화된 사회에서 인간의 죽음이 갖는 의미와 개인의 다중적 '신체'가 존재하는 방식을 재인식하게 만든다. 권하윤의 '구보, 경성방랑'(가상현실 설치)은 소설 속 구보 씨가 도시를 방랑했듯 관람자들은 VR 기기를 통해 그림으로 만들어진 1920년대 경성을 직접 거닐 수 있다. 축음기에 가까이 가면 소리가 나고, 전차에 올라타면 실제로 이동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가상현실을 통해 관람자들은 당시 시대상을 관찰자의 입장으로 경험할 수 있으며, 구보씨의 이야기와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을 동시에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국내 작가들뿐 아니라 히토 슈타이얼, AES+F, 세자드 다우드 등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작가들의 작품도 함께 소개됐다. 작품들은 인간, 사회, 기술이라는 전시의 키워드를 따라가며, 현대미술이 단순한 시각적 표현을 넘어 복합적 현실을 해석하고 재구성하는 언어임을 증명한다.
이번 전시는 관람객에게 쉽지 않은 질문들을 던진다. 그러나 이 질문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과, 너무 익숙해 무심코 지나친 사회의 단면을 다시 보게 한다.
이정란 학예사는 "어려우나 다양한 이야기가 있는 현대미술을 통해, 현대사회를 살고 있는 일상과 익숙함 뒤에 가려진 단면을 마주할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낯선 코드' 전은 오는 11월 2일까지 울산시립미술관 지하 2층 제1전시실에서 열린다.
고은정 기자 kowriter1@iusm.co.kr
주목, 이 작품!
현실·가상 교차 감각적 몰입 선사 AR 작품 '무릉도원'

미술관 내 선큰가든에서는 증강현실(AR) 작품 '무릉도원'이 설치돼, 현실과 가상이 교차하는 감각적 몰입의 경험을 관람객에게 선사한다.
프로젝트 그룹 창, BEYOND는 선큰가든에서 올려다본 하늘에서 영감을 받아 작품을 제작했다. 하늘 가장자리에 조각처럼 흩어진 구름이 선큰가든으로 내려오면서 점차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사라지게 되었을 때, 바로 그 지점에서 '무릉도원'이 시작된다. 지면 아래에 펼쳐진 정원과 계단을 통해 맞닿는 하늘은 동양 회화 속 이상향인 무릉도원의 풍경을 현실 공간 위에 겹쳐 놓는다.
관객은 스마트 기기를 매개로 하늘 가장자리의 조각구름이 내려와 나타났다가 사라지며 흐르는 장면을 목격하고 경험한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사라진 순간, 선큰가든은 기가 순환하는 무형의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고, 관람객은 '낯선 코드'의 탐험자가 되어 익숙한 세상을 새롭게 읽어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