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그라나다는 인구 수 23만명의 중소도시임에도 ‘알함브라 궁전’이라는 문화유산으로 세계적인 관광 거점이 됐다. 현재는 유적 보호를 위해 하루 입장 인원을 제한하고 있는데, 특히 나스르 궁전은 30분당 최대 300명만 입장할 수 있어 3개월 전 예매가 시작되자마자 티켓이 빠르게 매진된다.
취재진이 알함브라 궁전을 찾은 9월 초. 한낮 열기가 40도를 육박하는 폭염 속에서도 국적, 연령 모두 제각각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뜨거운 햇살에 연신 땀을 훔치면서도 카메라를 꺼내 들어 궁전 곳곳을 담았다. 관광객들은 빠르게 지나치기보다 한곳에 멈춰 서 공간을 오래 음미했는데, 발 디딜 틈 없는 여느 유명 관광지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사람이 몰리더라도 주요 공간의 밀도를 일정 수준으로 유지한 덕분 유산의 모습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매표소부터 내부 곳곳을 지키는 직원들이 대부분 중노년층으로 다양하게 포진해 있다는 점이었다. 알함브라가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지역의 일자리와 경제를 만들어내는 공간이라는 점을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었다.
이처럼 그라나다가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성장한 데는 접근성을 높인 교통망의 변화도 한몫했다. 2019년 6월 마드리드와 그라나다를 연결하는 고속철도(AVE)가 개통하면서 기존 4시간 30분 이상 걸리던 이동 시간이 3시간 초반대로 줄었다. 이후 그라나다를 찾는 관광객이 더 늘었고 알함브라 궁전의 관람권 매진 회차가 급증하는 등 관광 수요도 크게 확대됐다.
하지만 교통망의 역할은 관광객을 그라나다로 데려오는 데 그친다. 도시 안으로 들어온 관광객의 발길을 어디까지 이어가게 할 것인지는 결국 세계유산과 도시가 어떻게 연결돼 있느냐에 달려 있다.
알함브라만 보면 사실 관광객이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다.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궁전과 정원을 둘러보는 데는 몇 시간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라나다의 세계유산은 알함브라 궁전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알함브라를 중심으로 알바이신 지구까지 세계유산의 공간이 촘촘하게 이어져 있어 관광객의 시선과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궁전 밖으로 향한다.
알함브라와 헤네랄리페가 198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데 이어 1994년에는 알바이신 지구까지 세계유산에 포함됐다. 현재 공식 명칭도 ‘알함브라·헤네랄리페·알바이신, 그라나다(Alhambra, Generalife and Albayzin, Granada)’다.
두 세계유산은 지리적으로도 마주 보고 있다. 한쪽 언덕에 알함브라가 자리하고 맞은편에는 알바이신 지구가 펼쳐진다. 이 같은 공간적 구조는 관광객의 발걸음을 자연스럽게 도시 곳곳으로 끌어들인다.
알함브라 궁전을 나온 취재진은 버스로 십여 분을 달려 도심에 도착한 뒤 걸어서 맞은편에 보이던 알바이신 지구로 향했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걷자 상점과 식당, 카페 등이 빼곡히 자리하고 있었다. 이 거리에서 관광객들은 음료를 마시거나 음식을 먹고 기념품을 구입하며 자연스럽게 지역 상권을 이용했다.
알함브라 궁전이 한눈에 들어오는 산 니콜라스 전망대(Mirador de San Nicolás)에 오르자 또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관광객들은 알함브라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고 거리 공연을 즐겼다. 유산을 보기 위해 찾은 사람들이 전망대와 골목, 카페에 머물며 도시의 일상을 함께 경험하고 있었다.
울산에도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러한 연결이다. 하나의 유산만을 앞세워 관광객을 불러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유산을 중심으로 주변의 자연·문화·상권과 관광 동선을 긴밀하게 연결해야 한다. 세계유산이 아니더라도 그 주변 공간을 함께 가꾸고 새로운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만들어낸다면, 그라나다처럼 유산이 도시 전체를 경험하게 하는 관광 브랜드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스페인 카스티야이레온 주의 아빌라는 중세 성벽이 구시가지를 온전히 감싸고 있는 도시다. 11세기 이슬람 세력의 침입에 맞서 축조된 2.5㎞ 길이의 성벽과 88개의 원형 탑이 도시를 둘러싸고 있어 1985년 구시가지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성곽과 성인의 도시’라는 별칭처럼 중세 성곽과 가톨릭 성지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아빌라에는 오랜 고민이 있었다. 마드리드에서 기차로 1시간 반 남짓이면 닿을 수 있는 뛰어난 접근성이 오히려 ‘당일치기 관광지’에 머무른다는 한계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에 이를 극복하고 체류형 관광객을 끌어 모으기 위해 아빌라는 다양한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취재진이 방문할 당시 열린 제29회 ‘아빌라 중세축제·세 문화 시장(Jornadas Medievales – La Ciudad de las Tres Culturas)’이 대표적이다.
성벽과 광장, 골목은 중세시대의 풍경을 재현하는 무대로 변신했고, 지역 주민과 상인들은 축제의 주체가 돼 순간을 즐겼다. 관광객은 축제를 따라 도시를 걷고, 그 과정에서 먹고 사고 머물렀다. 중세시대라는 콘셉트는 관광객을 도시로 끌어들이는 매력적인 마케팅 요소가 됐다. 세계유산을 보존하는 것만큼이나 이를 관광객이 직접 경험하고 소비할 수 있는 콘텐츠로 만들어내는 전략이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올해는 시 추산 관광객 13만5,000명이 방문했고, 숙박시설이 만실을 기록했으며 지역 음식점·상점도 활기를 띄었다.
문화유산을 관광객 유치에 그치지 않고 지역 경제의 동력으로 연결해 내는 스페인 도시들의 행보는 산업과 문화의 융합을 모색하는 울산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앞으로 반구천의 암각화, 태화강, 대왕암, 산업자산 등을 각각의 개별 관광지로 만드는 데 그칠 것인지, 아니면 이들을 연결해 ‘울산’이라는 도시 자체를 하나의 관광 브랜드로 만들어갈 것인지가 과제다. 세계유산 하나를 잘 보존하고 보여주는 데서 나아가, 이를 거점으로 지역 상권과 문화, 일상까지 함께 경험하게 만드는 동선을 설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글=신섬미 기자 01195419023@iusm.co.kr
사진=신원윤 PD digital@iusm.co.kr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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