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덜란드 로테르담 외곽, 세계 최대 유리온실 밀집지역인 웨스트란트(Westland)에 자리한 월드호티센터(WHC)는 시설원예 분야의 교육·연구·기업 협력을 한곳에 모은 캠퍼스다. 직업교육기관 MBO Westland, 연구기관 Vertify, WHC Expo, 베스트란트 지방정부가 함께 참여한다. 약 1,200명의 학생이 이곳에서 직업교육을 받으며, Vertify는 39개 실험구획으로 구성된 연구용 온실을 운영한다.
취재팀을 맞은 퍽 반 홀스테인(Puck van Holsteijn) WHC CEO는 센터 중앙부를 가리키며 기업·교육·연구·정부가 한 공간에서 문제를 중심으로 사람과 기관을 연결하는 구조를 강조했다. “한 지붕 아래에서 네 개의 서로 다른 세계가 매일 숨 쉬며 융합되는 생태계”라는 설명이다. 건물은 직업교육 공간-중앙 기업 참여 공간-상층 연구개발 구역으로 구성된다.
분홍색 파빌리온이 눈에 띄는 WHC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만난 공간은 ‘블랙박스’ 영상관이었다. 토마토를 노지와 온실, 수직농장에서 재배할 때 공간과 물, 에너지 사용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여주는 영상이 흘렀다.
홀스테인 CEO는 “거의 모든 방문객에게 이 영상을 보여준다”라고 말했다.
‘아이그로(I-Grow)’ 전시관은 재배 방식에 따른 생산성과 자원 이용의 차이를 소개한다. 원예산업을 물 부족과 식량 공급, 기술혁신이라는 문제와 연결해 이해하도록 돕는 공간이다.


#과제 중심으로 이해관계자를 연결하다
홀스테인 CEO가 건물의 한쪽을 가리키며 직업교육 공간을 설명한 뒤, 중앙부와 위층의 기업 참여 공간, 연구개발 구역을 차례로 소개했다. 기업 파트너는 약 130곳. 종자부터 재배 기술과 장비, 온실 건설까지 원예산업의 여러 단계를 담당하는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었다. 스타트업과 대기업이 함께한다고 했다.
이들을 연결하는 기준은 원예산업이 해결해야 할 구체적인 과제다. 물 부족이 문제로 떠오르면 관련 기술을 가진 기업과 연구를 맡을 대학, 프로젝트에 참여할 학생을 찾아 연결하는 식이다.
홀스테인 CEO는 “특정 주제에 집중하고, 그 과제를 함께 풀 이해관계자들을 연결한다”라고 설명했다.
교육기관은 산업현장의 문제를 수업과 연구에 반영하고, 기업은 필요한 지식과 인재를 만날 수 있다. WHC는 그 사이에서 협력 상대를 찾고 공동 프로젝트를 구성하는 역할을 한다. 로봇과 인공지능(AI) 역시 온실에서 작물을 재배하고 노동력 문제에 대응하는 기술로 다뤄지고 있었다.
WHC 자체가 정원박람회의 사후시설은 아니다. 하지만 취재팀이 2028 울산국제정원박람회 이후 남길 기능을 묻자, 홀스테인 CEO는 WHC를 그대로 옮겨오는 대신 교육·체험에서 출발해 단계적으로 기능을 확대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한국·중국 거점, 그러나 검증은 별개
한국과의 협력도 이런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경상북도와 WHC, 경북대학교, 렌티즈교육그룹은 2021년 업무협약을 맺었다. 이어 2023년 1월 경북대 상주캠퍼스에 세계원예센터 한국사무소가 문을 열었다.
홀스테인 CEO는 이 협력이 여전히 진행형이라고 말했다. 한국과 네덜란드 양쪽을 오가며 교육을 진행하고, 직접 상주를 찾아 강의와 국제심포지엄을 열기도 한다는 것이다. 인터뷰 약 2주 전 네덜란드 원예기술박람회 ‘그린테크’ 기간에는 한국 방문단 약 18명을 현지 기업들과 연결했다고 밝혔다. 학생과 인재 교류에 더해 양국 기업들이 서로의 기술과 수요를 확인하도록 돕는 것이다. 다만 이런 만남이 실제 계약이나 기술 도입으로 얼마나 이어졌는지는 별도 확인이 필요하다.
WHC의 해외 진출 방식은 지역마다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한국이 사무소 형태라면, 중국은 좀 더 체험 중심이다. 2025년 2월 문을 연 산둥성 지난 거점은 사무·교육 공간은 물론 물 관리와 지속가능한 식량 생산을 주제로 한 전시 공간까지 갖췄다.
흥미로운 점은 이 거점이 네덜란드 본부의 전시 형식을 그대로 가져오되, 그 안에 중국 현지 작물을 채워 넣었다는 것이다.
홀스테인 CEO는 이를 두고 세계무역센터(WTC)의 운영 방식에 비유했다. 해외 파트너가 연간 사용료를 내면 WHC는 이름 사용권과 프로그램 개발을 지원하는, 일종의 라이선스 모델이라는 설명이다.

#울산에는 “체험센터부터 집중하라”
울산이 처음부터 WHC와 같은 교육·연구·기업 복합 거점을 구축할 필요는 없다는 게 그의 조언이었다. 원예산업 기반이 상대적으로 약한 만큼 먼저 시민이 원예와 기술을 이해할 수 있는 체험·교육 기능에서 출발하라는 것이다.
첫 단계로는 아이그로와 같은 주제 전시공간을 조성해 박람회 이후 어린이 교육과 유료 해설 프로그램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원예산업에 익숙하지 않은 지역에서는 주민이 먼저 산업의 역할과 기술을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 출발점이라는 설명이다.
그가 사례로 든 ‘호티익스플로러스’는 단순 견학 프로그램이 아니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관련 내용을 배우고 센터에서 작물과 생물학적 방제 등을 체험한 뒤, 다시 학교로 돌아가 결과물을 만드는 구조다. 울산 역시 박람회장을 한 번 방문하는 체험시설이 아니라 학교 교육과 현장을 연결하는 상설 프로그램으로 남길 수 있다는 것이다.


#재원은 “매우 어려운 비즈니스 모델”
운영 재원에 대한 답변은 신중했다. 장기적으로 수익을 내며 캠퍼스를 유지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홀스테인 CEO는 “캠퍼스는 매우 어려운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말했다.
그가 제시한 수입원은 기업 파트너의 연회비, 입주 사무실 임대료, 행사장 사용료, 유료 투어였다. 기업이 계속 참여하고 공간을 이용해야 반복적인 수입이 생기는 구조다. 그는 장기적으로 협력할 기업을 확보하는 것과 함께 공공기관을 캠퍼스 운영에 연결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수입원별 비중과 연간 운영비, 공공재원 부담 규모는 확인되지 않아 WHC를 재정적으로 자립한 모델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WHC의 사례가 울산에 던지는 질문은 결국 건물의 형태보다 운영구조다. 박람회가 끝난 뒤 남길 시설마다 누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어떤 학교와 기업이 반복적으로 이용하며, 관리비와 콘텐츠 갱신비를 누가 부담할지를 개최 전에 정해야 한다. 전국 순회형 K-BUGA를 추진한다면 울산이 각 개최도시에 활용할 교육 프로그램과 기업 교류 콘텐츠를 개발·축적하는 상설 거점이 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정원 만들고 끝이 아니었다…주민을 ‘관리자’로 만든 블린더호프
WHC가 기업과 교육기관을 붙잡아 두는 구조를 보여줬다면 블린더호프는 주민을 정원에 붙잡아 두는 방법을 보여준다. 방식은 달라도 공통점은 하나다. 행사나 조성이 끝난 뒤에도 공간을 계속 사용할 ‘사람’을 먼저 만들었다는 것이다.
네덜란드를 떠나기전 피트 아우돌프의 또 다른 정원을 찾아갔다.
위트레흐트 외곽 막시마 공원(90만 평) 한편에 자리한 ‘블린더호프(나비 정원)’는 축구장 하나(약 7,140㎡)보다도 작은 5,000㎡(약 1,500평) 규모다.
아우돌프가 설계한 이 정원은 너도밤나무 생울타리로 둘러싸인 아늑한 ‘월드 가든’ 형태를 띠며, 매트릭스 식재 기법이 좁은 면적 안에서 오히려 더 극적인 밀도로 다가온다. 굽이치는 오솔길을 걸으면 실제 면적보다 몇 배는 넓게 느껴지는 공간적 착시가 일어난다.

더 인상적인 것은 운영 방식이다. 2014년 지역 주민 마르크 키커르트(Marc Kikkert)를 비롯한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발의해 아우돌프를 직접 설득하고, 크라우드펀딩으로 기금을 모아 조성했다. 현재는 약 40명의 주민 자원봉사자 모임(Stichting Vlinderhof)이 관청 예산이나 전문 용역 없이 순번을 정해 정원을 가꾼다. 매표소도 경비원도 없다.
겨울철 관리 방식도 눈에 띈다. 대다수 지자체 공원과 달리 시든 줄기와 씨방을 잘라내지 않고 그대로 둔다. 마른 풀잎이 만드는 조형미와 곤충·새들의 겨울 안식처를 정원의 완성으로 보기 때문이다.

블린더호프가 울산에 주는 시사점은 규모가 아니라 운영 방식이다. 태화강 아우돌프 정원이 공공 주도로 조성됐다면 블린더호프는 주민이 조성과 관리의 주체가 됐다. WHC가 교육기관과 기업을 지속적으로 공간에 참여시키는 구조를 보여줬다면 블린더호프는 주민을 관리 주체로 끌어들이는 또 다른 방법을 보여준다. 결국 박람회 이후 남겨야 할 것은 시설만이 아니라 그 공간을 계속 이용하고 돌볼 사람과 조직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