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출신 한국 현대정치사의 거목 온산 최형우 전 내무부 장관이 지난 24일 향년 91세로 영면에 들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군부 독재의 서슬 퍼런 탄압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대한민국 민주화 투쟁의 선봉에 섰던 그의 생애는, 곧 이 땅의 민주주의가 뿌리내려 온 험난한 역사 그 자체다. 나아가 오늘날 인구 100만의 거대 산업도시 울산이 번영을 누릴 수 있도록 든든한 행정적 기틀을 다져준 그의 깊은 애향심은 지역 사회에 크나큰 족적을 남겼다.
1935년 울주군 서생에서 태어난 고인은 1960년 4·19 혁명 당시 학생 대표로 헌신하며 일찍이 불의에 항거하는 기개를 보였다. 1971년 36세의 젊은 나이로 고향 울산에서 제8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정계에 입문한 그는, 유신 체제와 6월 민주화운동 이후 기간 6선 의원을 지냈다.
그의 정치 여정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1972년 유신 정권의 장기 집권 음모를 폭로했다가 보안사령부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했고, 1980년 신군부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에도 연행되어 고초를 겪으며 의원직마저 박탈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동영 전 장관과 함께 '좌동영 우형우'로 불리며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가장 든든한 정치적 동지로 활약했다.
무엇보다 울산 시민들에게 고인은 '울산광역시 승격'이라는 오랜 염원을 현실로 만들었다. 문민정부 내무부 장관으로 재임하던 그는 막강한 추진력으로 1995년 울산시와 울주군의 도농 복합도시 통합을 이끌어냈고, 1996년 여야의 극한 대치 속에서도 특유의 돌파력을 발휘해 당시 경상남도 소속의 기초단체였던 울산의 광역시 승격 법안을 통과시켰다. 오늘날 울산이 글로벌 산업 도시로 성장한 데에는 그의 '울산 사랑'도 적지 않은 몫을 했다.
그는 대선 주자로 거론되던 1997년 봄, 돌연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그해 7월 15일 울산이 광역시로 웅비하는 역사적 순간을 병상에서 맞이해야 했다. 이후 세상이 세 번이나 바뀌는 29년의 기나긴 투병 생활을 이어왔다.
혹독한 겨울을 견뎌내고 이 땅에 민주주의의 봄을 불러온 온산의 치열했던 삶, 그리고 고향 울산의 백년대계를 위해 쏟았던 헌신은 결코 잊혀져선 안 된다. 그가 뿌린 민주화의 씨앗과 뜨거웠던 울산 사랑이 앞으로도 후대에게 오래도록 기억되고 계승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