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모 시민단체 회원들을 대상으로 환경 특강을 진행했다. 강의 주제는 ‘생활 속의 탄소중립 실천’이었다. 본래는 에너지 절약, 재활용, 친환경 소비와 같은 실천 방안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갈 생각이었다. 예컨대 식기세척기를 사용하는 것이 손으로 직접 설거지를 하는 것보다 탄소 배출을 줄이는 데 유리한지, 반대로 에너지 소비가 더 많은지 등을 비교하며 생활 속 작은 선택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짚어보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강의가 흘러갔다. 식기세척기와 설거지 이야기가 나오자 참석자들 사이에서 ‘그럼 우리가 매일 마시는 물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라는 질문이 이어졌다. 누군가는 수돗물은 불안해서 잘 못 마신다고 했고, 다른 이는 생수의 미세플라스틱 문제를 걱정했다. 정수기를 쓰는 사람이 많지만 필터 관리를 위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불만도 나왔다. 어느새 강의장은 ‘수돗물, 생수, 정수기물 중 무엇이 가장 건강에 좋은가?’라는 화두로 가득 찼다.
솔직히 이 문제는 필자 입장에서는 다루기 난감한 주제다. 수돗물은 지자체가 공급하는 공공재이고, 생수는 거대 유통기업이 판매하는 상품이며, 정수기물은 렌털, 서비스 업계의 주요 비즈니스다. 어느 한쪽에 치우친 발언을 하면 특정 이해관계자의 불만을 살 수 있다. 그러나 참석자들의 눈빛은 진지했고, 이왕 나온 화제라면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하는 것이 환경 강사로서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흔히 ‘생수’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법적 용어가 아니다. 「먹는물 관리법」상 공식 명칭은 ‘먹는샘물’이며, 여기에 염지하수, 먹는해양심층수 등 다양한 병입 음료를 포함해 생수라고 지칭하는 말이다. 이러한 생수의 장점은 분명하다. 우선 품질이 일정하고 휴대가 간편하다. 언제 어디서나 뚜껑만 열면 바로 마실 수 있고, 유통기한과 미네랄 함량 등이 라벨에 표시돼 있어 소비자가 선택하기 쉽다.
하지만 환경적 측면에서 생수는 고민거리를 안긴다. 플라스틱 병은 회수·재활용 체계가 잘 갖춰져 있어도 여전히 상당량이 소각되거나 매립된다. 미세플라스틱 문제는 최근 과학계에서 활발히 논의되는 사안으로, 장기적 건강영향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이 불안을 키운다. 또한 병입수의 생산, 운송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도 무시하기 어렵다. 편리함 뒤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탄소발자국이 따라붙는다.
정수기는 수돗물을 원수로 해 여러 단계의 필터를 거쳐 깨끗한 물을 공급한다. 정수기물의 장점은 염소 냄새와 미세 입자, 일부 중금속 등을 걸러 맛과 냄새가 좋아지고, 언제든 손쉽게 차갑거나 뜨거운 물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사무실이나 가정에서 많이 사용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정수기의 가장 큰 변수는 관리다. 필터 교체 주기를 지키지 않거나 위생 관리가 소홀하면 오히려 세균 번식 위험이 생길 수 있다. 정수기의 물이 항상 깨끗하다고 믿기 어려운 이유다. 또 필터는 교체할 때마다 폐기물이 발생하며, 렌털 비용이나 유지 관리 비용이 꾸준히 들어가는 것도 부담이다.
수돗물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엄격한 수질 기준에 맞춰 생산, 공급한다. 우리나라 수돗물 수질 기준은 세계보건기구(WHO) 가이드라인보다 더 엄격한 항목도 많다. 생산, 공급 과정에서 탄소 배출이 상대적으로 적고, 플라스틱 용기가 필요 없다는 점에서 가장 친환경적이다.
문제는 심리적 신뢰다. 일부 시민은 여전히 수돗물은 그냥 마시기 불안하다고 느낀다. 실제로 오래된 아파트 단지에서는 노후 배관에서 녹물이 나오거나 특유의 염소 냄새가 나기도 한다. 물리적·화학적 문제는 대부분 해결할 수 있지만, 마음 속 불신은 과학적 수치만으로는 해소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나는 수돗물을 끓여 마시는 것을 가장 합리적 대안으로 제시했다. 수돗물을 끓이면 대장균 같은 미생물은 완전히 사멸한다. 끓이는 과정에서 일부 휘발성 유기화합물과 잔류 염소도 날아가 맛이 부드러워지고 냄새가 사라진다. 여기에 보리차나 결명자차를 넣으면 풍미가 좋아지고, 아이들도 거부감 없이 마실 수 있다. 추가 비용은 차 재료값과 가스·전기요금 정도로, 생수 구매나 정수기 렌털비보다 훨씬 저렴하다.
끓이는 과정에서 소모되는 에너지에 대한 우려도 있지만, 1리터의 물을 끓이는 데 드는 에너지 소비량은 생수를 생산·운반·판매하는 데 드는 에너지보다 훨씬 적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즉, 수돗물을 끓여 마시는 것은 건강과 환경, 비용 면에서 모두 균형 잡힌 선택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시민이 안심하고 수돗물을 마실 수 있는 신뢰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지자체는 송수관로 교체, 수질 모니터링, 투명한 정보 공개를 강화해야 한다. 학교와 공공기관에서부터 수돗물 음용 캠페인을 적극 추진해 수돗물에 대한 막연한 불신을 줄이는 노력도 필요하다.
우리가 매일 마시는 물은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생명을 유지하는 필수 요소이며, 동시에 환경과 탄소중립에도 직결된다. 생수, 정수기물, 수돗물 모두 장단점이 있지만, 전체를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가장 지속 가능하고 합리적인 선택은 수돗물을 끓여 마시는 것이다. 이는 우리 건강을 지키면서 지구의 건강에도 기여하는 작지만 의미 있는 실천이다. 서정호 울산과학대 화학공학과 교수·울산광역시 수돗물평가위원회 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