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빌딩 숲 사이의 ‘도시 무대’를 연상시키는 2026 서울국제정원박람회가 열리고 있는 서울숲. 이수화 기자
거대한 빌딩 숲 사이의 ‘도시 무대’를 연상시키는 2026 서울국제정원박람회가 열리고 있는 서울숲. 이수화 기자
#서울숲이라는 거대한 도시 무대

지난 6월 하순 찾은 서울숲. ‘2026 서울국제정원박람회’가 열리고 있는 이곳은 울타리가 없어 공원이라기보다 거대한 ‘도시 무대’처럼 다가왔다.

지하철역에서 쏟아져 나온 관람객들은 군마상과 넓은 잔디마당, 옛 경주로와 호숫가로 자연스럽게 흩어졌다. 성수동의 힙한 골목을 찾은 청년층, 나무 그늘을 찾은 가족, 식재와 구조물을 유심히 살피는 정원사들이 한데 어우러져 공간의 경계를 허물고 있었다.

김영민 총감독(서울시립대 교수) 체제로 꾸려진 이번 박람회가 내건 ‘그린 컬처(Green Culture)’는 적어도 집객과 정원문화의 저변 확장이라는 잣대에서는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개장 63일 만에 누적 관람객 600만 명을 돌파했고, 하루 평균 10만 명에 육박하는 인파가 몰려들었다. 기업과 기관이 조성한 기부정원 역시 2024년 9곳, 2025년 30곳에서 올해 50곳, 약 3만3,000㎡ 규모로 크게 늘어났다.

서울형 박람회는 한 장소에 정원을 영구히 쌓아두는 대신 서울숲과 성수 상권, 대중교통 등 기존 도시 인프라를 정원과 결합하는 대도시형 모델이다. 접근성과 야간 콘텐츠, 기업 참여와 집객력에서 순천과는 결이 달랐다.

2026 서울국제정원박람회가 열리고 있는 서울숲. 이수화 기자
2026 서울국제정원박람회가 열리고 있는 서울숲. 이수화 기자
#땅의 기억을 정원으로 정밀하게 풀어내다

박람회장 초입에서는 과거 왕의 사냥터이자 뚝섬경마장, 상수원 정수장이었던 서울숲의 두터운 역사의 층위를 정원의 언어로 정밀하게 번역해낸 공간들이 눈길을 끌었다.

박람회장 초입에 조성된 숲의 출발선인 ‘마중정원’의 모습으로 과거의 뚝섬경마장이 있던 곳. 이수화 기자
박람회장 초입에 조성된 숲의 출발선인 ‘마중정원’의 모습으로 과거의 뚝섬경마장이 있던 곳. 이수화 기자
옛 경주로의 시간을 되살려 말 안장 의자와 내후성강(Corten Steel) 다리를 배치하고, 말 분변을 탄화시킨 바이오찰(Biochar)을 토양개량재로 활용했다. 잡초 억제와 수분 유지, 토양 침식을 줄이는 이 자원순환 실험은 정원이 단순한 시각적 경관 연출을 넘어 기술을 시험하는 실증공간(Testbed)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백미다.

임경자 정원 도슨트는 “잡초 발생을 억제하고 토양 침식을 방지하는 이 자원순환의 메커니즘은 정원이 단순한 관람물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생태계의 복원지임을 보여주는 단초”라고 말했다.

한국정원의 아름다움을 담고 있는 서울숲의 K-헤리티지정원. 이수화 기자
한국정원의 아름다움을 담고 있는 서울숲의 K-헤리티지정원. 이수화 기자
국가유산청의 ‘K-헤리티지정원’도 눈여겨볼 만했다. 경주 최부자댁 후원의 공간 구조를 현대적으로 풀어내고 전통 누각과 차경(借景)의 원리를 적용했다. 특히 외래 원예종에 밀려 조연에 머물던 히어리와 미선나무, 고사리 등 자생 수종을 정원의 전면으로 끌어냈다.

이를 당장 ‘한국 정원식물의 표준 완성’이라고 부르기는 이르다. 지역별 적응성과 대량 증식, 조달가격, 계절별 경관과 유지관리 비용까지 검증돼야 비로소 산업의 표준이 된다. 다만 우리 땅에서 살아온 식물을 현대 정원의 디자인 언어로 다시 끌어냈다는 점은 분명한 진전이다.

2025년 안동 산불 이후 개호송 숲에서 옮겨진 불탄 소나무의 뿌리를 전시하고 있는 서울숲 내 작은 박물관. 이수화 기자
2025년 안동 산불 이후 개호송 숲에서 옮겨진 불탄 소나무의 뿌리를 전시하고 있는 서울숲 내 작은 박물관. 이수화 기자
강원·경남지역 산불 피해목을 재활용한 ‘첩첩’과 산불로 희생된 생명을 기억하는 ‘슬리핑 폭스(Sleeping Fox·잠자는 여우)’ 역시 정원을 바라보는 시선을 넓혔다. 죽은 나무를 폐기물로 치우는 대신 곤충과 미생물, 다음 세대 식물이 이어받는 천이의 과정으로 보여줬다. 정원이 인간의 시각적 유희를 위한 도구를 넘어 기후위기의 비극을 기억하고 생태계를 회복시키는 공간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다.

관람 동선을 지면에서 띄운 일부 데크 구조도 눈길을 끌었다. 수백만 명의 관람객이 같은 지점을 반복해 밟으면서 발생하는 토양 답압(Soil Compaction)을 줄이고 나무뿌리의 숨구멍을 보호하려는 식재 공학적 고민이 디자인에 반영됐다.

#이미 조성된 무대 위에 얹힌 정원들

서울국제정원박람회가 열리고 있는 서울숲 내 ‘하늘펀정원’에서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하늘을 바라보고 누워 ‘하늘 멍’과 잠시의 낮잠을 즐기고 있다. 이수화 기자
서울국제정원박람회가 열리고 있는 서울숲 내 ‘하늘펀정원’에서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하늘을 바라보고 누워 ‘하늘 멍’과 잠시의 낮잠을 즐기고 있다. 이수화 기자
하지만 서울정원박람회의 구조를 거시적으로 조망할 때 가장 뼈아픈 대목은 ‘장소의 정체성’과 ‘기업 참여의 공공성’이다.

서울숲은 애초 시민과 기업이 50억 원의 기금을 모아 만든, 태생부터 시민 주도형 공원이다. 조성 초기 서울정원박람회는 만리동과 해방촌 등 소외되고 낙후된 생활권 공간을 찾아가 정원으로 리모델링하는 도시재생형 시도도 이어갔다.

하지만 국제 규모로 커지고 관람객 수 등 외형적 성과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이미 녹지와 대중교통 인프라가 잘 갖춰진 여의도공원과 월드컵공원, 서울숲 같은 대표 명소를 반복 활용하는 방식으로 기울었다.

콘크리트를 걷어내는 불투수면 해제(Unsealing)나 녹지 취약지역을 치유하는 ‘도시의 결핍’ 해결 효과는 상대적으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행정 연속성과 ‘지식의 순회’가 과제

서울숲은 2016년 민간 위탁을 통해 공원 운영에 시민과 민간 전문조직이 참여하는 거버넌스를 실험했지만 이후 서울시 직영 체제로 전환됐다. 운영방식의 장단점에 대한 평가는 별개로 하더라도, 현장에서 축적되는 전문지식을 어떤 조직이 지속적으로 보관하고 다음 사업으로 넘길 것인지는 중요한 과제로 남는다.

서울숲 내 이끼 숲과 UFB미스트가 만들어내는 몽환적인 산책로에서 휴식을 즐기는 시민들. 이수화 기자
서울숲 내 이끼 숲과 UFB미스트가 만들어내는 몽환적인 산책로에서 휴식을 즐기는 시민들. 이수화 기자
이번 박람회에서 실험된 바이오찰 토양 배합과 답압 제어, 자생종 식재, 관수와 생육 데이터가 다음 개최지로 어떻게 환류되는지도 따져볼 대목이다.

공무원의 순환보직과 개최지 변경이 반복되는 가운데 이 같은 정보가 개별 담당자나 사업 용역의 경험으로만 남는다면 박람회는 장소를 옮길 때마다 상당 부분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다.

서울숲 내 조성된 기업 기부정원 중 하나인 엘리프 가든(ELIF Garden). 이수화 기자
서울숲 내 조성된 기업 기부정원 중 하나인 엘리프 가든(ELIF Garden). 이수화 기자
장소는 순회하지만 행정 지식과 데이터는 머물러서는 안 된다.

기후 리스크에서도 같은 문제가 드러난다. 뚝섬한강공원은 홍수 때 물을 받아내는 한강 둔치 지형이다. 이런 공간에 정원을 조성하는 것 자체는 가능하지만, ‘물이 들어오는 시간’을 사전 설계와 예산, 식재 시방서에 반영하지 않는다면 여름 장마철마다 동일한 위험에 반복 노출될 수밖에 없다.

수변정원이라면 침수를 견디는 식물과 토양, 물길을 막지 않는 시설, 필요하면 신속히 이동할 수 있는 구조물, 침수 전후 관리와 복구 기준까지 처음부터 하나의 설계로 들어가야 한다.

#서울보다 먼저 ‘순회’를 실험한 경기도

국내에서는 서울과 다른 방식의 순회 실험도 이미 진행되고 있다. 2010년부터 도내 시·군을 돌며 열리는 경기정원문화박람회다.

올해로 14회째를 맞는 이 박람회는 경기도가 박람회 브랜드와 기본 방향을 맡고, 개최 시·군이 대상지와 사업계획을 제안하는 구조다. 개최 2년 전 희망 시·군을 대상으로 전문가 현장평가를 거쳐 개최지를 선정한다.

최근 개최지 선정에서는 단순한 부지 규모보다 기존 정원 인프라와 주민 참여 기반, 접근성, 박람회 이후 활용 가능성 등이 주요 평가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이미 개최한 지역보다 신규 개최 희망지에 기회를 넓혀가는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

박람회 사업비는 대체로 18억 원 안팎이다. 경기도가 약 8억 원을 부담하고 나머지는 개최 시·군이 투자하는 구조다. 도비는 주로 작가정원 등 박람회의 핵심 정원 조성에 투입된다.

경기정원문화박람회는 서울국제정원박람회나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와는 개최 기간과 사업 규모, 국제 참여 측면에서 성격이 다르다. 대규모 국제행사보다는 개최지를 옮겨가며 생활권 공원을 개선하고 시민정원사와 주민 참여 기반을 확산하는 데 무게를 둔다.

실제 관람객 유입 효과도 적지 않다. 2024년 남양주 박람회에는 나흘간 약 35만 명이 찾아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고, 2025년 평택 박람회에도 약 23만 명이 방문했다.

다만 순회형 박람회의 성패를 가르는 사후관리는 과제로 남는다. 박람회 과정에서 조성한 작품정원을 행사 이후에도 존치해 시민들이 이용하도록 하는 것이 기본 방향이지만 실제 유지·관리 책임은 개최 시·군에 맡겨져 있다.

경기연구원도 경기정원문화박람회의 발전 과제를 분석하면서 행사 이후 정원의 지속적인 유지관리 문제를 주요 과제로 지적한 바 있다.

결국 경기정원문화박람회의 의미는 대형 국제박람회의 축소판이라기보다, 박람회를 매개로 도내 여러 도시의 생활권 녹지를 개선하고 정원문화를 확산시키는 데 있다.

경기도 정원산업과 박석화 주무관은 “정원산업전이나 플리마켓 등을 통해 지역 상권 활성화를 꾀할 수 있어 개최 시·군의 만족도도 높은 편”이라며 “경기정원문화박람회는 단순히 한 해의 행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개최 시·군에 정원 인프라와 시민 참여 기반을 남기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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