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용은 울산을 대표하는 문화상징이다. 신라 헌강왕 때 동해 용왕의 아들로 전해지는 처용은 역신을 노래와 춤으로 물리친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화합과 포용, 치유와 평화를 상징하는 존재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징성을 바탕으로 개최되는 울산 처용문화제는 오랜 역사와 시민적 참여를 갖춘 지역 대표 축제이지만, 이제는 지역축제를 넘어 국제적인 문화축제로 도약하기 위한 새로운 콘텐츠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그 대안으로 필자는 조선 초기 최고의 외교관이자 통신사 외교의 선구자인 충숙공 이예(李藝)를 처용문화제의 핵심 콘텐츠와 연결할 것을 제안한다.
이예는 울산 출신으로 조선 태종과 세종 시대 일본에 수십 차례 사신으로 파견되어 왜구 문제 해결과 국교 정상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특히 일본에 끌려간 수백 명의 조선인을 귀환시키고 양국 간 평화와 교류를 이끌어낸 그의 업적은 오늘날 한·일 우호와 동아시아 평화외교의 상징이라 할 만하다.
처용이 신화 속 인물이라면 이예는 역사 속 실존 인물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모두 울산을 대표하며, 갈등을 무력이 아니라 문화와 대화, 포용으로 해결했다는 공통된 가치를 지닌다. 처용은 노래와 춤으로 재앙을 물리쳤고, 이예는 외교와 신뢰로 전쟁의 위기를 줄였다. 이 두 정신을 결합한다면 처용문화제는 단순한 전통문화행사를 넘어 평화와 국제교류를 상징하는 독창적인 문화축제로 발전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첫째, ‘처용과 이예 평화 퍼레이드’를 새롭게 기획할 필요가 있다. 처용무와 일본 전통예술, 조선통신사 행렬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국제 퍼레이드를 구성하면 국내외 관광객에게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다. 특히 울산항과 태화강, 처용암을 연결하는 해양 퍼레이드는 울산만의 독창적인 문화경관을 만들어 낼 것이다.
둘째, ‘이예 국제평화포럼’을 정례화할 것을 제안한다. 한국과 일본은 물론 중국의 역사·문화 전문가와 청년들이 참여하는 국제포럼을 개최하여 조선통신사의 외교정신과 동아시아 평화협력의 미래를 논의한다면, 처용문화제는 단순한 공연 중심 축제를 넘어 국제적 담론을 생산하는 플랫폼으로 성장할 수 있다.
셋째, ‘조선통신사 체험마을’을 운영하면 교육적 가치가 크다. 참가자들이 사신 복식을 착용하고 외교문서를 작성하며 전통예절과 교류문화를 체험하는 프로그램은 가족 단위 방문객과 학생들에게 높은 호응을 얻을 수 있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증강현실(AR)·가상현실(VR) 콘텐츠를 접목하면 몰입감도 더욱 높아질 것이다.
넷째, ‘이예 평화상’을 제정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한·일 문화교류와 국제평화 증진에 기여한 개인이나 단체를 매년 선정하여 시상한다면 울산은 자연스럽게 동아시아 평화문화도시라는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다.
다섯째, 처용문화제를 국제 청년교류의 장으로 확대해야 한다. 울산과 일본, 중국의 대학생들이 함께 참여하는 청년 외교캠프와 문화교류 프로그램을 운영하면 조선통신사의 정신을 미래세대가 직접 체험하는 살아 있는 교육이 될 것이다.
이러한 콘텐츠는 앞으로 개최될 2028울산국제정원박람회와도 충분히 연계할 수 있다. 박람회 기간 동안 ‘이예평화정원’, ‘조선통신사 우정정원’, ‘처용문화정원’ 등을 일본 도시와 공동으로 만든다면 국제적인 문화외교의 상징 공간이 될 수 있다. 정원은 사람과 사람을 잇는 가장 평화로운 문화이며, 처용과 이예가 추구했던 화합의 정신을 공간으로 구현하는 데 적합한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계는 갈등과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러한 시대일수록 과거의 역사 속에서 평화와 대화의 가치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울산은 처용이라는 문화유산과 이예라는 역사유산을 동시에 가진 도시다. 이 두 자산을 정원박람회에 유기적으로 담아내면 다른 어느 도시도 모방할 수 없는 독창적인 국제문화축제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처용의 춤이 재앙을 물리쳤다면, 이예의 외교는 전쟁을 막았다. 이제 울산은 이 두 정신을 하나로 엮어 동아시아 평화와 문화교류를 보여 주는 국제정원박람회를 준비해야 한다. 그것이 정원박람회가 지역축제를 넘어 세계인이 찾는 국제평화문화축제로 도약하는 가장 울산다운 길일 것이다.
강태호 동국대학교 WISE캠퍼스 조경정원디자인학부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