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시는 ‘반구천의 암각화’ 세계유산 등재됨에 따라 세계암각화센터 건립을 추진 중이다. 단순한 시설 조성을 넘어 지속 가능한 유산 활용이 과제로 떠오른 가운데 지역 주민 참여 확대가 성패를 가를 요소로 꼽힌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전시와 영상체험 등을 경험할 수 있는 세계자연유산센터와 이를 뒷받침하는 행정 조직인 세계유산본부를 각각 두고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이렇게까지 자리 잡을 수 있는 이면에는 마을 주민들의 역할이 컸다. 주민들이 지역에 센터를 유치하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현재까지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제주도를 상품으로 만들다
제주도는 2007년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됐다. 이후 제주를 찾는 관광객은 꾸준히 늘어 2013년에는 연간 관광객 1,000만명을 넘어섰다.
이런 변화는 단순히 숙박업이나 음식점만 성장한 게 아니라 제주라는 지역의 자연·문화·생활양식을 상품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산업도 발달시켰다. 제주를 방문한 사람들이 여행을 마친 뒤에도 제주를 기억하고 소비할 수 있도록 여러 이미지를 다양한 상품에 담았다.
실제로 제주도는 관광지와 전통시장, 소품숍, 카페 등 곳곳에서 제주를 상징하는 다양한 상품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돌하르방과 감귤, 해녀, 한라산 등 지역 고유의 이미지를 활용한 문구류와 생활소품, 패션잡화 등이 관광객들의 발길을 사로 잡는다. 제주라는 지역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이자 상품이 된 셈이다.
울산 역시 지역의 고유한 자원을 상품으로 발전시키는 방식을 참고해야 한다. 세계유산 등재로 관광객을 유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의 문화·산업 자원으로 발전시키고 주민들이 그 경제적 효과를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세계유산의 가치를 공간에 담다
제주도 중산간지방으로 차를 타고 올라가다 보면 초록빛 자연 사이 자리한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가 모습을 드러낸다. 건물 뒤편에는 웅장하게 자리를 잡은 거문오름이 든든한 병풍처럼 센터를 감싸 안고 있다. 화산 활동으로 형성된 제주의 지형적 특성을 센터 건축에도 그대로 투영했다. 화산 분출로 형성된 오름과 봉우리의 능선을 건물 외형에서 확인할 수 있다. 건물 외벽 마감재로는 제주 현무암을 활용해 지역 고유의 정체성과 질감도 생생하게 살려냈다.
센터로 들어서는 진입로 역시 예사롭지 않다. 화산 폭발 과정에서 분출된 크고 작은 암석 조각인 ‘화산쇄설물’이 길을 따라 길게 이어져 관람객을 맞이한다. 관람객들은 직접 손으로 만져보며 제주의 화산 지질적 특성을 피부로 체감했다. 공간의 열린 구조도 돋보인다. 보행 동선을 주변 오름 탐방로와 마을 도로까지 자연스럽게 연결해 관광객은 물론 지역 주민도 언제든 들를 수 있는 친근한 공간을 지향했다. 내부 공간은 통유리벽을 적극 활용해 탁 트인 개방감을 확보했으며,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 채광이 곳곳을 따뜻하게 감싸 안는다.


#전시 넘어 실감형 체험까지
센터는 크게 전시·영상·교육·체험 기능을 아우른다. 이 중에서도 전시는 콘텐츠의 지속성에 방점을 뒀다. 상설전시가 세계유산의 기본적인 가치를 전달하는 역할을 맡는다면, 기획전시는 특정 자연유산이나 생태·지질 주제를 주기적으로 다루며 새로운 콘텐츠를 선보인다. 유산의 의미를 끊임없이 재해석하고 주제를 교체함으로써 ‘일회성 방문’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재방문을 유도하는 구조다.
전시관 내부에 조성된 동굴 모양의 통로는 단순한 이동 통로 그 이상이다. ‘다섯 걸음, 조화가 빚어낸 예술 용암동굴’로 명명된 이 공간은 제주 세계자연유산의 핵심인 거문오름 용암동굴계의 내부를 관람객이 직접 들어간 것처럼 느껴지도록 재현해 냈다. 제주도의 동굴은 원형 보존을 위해 대중의 출입이 엄격히 제한되는 경우가 많다. 센터는 이러한 한계를 ‘실감형·체험형 전시’로 돌파하며, 훼손 없이 세계유산의 가치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울퉁불퉁한 조형물로 용암이 흘러간 흔적을 표현하는가 하면, 용암이 흐르고 굳으며 형성된 다채로운 지형을 발끝으로 느끼며 관찰하도록 했다.

가족과 함께 센터를 찾은 박보라(42·부산) 씨는 “날씨가 더워 실내 가볼 만한 곳을 찾다가 방문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러웠다”라며 “실제 동굴처럼 조성된 공간에서 돌도 직접 만져볼 수 있고 문화재에 대한 설명은 물론 동·식물 전시와 체험 요소가 잘 어우러져 있어 아이들 교육에도 매우 유익했다”라고 전했다.
대구에서 자녀들과 함께 방문한 서동경 씨는 “아이에게 세계유산이 지닌 가치와 지정 과정을 가르쳐주고 싶어 들렀다”라며 “전시를 통해 화산 분출 원리는 물론 제주 지질의 형성 배경과 생태적 특성까지 한눈에 알게돼 아이 학습에 큰 도움이 됐다”라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몰입감 높은 체험 콘텐츠에 대한 선호가 두드러졌다. 서 씨의 자녀 이예빈(12) 양은 “용을 타고 제주도 곳곳을 둘러보는 VR 체험이 가장 기억에 남고 재미있었다”라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체험 콘텐츠의 만족도는 높았지만, 체험 요소의 ‘다양성’ 측면에서는 아쉬움도 남겼다. 박 씨는 “아이가 가장 즐거워한 콘텐츠가 VR 체험이었던 만큼, 아이들이 직접 몸으로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이 VR 외에도 더욱 다채롭게 확충되면 좋겠다”라는 제언을 덧붙였다.
#주민과 함께 지키는 세계유산
제주도는 센터 운영과 별개로 행정조직인 세계유산본부를 꾸렸다. 본부가 유산 현장의 관리·정비·조사·홍보를 총괄하고, 센터는 유산의 가치를 알리는 전시와 교육 기능을 담당한다. 이처럼 기능을 구분해 유산을 훼손 없이 보존하는 동시에 더 많은 사람이 유산의 가치를 이해하고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세계유산의 보존과 활용이 지속성을 갖기 위해서는 행정과 전문가의 노력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조가 필수적이다. 주민들이 유산의 가치를 이해하고 보존 활동에 동참해야 지역과 유산이 함께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센터는 단순 전시시설 아닌 교육·체험 거점 돼야”
[인터뷰] 김성수 제주 선흘2리 이장
센터가 들어선 제주 선흘2리 마을은 주민 참여를 통해 세계유산을 지역 발전의 기회로 연결한 대표적인 사례다. 그 중심에는 김성수 선흘2리 이장이 있다. 김 이장은 세계자연유산센터 유치 과정에서 마을의 지리적 이점과 자연적 가치를 알리는 데 앞장섰으며, 주민들을 설득해 힘을 모았다. 현재는 제주도청 직원으로 센터에서 관련 업무를 맡고 있다. 김 이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센터 유치를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우리 마을은 중산간지역 오지에 가까운 곳이었다. 2007년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것을 계기로 마을을 활성화해보자는 생각을 갖게 됐다. 그러려면 세계자연유산센터가 들어와야 한다고 판단했다. 센터로 마을의 이미지 자체를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마을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센터 유치에 모든 것을 걸었다. 2~3일에 한 번씩 제주도청을 찾아가는 등 적극적으로 나섰다.
Q. 마을 주민들의 반대도 있었나.
센터가 조성되기 전 2009년 거문오름 탐방안내소가 먼저 들어왔다. 그런데 사생활 침해와 소음 문제가 발생했다. 주민들이 내복 차림으로 편하게 다녔는데, 외부 사람들이 오가면서 옷차림까지 신경 써야 하는 등 생활의 불편이 생겼다. 이 과정에서 욕을 먹기도 했다. 그래서 센터 유치에도 당연히 반대하는 주민들이 있었다. 그래서 마을 임시총회를 열고 마을에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사업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했다. 주민들이 환영한다는 뜻을 모아야 진행하겠다는 의지였다. 결국 주민들이 마을을 위해 해보자는 쪽으로 뜻을 모았다.
Q. 세계자연유산센터 유치 이후 마을에는 어떤 변화가 생겼나.
당시 우리 마을은 약 200가구에 인구가 480명 정도였고, 식당은 한곳밖에 없었다. 유일했던 식당은 손님이 없어 운영이 어려웠다. 지금은 식당이 20여곳, 카페가 25곳정도로 크게 늘었다. 관광객 유입이 마을 상권을 키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센터가 마을을 먹여 살린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눈앞의 이익만 볼 것이 아니라 10년, 20년 뒤를 내다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장기적인 관점을 주민들과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Q. 마을이 직접 관리해야 한다고 판단한 이유는 무엇인가.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됐다고 해서 저절로 보존되는 것은 아니다.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유산 지위 자체를 잃을 수도 있다. 어렵더라도 우리 마을이 직접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한 이유다. 주민들에게 선진국도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세계유산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점을 설명했다. 때문에 주민들이 책임감을 갖고 운영에 참여해야 한다는 걸 강조했다. 현재 센터 직원은 50명이 조금 넘는데 마을 해설사가 14명으로 모두 주민들이다.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전문가와 주민이 함께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Q. 세계자연유산센터의 바람직한 역할은?
센터를 단순히 박물관이나 전시시설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홍보와 교육을 중심으로 운영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또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어린이 해설사 교육을 받기 위해 제주시나 서귀포시에서 부모들이 아이들을 직접 차에 태워 데려오는 걸 보면 요즘 젊은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자연과 문화유산을 경험하게 해주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인다. 학교에서도 자연활동이나 현장학습 프로그램에 대한 지원이 많다. 이런 교육 수요를 활용해 센터를 교육과 체험이 어우러진 공간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Q. 유산을 지키면서 활용하는 방법은?
지금까지는 유산이라고 하면 보호와 보존에만 중점을 뒀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유산과 지역이 함께 성장하기 어렵다. 유산 활용은 각자도생해야 하는 구조다. 결국 스스로 방안을 찾고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으면 관심을 끌기 어렵다. 특별한 행사나 이벤트를 통해 세계자연유산지구를 조금씩 경험할 수 있도록 하며 활용 범위를 넓혀가면 관심도 자연스럽게 확산될 것이다. 유산을 활용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이 커지고, 그것이 다시 보존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글=신섬미 기자 01195419023@iusm.co.kr
사진=신원윤 PD digital@iusm.co.kr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