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길 주필

우리는 미국(美國)을 아름다울 ‘美’자로 쓴다. 하지만 일본 신문을 보면 여전히 쌀 미(米)자 ‘米國’으로 쓰고 있다. ‘쌀알’같은 나라라는 비하의 뜻이 담겨있다. 하지만 일본인들이 대하는 실제의 미국은 크게 다르다. 저명 작가이자 경제 평론가로 장관까지 역임한 사카이야 다이치라는 사람이 쓴 『일본을 이끌어 온 12인물』 가운데는 두명의 미국인이 등장한다.
첫번째 등장인물은 메튜 페리(Marthew C Perry), 한자로는 ‘피리(彼理)’ 해군 제독이다. 그는 에도시대 말기였던 1853년 6월, 미국 동인도 함대를 이끌고 도쿄 인근 우라가(浦賀) 앞 바다에 들이 닥쳤다. 쇄국정책으로 빗장을 단단히 걸고 있던 일본의 대문을 열기위해서 였다. 함대라고 했지만 배는 목선이었는데, 선체에 검정 페인트를 칠해 이를 일본인들은 ‘구로후네(黑船)의 내습’으로 기록했다.

미국이 무력으로 개항을 요구한 것은 자기네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였다. 고래잡이가 성행했던 무렵, 미국의 포경선들이 연료와 식량을 조달할 중간 기지가 필요했다. 고작 조총과 칼로 무장했던 사무라이들은 월등한 화력을 앞세운 미국의 함포 외교에 무릎을 꿇고 화친 조약을 맺어야 했다.
결과론이긴 하지만 그렇게나마 억지로 문을 연 일본은 그길로 근대화의 길로 나서게 되었다. 이후 메이지(明治)유신을 이루고, 차곡차곡 국력을 쌓아갔다. 말하자면 페리제독은 근대화의 은인이었던 셈이다.
두번째 미국인은 유엔군 총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다. 그가 어째서 일본을 이끈 위인에 들 수 있을까. 시카이야의 주장은 점령군 사령관으로 일본 땅을 밟은 그가 패전국에 본때를 보이려 하기보다 일본을 ‘이상적인 미국’, ‘극동의 스위스’로 가꾸려 애썼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왕의 항복 선언후 맥아더의 연합군 최고사령부는 일본의 모든 산업을 해체한 다음 스위스 같은 ‘영세중립 낙농국가’로 만들기로 했다. 다시는 전쟁을 할 수 없도록 군벌을 숙청하고 재벌을 해체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1949년 10월 중국이 공산화 되고 바로 그 다음해에 한국전쟁이 시작되면서 미국의 일본 정책은 180도 바뀐다. 미국이 공산주의라는 새로운 적을 맞이하면서 일본을 공산주의에 맞서는 아시아의 보루로 재건하기로 방향을 바꾼다. 재벌 해체 정잭은 흐지부지 됐다. 체포됐던 우파정치인 아베신조 현 총리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 등 우익 정치인들을 석방했다. 미국의 숙적 일본이 하루아침에 미국의 동맹 파트너로 재탄생 했다. 일본을 영세중립 낙농국가로 만들려던 미국의 정책이 바뀌지 않았다면 오늘의 일본은 없었을 것이다.
은인 페리제독이 이끈 근대화로 쌓아올린 국부를 믿고 나중에는 은인의 나라에 덤볐다가 원폭 두방으로 나가 떨어진 일본이었다. 그런 다음에는 또다른 미국인이 나서서 재생의 길을 훤하게 열어준 꼴이니 아이러니 치고는 참 묘하다. 

한편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펄벅여사는 역사적으로 미국이 한국을 두번 배신했다고 지적했다. 1882년 조미수호조규에서 열강이 조선을 부당하게 억압할 때 미국은 조선를 돕겠다고 해놓고 일본이 을사늑약을 강요할 때 외면했다. 또 미국의 필리핀 지배와 일본의 대한제국 지배를 맞바꾼 ‘가츠라·테프트 밀약’이 그랬다. 이 조약에 따라 1910년 일본의 조선 병탄조약때 미국은 대한제국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샌프란시스코 조약(대일 강화조약) 때도 막판에 일본 측 요구를 듣고 애매하게 처리한 부분이 있다. 한국과 일본이 다툴 때 미국이 최종적으로 누구 편을 들었느냐. 지금까지 모두 일본 편을 들었다.

1940년 미국에 망명중이던 이승만 전 대통령은 ‘일본의 가면을 벗긴다(원제 Japan Inside Out)’라는 책에서 일본이 곧 미국을 공격할 것이나 결국 패망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예측 그대로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기습 직후 미국에서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중에 ‘한반도가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그리고 ‘일본과 미국이 우리와 어떻게 다른지’가 요즘 화두가 되고 있다.
워싱턴과 도쿄에서는 벌써부터 한국이 중국에 기울어졌다고 속삭이고 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을 설득, 일본을 압박 하겠다는 우리 외교정책은 현실적일 수 없다. 미국의 대항세력으로 중국을 이야기 하지만 중국이 아직은 글로벌 파워로서 의지도 능력도 부족하다. 특히 아시아에서 미국의 역할은 상당기간 계속될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우리 무역의 4분의 1이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고 중국에 올인한다면 위험하다. 중국이 과거사 문제에 영원한 동반자 역할을 할 것으로 믿었지만 중국도 철저한 계산을 하면서 변하고 있다.
우리가 혈맹이라고 믿고 있는 미국, 그 미국(米國)과 일본의 동맹강화는 상수(常數)가 됐다.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배 등 과거사 문제는 자연스레 뒷전으로 밀려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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