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유산을 품은 도시들에는 공통된 고민이 있다. 보존을 위해 접근이 제한되거나 지형적 특성상 유산 전체를 한눈에 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에 각 도시는 영상과 전시, 체험시설 등으로 유산의 가치를 알리는 한편 훼손과 재난에 대비한 관리 체계도 강화하고 있다. 일본의 사례를 통해 세계유산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면서도 온전히 보존하기 위한 방법을 살펴본다.



#콘텐츠로 만나는 숨은 가치
일본 오사카부 사카이시의 모즈 고분은 하비키노시와 후지이데라시에 걸쳐 있는 후루이치 고분군과 함께 2019년 7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두 지역은 약 10㎞ 떨어져 있지만, 연속 유산으로 묶였다. 공식 명칭은 ‘모즈·후루이치 고분군-고대 일본의 고분’. 일본에서 주로 3~6세기에 조성된 거대한 무덤을 뜻하는 고분은 당시 지배층과 유력자의 권위를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모즈·후루이치 고분은 이집트 쿠푸 왕의 피라미드, 중국 진시황릉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3대 분묘 중 하나다. 분구 길이가 약 500여m에 달하는 닌토쿠천황릉 고분을 비롯해 독특한 열쇠 구멍 형태의 전방후원분 등 다양한 형태와 규모의 49기 고분이 밀집돼 있다.
하지만 크기가 거대한 만큼 지상에서 보면 온전한 모습을 파악하기 어렵다. 봉분 대부분이 숲으로 덮여 있고 해자가 둘러싸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는 곳이 2021년 문을 연 모즈 고분군 비지터센터다. 센터 내부에는 고분군의 유구한 역사와 가치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전시는 물론 방문객의 이해를 돕는 직관적인 안내 콘텐츠가 체계적으로 조성돼 있다.
특히 가장 눈길을 끄는 곳은 한쪽에 마련된 영상관이다. 영상관에 들어서면 벽면과 바닥을 가득 채운 8K 항공 촬영으로 담아낸 모즈 고분군의 광활한 전경이 펼쳐진다. 지상에서는 전체 형태를 가늠하기 어려웠던 고분이 하늘에서 내려다 보자 비로소 한눈에 들어왔다. 고분을 둘러싼 해자와 울창한 나무, 주변 도시의 풍경이 어우러지면서 도시 한가운데 고분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사카이시 문화관광국 역사유산활용부 세계유산과 이즈타키 히로유키씨는 “고분은 지상에서는 전체 모습을 한눈에 보기 어렵다보니 항공 촬영 영상을 통해 하늘에서 내려다보듯 고분군의 형태와 규모를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라며 “방문객들이 영상을 통해 고분군의 특징과 역사를 보다 쉽게 이해하고, 세계유산의 가치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 공간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사카이시는 방문객들이 고분군의 가치를 더욱 생생하게 체감할 수 있도록 다각적인 고민을 이어오고 있다. 올해 초 도입한 ‘열기구 체험’ 역시 이러한 고민 끝에 나온 결과물이다.
이즈타키 히로유키씨는 “비지터센터에서 8K 항공 영상으로 고분군의 전체 모습을 살펴봤다면, 인근 다이센공원에서는 열기구를 타고 약 100m 상공에서 실제 고분군을 내려다볼 수 있다”라며 “영상으로 고분의 형태와 규모를 이해하고, 하늘에서 직접 주변 경관을 조망하며 세계유산의 웅장함을 경험하도록 한 것이다. 실제로 열기구 체험에 대한 인기도 높고 이용객들의 만족도도 좋은 편”이라고 했다.

#QR코드로 즐기는 히메지성의 AR 체험
1993년 일본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4개 유산 중 하나인 효고현 히메지시의 히메지성은 오랜 역사를 간직한 거대한 성곽이다. 현재 남아 있는 건축물만으로는 각 공간의 쓰임새와 당시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기 쉽지 않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히메지성은 디지털 안내 시스템을 도입해 방문객들이 성내 곳곳을 거닐며 과거 성의 모습과 복잡한 방어 구조를 보다 직관적이고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히메지시 관계자는 “전용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제공하던 증강현실(AR) 콘텐츠를 웹 기반으로 전환해, 별도의 앱 설치 없이 현장 QR코드를 인식하면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라며 “현장 안내 지점에서 QR코드를 인식하면 애니메이션으로 당시의 전투 장면을 재현하거나 지금은 사라진 건축물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라고 했다. 성곽을 관람하는 데 그치지 않고, 디지털 콘텐츠를 통해 과거의 모습을 상상하고 이해하도록 한 것이다.
반구천의 암각화 역시 디지털 기술을 통해 관람의 재미를 더할 수 있다. 암각화는 암벽에 새겨진 그림을 멀리서 망원경으로 관찰해야 해 세부적인 형상을 파악하기 쉽지 않다. 그렇다면 디지털 화면으로 확대해 보여주고, 각 형상에 담긴 의미와 선사시대 사람들의 생활상을 연계한 콘텐츠를 제공한다면 관람객이 암각화를 하나씩 발견하고 이해하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눈으로 유산을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장에서 디지털 기술을 통해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찾아가는 방식이다.
이외에도 히메지성은 해설 오디오도 유명 배우와 성우가 녹음한 두 가지 버전으로 제작해 방문객이 취향에 따라 선택해 들을 수 있도록 했다. 유명인의 목소리를 활용한 해설은 방문객들의 호응을 얻었으며, 해당 배우와 성우의 팬들이 히메지성을 찾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스마트한 관람, 빈틈없는 보존
유산의 가치를 알리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이를 재난으로부터 지켜내는 일이다. 특히 일본은 지진, 태풍같은 위험도 매우 높은 환경이라서, 문화유산 관리에 사전 대비 개념이 강하다. 단순 시설 관리가 아닌 재난 인프라 수준으로 다루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현지에서 만난 관계자는 “400년 넘은 히메지성은 목조 건축물이라는 특성상 화재로 인한 소실을 가장 유의해야 한다. 성곽 구조 특성상 소방차 진입과 피난이 어려운 데다, 대형 목재는 한 번 불이 붙으면 진화가 극도로 힘들기 때문이다”라며 “따라서 화재 발생 후 대응보다는 ‘조기 감지’와 ‘신속한 초기 진화’에 초점을 맞춘 철저한 방재 체계를 구축해 두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히메지성은 1964년에 방재설비 정비가 이뤄졌으며, 이를 계기로 방재대책에 대한 재검토를 시작했다.세계유산 등록 후에는 1997년~2002년 사이 자동화재탐지설비를 갱신하고 새로 방재센터, 스프링클러 설비, 방수총, 감시카메라를 설치하는 등 소방용 설비를 정비했다.
관계자는 “화재 발생 시 연기가 감지되면 즉각 비상방송이 송출되며, 시스템과 연동된 화재통보장치가 119 소방지령센터로 자동 음성 신고를 접수한다”라며 “동시에 이미지 전송장치를 통해 발화 지점의 감시카메라 실시간 영상과 건물 평면도가 소방서로 즉시 전송되는 방식이다”라고 전했다.
이어 “이처럼 음성과 영상을 활용한 신속한 신고 체계를 갖춤으로써 소방대의 조기 현장 투입 및 초기 진화 대응력이 대폭 강화됐다”라며 “아울러 라이터 등 미세 화원을 조기에 감지할 수 있도록 감시 사각지대마다 불꽃감지기를 집중 배치했다”라고 덧붙였다. 2020년에는 방송 설비를 다국어화해 일본어·영어·중국어·한국어로 비상방송을 실시하고 있다.
외주 용역업체에 위탁하지 않고, 히메지시 소속 정직원이 CCTV 감시실에 24시간 365일 상주하며 현장을 직접 관리한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매표 등 일반 운영 스태프는 공모를 통해 위탁 관리하는 반면 핵심 보안 및 감시 업무만큼은 지자체가 직접 책임지는 안전 관리 체계를 구축한 것이다.
일본의 사례는 세계유산 관광이 단순히 볼거리를 늘리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유산의 가치를 방문객에게 제대로 전달하고, 그 가치를 훼손과 재난으로부터 지켜내는 것까지가 세계유산을 품은 도시의 역할이다.
글=신섬미 기자 01195419023@iusm.co.kr
사진=신원윤 PD digital@ius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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